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사람이 더 괴로운 알코올중독
당신의 부모 중 한 분이 혹은 두 분이 모두 알코올중독자인가? 우선 당신이 경험했을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한다. 이것은 정말 진심으로 전해 보는 위로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알코올중독자를 둘러싼 사람들 중 가장 가엾은 피해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알코올중독자인 것이다. 당신이 부모를 선택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낳고 키운 아이가 알코올중독인 것도 아니고 내가 사랑에 빠져 결혼대상으로 선택한 사람이 알코올중독인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내게 왜 이런 불운이 닥쳤는지 원망할 수도 있다. 인생의 첫 시작이 썩 행운스럽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숙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다음을 고민해 보기로 하자.
알코올중독자의 자녀가 겪었을 고통의 종류와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치고 잠을 깨우는 등의 귀찮은 순간이 종종 있었을 수도 있다. 때론 부모의 술 취함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신은 매를 맞고 욕설을 듣고 벌을 서고 잠을 자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아이인 당신이 술병을 치우고 동생을 다독이고 옆집에 도움을 청하러 뛰어가야 했을 수도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부모를 변기에 앉히고 옷을 입혀 주어야 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유쾌하지 않은 순간들의 경험이 당신에게 있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당신의 마음에 감정의 생채기를 낸다. 불안이 찾아온다. 언제 난장판이 될지 모르고 언제 술주정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하다. 이번에는 어떤 사건사고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 일 없는 평온한 순간에도 항상 불행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한다. 마음 놓고 안식할 수 없다는 점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당신은 살아온 세월 동안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평온한 시간과 공기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이 경험한 이런 파괴적인 경험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하기도 한다. ‘오늘 행복하더라도 내일 파멸의 시간이 찾아올 거야, 오늘 웃으며 나를 안아주더라도 내일 소리를 치르며 머리를 때릴지도 몰라’ 경험적으로 이런 생각이 쌓인다. 먼 훗날 당신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서 일도 하고 자립도 할 수 있고 연애도 하고 때로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 부정적인 가치관이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취업이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상사가 꾸지람을 한다면 ‘그래, 역시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내 인생에 행운이나 행복이 올 리가 없지.’ 이렇게 생각해 버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삶이 이렇게 흘러간다. 이 점이 안타까운 사실이다.
알코올중독자의 자녀에게는 결핍이 있다. 돌봄과 정서적인 지지의 결핍입니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인 경우 아버지로부터는 정서적인 학대를 받는다. 이 순간 중독자의 배우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가 자녀들을 중독자의 학대로부터 보호해 주면 가장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머니는 남편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남편을 대신해 생계에 매달리고 남편과 다툼을 하고 감정적인 실랑이를 하느라 정서적으로 방전되어 버린다. 아이에게 줄 사랑이 중독자의 아내에게 남아있지 않다. 아이들은 방치되게 된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양육과 돌봄, 지지와 사랑과 같은 정서적인 케어를 받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빈 채로 성장하게 된다. 엄마가 알코올중독이거나 부모 모두 중독자인 경우는 자녀가 방치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경우는 정서적인 결핍뿐만 아니라 물리적, 경제적 결핍도 발생한다. 밥솥에 밥이 없고 냉장고에는 상한 음식이 있고 가족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학원을 중단해야 하고 부모가 학교 졸업식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경험이 중독자 가정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어린 시절에 충분히 사랑을 받아야 내면의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데 중독자 가정에서는 이런 돌봄이 충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장하여 성인이 된 경우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성인아이’라고 한다. 성인아이는 어른이지만 아이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겁이 많고 두려워하며 힘들고 복잡한 일을 할 능력이 부족한다. 때론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어려워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과대망상을 가지기도 한다. 종합적인 판단력이나 상황대처가 어렵고 삶의 여러 장면에서 미숙한 모습을 드러낸다. 관심이든 물질이든 받는 것을 좋아하고 받음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다.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 앞에서는 회피하거나 도망하고 싶어 한다. 책임지는 용기가 부족한 것이 성인아이의 특징이다.
알코올중독자의 자녀인 성인아이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부양의 굴레이다. 평생을 중독의 굴레에서 사는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여러 가지 병이 생기게 된다. 중독은 필연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초래한다. 배우자가 있는 시기에는 배우자가 부양의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자가 가출, 이혼했거나 사망한 경우 부양의 책임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자녀는 주말마다 쓰레기집 같은 방을 치워야 하는데 끔찍한 것은 다음주가 되면 또다시 쓰레기로 넘쳐나는 광경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중독자가 요구하는 생활비며 술값에 허리가 휜다. 학자금 대출로 시작한 삶은 아무리 직장생활을 해도 넉넉해지지 않다. 적지 않은 병원비는 당신의 경제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병원에 입원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입원도 거부하고 난동을 부리는 골칫덩이 부모인 경우도 많다. 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키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야 하기도 한다. 월차는 모두 집안일 때문에 쓰게 되니 나를 위한 휴가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다. 중독자의 전화에 시달리고 중독자를 돌보라는 친척들의 연락에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다. 때론 내가 왜 이 짐을 져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희망이 있다. 당신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다면 더욱더 상황은 희망적이다. 당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이 상황을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잘 자라온 스스로를 위로하고 인정해 주자. 참으로 어려운 길을 당신은 꿋꿋이 헤쳐온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인 어떤 사람들처럼 평탄한 인생길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당신은 잡초 같은 질긴 의지와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당신만의 꽃을 피워 보자. 당신이 힘들 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 것 같을 때 당신은 혼자 내버려져 있지 않았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온 우주가 당신을 돕고 있었다. 낮의 해와 밤의 달과 작은 풀벌레와 여름밤의 공기와 바람과 가로등이 아파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혼자 있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 어떤 순간에도 결코 혼자 버려져 있지 않니다. 따스한 햇살은 당신을 감싸주고 있었다. 당신을 도왔던 온 우주의 기운이 당신이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면 다시 한번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가뭄과 태풍을 견뎌낸 굳건한 나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닫는다면 당신의 삶은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