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성
중독자는 정직하지 못한다. 정직할 힘이 없다. 이것은 중독자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가 가지는 속성의 하나이다. 죄인 된 인간의 본성이 거짓이다. 교묘하게 속이고 간사하고 위선적인 이 거짓된 마음은 죄와 함께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든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 나름대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이유를 갖다 붙인다. 그러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욕구를 채우고 나에게 이로운 편을 선택하곤 한다. 이것이 훨씬 극심한 사람들이 중독자이다.
중독자는 타인을 속인다. 그래야 자신이 중독행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나무라는 가족에게 중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직장 일이 힘들어서 마신 거야.”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영업하려면 할 수 없지.”
“내가 잘 참고 있었는데 네가 나를 열받게 해서 내가 꼭지가 돌아서 마신 거야.”
“애들 학교 보내고 혼자 한잔씩 하는 거지 중독은 아니야. 많이 마시지도 않는걸.”
“잠이 안 오는 걸 어떻게 해. 수면제보다는 술 한잔 먹고 자는 게 낫잖아. 일어나 출근은 하니까 괜찮아”
하지만 이러한 알코올중독자의 이유는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그들은 마셔야 하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 것이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아 마시고,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한 잔 안 할 수 없다고 한다. 비가 와서 마시고, 비가 오지 않아 마신다. 더워서 마시고 추워서 마시고 부인이 집에 있어서 마시고 부인이 없어서 마시고 아이가 미워서 마시고 아이가 좋아서 마신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도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로는 타당하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중독으로 빠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직업상, 가정환경상음주에 많이 노출된 환경이 있겠지만 비슷한 상황이라고 모두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떠한 이유가 음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음주를 위해 알코올중독자는 이유를 찾아서 갖다 붙이는 것이다.
문제는 중독자는 자기 자신도 속인다는 것이다. 중독자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마시는 거지 알코올중독은 아니야.”
“내가 그때 술을 마신 거는 상황상 사정이 있었던 거야.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걸?”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 지금은 그럴 사정이 아니라서 그래.”
“한동안 단주도 했었잖아? 금연도 성공한 것처럼 금주도 해낼 수 있어.”
“내가 술을 먹는 건 그 놈들 때문이야. 괴롭힘만 당하지 않았어도 나는 술을 입에 안 댔을 텐데.”
이러한 말을 중독자는 스스로에게 하면서 어느 정도는 본인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는다. 중독은 자신까지도 철저히 속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기만이라는 중독의 증상이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는 본인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얘기를 하지만 중독자는 그렇지 않다. 본인도 사실과 거짓을 혼동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고 스스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현상이다. 어쩌면 중독자도 이와 비슷한 심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중독이라는 사실에 있어서 중독자는 스스로도, 타인도 속이고 있다.
중독자의 부정직은 술 문제뿐만 아니다. 일상의 전반에 걸쳐 정직하지 못함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술에 취해서 출근을 하지 못할 때 그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어머니가 아프셔서,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핑계를 댄다. 술을 마시느라 집에 오지 못할 때도 야근이어서, 초상이 나서 등등의 거짓말을 한다. 술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월급을 속이고 카드명세서를 숨긴다. 중독자는 빚이나 돈거래에 감추어야 할 부분이 많다.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시간 약속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미루는 일이 많다.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도 책임감을 지기보다는 편리하고 손쉬운 편을 택한다. 주말에 장난감을 사러 가자고 아이들과 했던 약속이나 고장 난 수도를 고치겠다는 약속은 너무나 쉽게 번복된다. 그때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하는 비슷한 패턴의 결과가 나타난다. 주변사람을 화나게 했던 언행에 대해서도 솔직하지 못하게 변명한다. 내가 너를 위해서, 좋은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 유치한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중독자의 어쩔 수 없는 증상이고 그것에 속아 넘어가는지, 속지 않는지가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몫이다.
중독치료의 첫 번째 단계는 본인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저는 알코올중독자임을 시인하고 회복 중인 사람입니다.” 이 고백이 회복의 첫 단계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병원에도 가도 의사도 만나며 약도 먹고 입원도 할 수 있다. 상담도 받게 되고 12단계 회복 과정도 밟을 수 있다. 누군가의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 정직하게 자신을 고백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이 정직한 시인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인데 이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 중독자가 정직하게 자신의 병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거짓의 속성을 가진 것이 중독이라는 병이기 때문이다.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고 회피한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니라고 고개 저으면서 도망가는 것을 택한다. 병원은 진짜 알코올중독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치부하면서 본인은 그런 중독자들과 다르다고 부정하고 있다면 그의 회복은 아직 멀었다. 어쩌면 그는 좀 더 바닥을 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