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사람이 더 괴로운 알코올중독
당신의 자녀가 알코올중독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애타는 심정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자녀의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부모의 눈물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당신은 세상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자녀를 다시 회복시키려 애를 쓸 것이다. 술병을 감추고 마시지 못하게 감시를 하고 좋은 말로 달래 보기도 하고 호되게 나무라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한다는 병원에 데려가고 의사를 찾아 면담하고 유명한 심리상담소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신앙의 힘으로 이 상황을 극복해 보기 위해 누군가는 교회 새벽기도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절에서 백팔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비싼 돈을 주고 굿을 하고 부적을 쓰고 점집을 전전한다. 자녀의 병만 고칠 수 있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용의가 있다. 하지만 이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자녀의 회복을 오히려 방해한다면 어떨까?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무엇이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길인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알코올중독자에게 부모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이다. 중독의 상황이 심해지면 배우자는 쉽게 떠나간다. 법적인 절차를 밟든, 밟지 않든 결혼관계가 깨어질 확률이 높다. 자녀는 어떠한가? 자녀가 장성한 경우 어느 정도는 부양을 하겠지만 부양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가능성도 많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고 한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어도 열 자식이 한부모를 못 거두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병원치료나 뒤치다꺼리를 하더라도 점점 기간이 길어지고 정도가 심해지면 자식은 두 손 두 발 들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피해나 정서적 학대에 대해 원망의 감정이 있다면 애초부터 부모의 삶과 자신의 삶에 경계를 긋고 생활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중독자의 부모이다. 천륜이라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으로 인해 부모는 자녀를 마지막까지 버리지도, 내 몰라라 하지도 못한다. 자녀와 중독의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고통 속에서 같이 뒹군다. 알코올중독 입원병동에 있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부모가 보호자이다. 처음에는 아내가 입원을 시키다가 몇 년이 지나면 부모가 데리고 온다. 두세 번의 입원만 반복되어도 아내들은 남편을 포기해 버린다. 결국 늙고 병든 부모밖에 이 짐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 4~50대 중년의 아들을 입원시키러 온 7~80대 노부부의 축 처진 가녀린 어깨를 떠올려보자. 하도 여러 번 입원해서 몇 번째인지 세기도 포기했다는 그 노부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 상상만 해도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중독자인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어떨까? 부모가 자녀의 중독문제를 인지하게 되면 다그치거나 나무라기 쉽다. 자녀를 지금까지 키워왔고 가르쳐 온 방식을 다시 쓴다. 좋은 행동은 하게 하고 나쁜 행동은 하지 않게 훈육하며 길러왔기 때문에 자녀의 중독에 대해서도 똑같이 대한다. 설득하고 야단치고 때론 분을 참지 못해 매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녀의 중독문제는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된다. 여기서 부모님들은 당황한다. 지금까지 자녀를 키워온 방식들이 이 중독의 문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괴로움에 짓눌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해 왔던 대로 계속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가며 자녀를 바꿔보려 한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독이 된다. 부모가 도움을 주고 보살펴 줄수록 중독자인 자녀는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 부모가 제공하는 돈이나 돌봄 헌신은 자녀가 의존하고 기생하게 하는 양분이 된다. 자녀의 중독은 점점 더 심해진다. 부모가 나무라고 혼내면 중독자인 자녀는 원한을 갖는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반항하고 격하게 대든다. 중독자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부모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하지만 자녀가 왜 중독자가 되었고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 중독자의 부모가 정확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코올중독자의 부모님들께 드릴 말씀은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 죄책감은 자녀에게도, 부모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해는 된다. 내가 낳아서 키웠고 어린 시절에는 귀엽고 재롱도 부리고 사랑스러웠을 아이였을 것이다. 이 아이가 어째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가슴을 내리치게 된다. ‘내가 그때 제대로 못해줘서, 그 시절에 이렇게 키워서, 우리 집 형편이 이래서 저래서....’ 수많은 생각들이 부모님을 괴롭게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런 후회와 자책감은 자녀의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녀의 중독은 부모의 탓이 아니다. 부모인 당신은 그때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일로 자꾸 현재가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선택이다. 이제 자녀는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부모님은 자녀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운 것으로 해야 할 책임을 다했다. 장성한 자녀는 나와는 별개인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 설령 미안한 마음이 들고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그걸로 족하다. 이제 남은 인생은 자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당신의 자녀를 믿어야지 놓아줄 수 있다. 당신은 진정으로 자녀를 믿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란다.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지혜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모의 힘은 매우 크고 강력하다. 중독자를 끝까지 붙들고 돌파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부모일 가능성이 많다. 제대로 길을 찾기만 한다면 알코올중독자의 부모 역시 평온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넘어지는 자식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자녀를 살리는 길인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부모님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가서 꼭 평온함에 이르시길 바란다. 냉정한 사랑은 중독자의 부모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