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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의 배우자인 당신에게

주변사람이 더 괴로운 알코올 중독

당신의 남편이 알코올중독인가? 당신의 아내가 알코올중독인가? 우선 당신이 처해있을 고통스러운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당신이 얼마나 큰 상심과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지 알고 있다. 어디에도 속시원히 말 못 하고 가슴앓이를 하며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이가 알코올중독에 빠져 있다는 이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고통받는 당사자보다 더 괴로운 지옥을 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이다.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가 고통스러운 것은 가정 내에서 서로 협력하여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알코올중독이면 그는 중독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육아나 집안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퇴근하자마자 그는 술을 마시고 취해버릴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건전하게 사용할 능력이 없다. 기회만 되면 마시고 취하는 것이 반복된다. 집안청소, 요리하기, 아이 목욕시키기, 학원 픽업하기 등등 무수한 집안일은 취해서 누워있는 남편 대신 아내의 몫이 되고 만다.      


또한 알코올중독자는 심리적으로 왜곡되고 비틀려 있어서 부부간의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하다. 자신의 역할공백을 혼자 감당하느라 지치고 피곤한 아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오히려 아내 탓을 하고 너 때문에 마시게 되었다고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의 화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쏟아낸다. 위로나 공감은 중독자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인데 많은 아내들에게 이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당연히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다투게 되고 결국 가정은 콩가루가 되기 십상이다. 많은 알코올중독자 가정이 이런 비참한 현실에 놓여있다.     


알코올중독이 아내의 문제인 경우는 어떠할까? 최근에는 여성 알코올중독이 증가하고 있다.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는 만삭의 임산부가 술을 끊지 못해 입원해 있기도 하다. 아내가, 엄마가 알코올중독인 경우는 어쩌면 문제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욕실을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전기세를 납부하고 시장을 보는 이런 평범하고 사소한 일을 알코올중독자는 꾸준히 해내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살림은 남편이 해야 하고 남편이 그 역할을 커버하지 못하면 집안은 관리되지 못해 엉망이 되어 간다. 연체고지서가 날아오고 재활용쓰레기는 넘쳐나며 욕실에는 곰팡이가 핀다. 치우지 않은 술병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고 온 집에 탁한 공기와 역한 냄새가 가득하다.      

심지어 이 가정에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배가 고파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 멍한 눈빛으로 우두커니 앉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성장한 아이는 중독자인 부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원한의 감정이 깊을 수도 있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안 좋은 영향을 받는 아이를 보는 것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고통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우리에게 닥쳐있다. 알코올중독에 지치고 이 상황을 견디다 못해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당신이 아직 이혼하지 않고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런 경우 생계는 배우자의 몫이 된다. 배우자는 가정을 경제적으로 혼자 꾸려가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갖게 된다. 여기에 매달 청구되는 병원비는 배우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설령 그동안 모아둔 재산이 조금 있다고 해도 입원으로 인한 실직 혹은 휴직과 병원비 지출로 인해 필연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올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알코올중독자 가정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기가 어렵고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재물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빈곤과 경제적 어려움 역시 배우자를 힘들게 하는 현실적인 요소이다.      


이쯤에서 어쩌면 당신은 이혼을 고민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배우자를 고쳐보려고 애를 쓰다가 상황이 반복되면 지치고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가정경제도 엉망이 되고 집안은 난장판이며 감정의 골 또한 깊어졌다면 아마 훨씬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할 것이다. 많은 알코올중독 가정들이 실제 이혼에 이르게 된다. 특히 배우자가 알코올중독과 함께 가정폭력이 있다면 적어도 이혼이나 별거에 이를 확률이 높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소위 주정뱅이 남편이 술 먹고 살림 부수고 아내를 때리는 집이 종종 있었다. 결국 아내가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도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많은 가정이 이혼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혼은 비중독자인 배우자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알코올중독 가정에 이혼조차 쉽지 않다. 우선 협의이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편이 중독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혼을 해주지 않는다. 중독자인 배우자를 설득해 이혼에 협의에 이르는 과정은 지극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여기에는 착취대상인 상대방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중독자의 심리도 작용하고 동반의존으로 중독자를 떠나지 못하는 배우자의 심리도 작용한다. 부부의 이런 복합적인 상호작용 때문에 맞고도 살고, 괴로우면서도 살아가는 가정들이 있다. 장성한 자녀들이 평생 고통을 겪어온 엄마를 이혼시키고 싶어 해도 엄마는 남편과 같이 살기를 택하는 경우도 이런 심리적 배경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협의이혼이 어렵다면 재판이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지급에 큰 걸림돌이 없거나 이혼의 의지가 확고한 배우자는 재판이혼을 선택할 수 있다. 법적인 이혼상태가 되면 서류적으로는 배우자의 알코올중독에 대해 무관하게 된다. 적어도 배우자로서의 부양의 책임으로부터는 훨씬 자유롭다. 중독자가 일으키는 각종 사건사고와 재산적 피해로부터 자산을 지킬 확률도 높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녀가 있는 경우는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 자녀가 있어서 곧 성인기에 이르거나 이미 성인이 된 자녀가 있는 경우는 알코올중독자에 대한 부양의 책임이 이혼한 배우자를 건너뛰고 자녀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자녀를 책임지고 양육해 온 모성이 강한 아내들이 재판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중독자와 살아도, 살지 않아도 괴로운 것이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임을 알 수 있다. 알코올중독자와 사는 동안 경험한 감정적 고통과 괴로움은 함께 살지 않는 상태가 되어도, 심지어 알코올중독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남아 있다. 중독의 고통은 배우자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중독자 배우자를 위한 회복모임에는 배우자의 중독이 끝난 경우도 많이 있다. 단주를 수십 년째하고 있거나 이미 사망했거나 혹은 이혼했거나 하는 경우도 회복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회복은 중독자뿐만 아니라 중독자 배우자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다.      


어쩌면 자책감과 후회가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는 이 사람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었다는 것과 다른 상황인 것이다. 부모나 자녀처럼 혈연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남인데 이 중독자와의 관계를 선택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은 당신에게 깊은 후회의 감정을 준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생긴다. 중독의 고통이 심할수록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당신의 자기 파괴적인 감정 또한 깊어진다. 중독자를 선택한 것은 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 괴로워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미래까지 더 고통스럽게 하는 악순환이 된다. 내가 왜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는지 이유를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 어쩌면 나에게도 끌림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내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까지 포함해서 나를 사랑해주어야 한다. 이제는 후회를 내려놓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나를 다독이며 이제는 어떤 길을 걸을지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야 한다.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는 중독자 가정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다. 이 알코올중독자 배우자가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에 따라 이 가정이 회복에 이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는 중독자로부터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 배우자 혼자라도 회복한다면 알코올중독이 여전하더라도 중독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 중독의 고통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는 것, 이것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이다.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인 당신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 회복의 길과 고통의 길. 당신은 어느 길을 걷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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