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끊고 싶으나 끊지 못한다

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끊고 싶으나 끊지 못한다. 이 말이 참 이상하게 들린다. 끊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내 앞의 중독자도 계속해서 마셔대고 있고 그게 벌써 몇 년, 혹은 몇십 년이고 잠시 멈추었다가도 또 마시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지 못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문제는 그 앞의 말이다. 술을 끊고 싶으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일까? 마시고 있는 중독자를 보면 정말 끊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왜 끊고 싶은데 끊지 못할까? 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끊고 싶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는 마시고 싶은데 빈말로 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다이어트와 비교를 해 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살을 빼고 싶으나 빼지 못한다. 운동도 해보려고 하고 식이조절도 해보려고 하고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실천에 옮긴다고 해도 꾸준히 유지하기 어렵다.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 그 사람마음속에는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충분히 살을 빼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술을 끊고 싶어 한다. 몸이 나빠지는 것을 스스로 가장 잘 느끼고 있고 중대한 질병이나 심지어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느낀다. 관계와 일상이 엉망이 되어 가는 것을 당사자로서 가장 괴로워하기도 한다. 술이 자신의 능력과 생활과 인격을 파괴해 가는 것을 알고 느끼기 때문에 어쩌면 누구보다 더 가장 처절하게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술에 붙들리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끊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자가 끊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이어트는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때로 성공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감량을 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좋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법을 시도한다면 때로는 성공한다.  하지만 중독에는 이런 성공이 없다. 아무리 의지를 다지고 노력을 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그 어떤 의사도 중독을 치료할 수 없다. 아무리 유명하고 저명한 심리상담가도 교수도 이 중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이 중독의 속성이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내 발목을 칭칭 감아서 결코 놓아주질 않는다. 내 힘으로 이겨내보려고 하는 모든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자포자기에 도달한다. 이것이 중독이라는 병이다.      

중독이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병이기 때문이다. 중독은 질병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은 중독자가 병에 걸려 있다, 환자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독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화 내기 십상이다. 


“또 마셨어? 당신 제정신이야?”

“어쩌려고 이래? 벌써 며칠째야? 정신 똑바로 안 차릴 거야?”

“이번에는 약속 지키겠다며? 각서 쓴 거 기억 안 나?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중독자를 향해 쏟아붓는 말들을 보면 의지만 가지면 마시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왜 마셨냐는 다그침이 있다. 그 사람이 중독이라는 병에 걸렸고 마시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태임을 안다면 비난과 원망은 할 수 없다. 


‘그래, 이 사람은 중독자였지.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것도 중독이기 때문이지. 이게 그의 병이지’ 이렇게 이해가 된다. 중독자가 중독자의 증상을 보이는데 우리는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은 아니다. 중독이니까 마시는 것이 어쩔 수 없고 가족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 참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다고 치자. 계속 밥을 먹고도 배가 고프다고 하고 며느리가 밥을 안 주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가 심보가 고약해서 그럴까? 며느리를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걸까? 치매라는 인지기능 장애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밥을 안 먹었다고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치매라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게 “할머니 왜 또 거짓말해? 아까 먹었잖아. 기억 안 나?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진짜 밥 안 줄 거야!”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렇게 대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의 행동은 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의 증상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든 속을 끓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정상인에게처럼 화를 내게 된다. 너는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병자임을 철저히 믿지 못해서 그렇다.      


중독자를 병자로 인식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 일종의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이 중독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정신이 회까닥 해서 마셔대는 것을 질병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어디가 뚜렷이 아픈 것도 아니라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 마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요구한다.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약해서,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질병이 중독이다. 우리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하면 나아질 거야. 조금씩 먹어서 익숙해져야지. 괜찮아지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봐.”라고 땅콩을 먹어서 알레르기를 극복하기를 권하는가? 그렇지 않다. 알레르기 항체가 있는 사람은 땅콩이라는 항원이 들어오면 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여러 번 반복해도 늘 똑같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알레르기로 진단을 하는 것이다. 알레르기를 인정하듯이 중독도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끊고 싶으나 끊지 못하는 것이 중독자의 마음이다. 끊으려는 마음 또한 사실이고, 끊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독자에게는 이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다. 어느 하나가 거짓인 것도 아니다. 중독이라는 질병 때문에 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할 때 당신은 중독자에 대한 실망감, 배신감, 의심 등 당신을 괴롭혀 온 많은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끊겠다고 했다가 또 마시는가? 기억하라. 지극히 당연하고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알코올중독자를 정확히 이해해야 당신의 마음이 덜 괴롭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당신의 괴로움을 덜어줄 것이다.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 중독자 가족은 자유로움에 이를 수 있다. 

이전 04화 알코올중독자의 부모인 당신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