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중독자는 이기적이다. 철저히 이기적인 본성이 마음바탕에 깔려 있다. 이기적이란 말은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기적인 것이 나쁜 일일까? 어쩌면 중독자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이런 이기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을 위하고 자신에게 좋고 도움 되는 선택을 하려는 것은 사람들의 기본 욕구이다. 생존을 위한 당연한 욕구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과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의 차이를 주목해 보자.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괜찮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이기적인 면은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태어나면 이기적이다.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울어서 먹는 욕구를 채워야 하고 대소변을 보면 역시 찝찝한 것을 표현한다. 아프거나 덥거나 가렵거나 모든 불편한 상황을 누군가 즉시 해소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욕구 못지않게 ‘타인의 욕구’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내’가 아닌 ‘상대방’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젖을 먹을 때 이로 깨물면 엄마가 깜짝 놀라고 소리를 낸다거나 아파한다거나 하는 부정적 반응이 따라옴을 알게 된다. 웃는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함께 웃어준다는 것도 경험한다. 장난감을 뺏으면 친구가 큰소리로 울고 어른이 다가와 중재를 하는 경험도 한다. 동생을 때리면 혼이 나고 벌을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케이크를 다 먹지 않고 그 자리에 없는 가족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상장을 받으면 부모가 기뻐하고 칭찬한다는 것도 배운다. 기쁨, 슬픔, 우울, 분노, 두려움, 죄책감, 불안 등 많은 감정이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점차 학습하게 된다. 이것은 성장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할 과정이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은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인 선택도 할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빵을 친구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사정이 급한 사람에게 택시를 양보하기도 한다. 이타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그들은 너그럽고 타인에게 베풀 줄 안다. 이렇게 나눠주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자신이 가진 것이 없고 마음이 가난하면 이타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낮아진다. 단지 경제적인 부분의 풍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더 중요하다. 충분히 사랑받고 일상이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이는 타인에게 한 발 물러서고 양보할 마음이 훨씬 많다. 하지만 마음이 각박한 사람은 심리적인 여유도 너그러움도 없다. 그는 자신의 배고픈 마음을 스스로 채우기에도 급급하다. 다른 이를 돌볼 여유는 당연히 없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이 없을 때도 나눠줄 수 없지만 앞으로 내가 받을 거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역시 자신의 것을 움켜쥐게 된다. 매주 만원을 용돈으로 받는 학생이 있다고 치자. 사정이 딱한 친구를 보게 되면 이 학생은 어떻게 할까? 매주 꼬박꼬박 용돈을 주시는 부모님이 있고 이 학생이 모아놓은 돈도 약간 있으며 가끔 큰돈이 필요할 때면 부모님이 기꺼이 돈을 주시는 분이라면 이 학생은 어떻게 할까? 큰 고민 없이 자신이 가진 돈을 친구에게 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학생의 부모님이 몹시 가난해서 어쩌다 한 번씩 용돈을 주고 앞으로 언제 용돈을 받을지 기약할 수 없고 심지어 겨우 모아 놓은 몇만 원을 뺏기기도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 학생은 자신의 만원을 바들바들 떨며 움켜쥐게 된다. 아무리 친구가 딱한 사정에 처해 있어도 선뜻 자신의 만원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중독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금껏 충분히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생각하면 너그럽게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남의 입장도 헤아려볼 수 있다. 오늘 내 만원을 친구에게 주어도 나는 곤란에 처하지 않고 보호자가 내 지갑을 또다시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결핍의 세월을 보냈고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중독자의 이기심은 극에 달한다.
“세상은 믿을 수 없어. 나를 지킬 건 나 자신뿐이야. 그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아.”
이런 마음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켜보겠다고 바들바들 떤다. 이런 생각을 가진 중독자를 비난할 수 없다. 그가 살아온 과정으로 인해 이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중독자는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다. 몸은 성장하였어도 속사람은 아직 충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어른스러운 결정이나 책임감 있는 태도, 양보하는 미덕 등은 어린아이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음속에 결핍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독자는 30세이든 60세이든 자기밖에 모르고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그 속성이 매우 강하다. 원초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이고 마시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것 등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타인의 고통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에게만 포커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중독자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기가 막혀 하지만,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 역시 중독의 속성이라는 점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어린아이 기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야비하며 참아줄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다. 오직 자신의 기쁨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뿐, 타인이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타인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대상에 호기심을 보인다. 약한 존재에 대해서는 잔인함을 보이고 그것을 파괴하며 희열을 느낀다. 극히 미미한 욕구조차도 당장 채워주기를 맹렬하게 요구하며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당신 주변의 알코올중독자를 떠올려보자. 오직 자기 욕구만 채우려고 하고 타인의 고통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인내심과 참을성은 없지 않은가? 아주 사소한 욕구조차 당장 채워달라고 맹렬하게 요구하는 중독자는 어린아이 기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중독자의 이런 어린아이 때문에 중독자 옆에 있는 당신은 그의 욕구를 채워주는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신이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이든 자녀이든 오히려 당신은 그를 돌봐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고 있게 된다. 당신은 중독자 대신 집안일을 하고 뒤처리를 해주며 생계를 책임지기도 한다. 이런 일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수년간, 수십 년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반복된다. 그가 내 몰라라 하는 여러 책임을 혼자 떠맡기도 한다. 이것은 중독자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자신이 수고하는 대신 다른 사람이 상황을 해결한다면 이것은 매우 솔깃한 방법이다. 이 달콤한 경험을 중독자가 놓칠 리 없다. 술을 먹고 뻗어버리면 힘들고 귀찮은 일은 다른 사람이 해 주게 되고 그러면 중독자는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마다 술 취하는 것으로 도망치는 편을 선택한다. 중독자는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방법에 있어서는 놀라우리만큼 영리하다.
중독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 주위사람들이 자신을 돌보게끔, 돕게끔 교묘하게 조종하기도 한다. 때론 잘해주고, 때론 윽박지르고 교묘히 상황을 조정하여 가스라이팅 하기도 한다. 이용하지만 지나치게 힘들게 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포기하고 떠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교묘함을 보이기도 한다. 착취의 대상이 없으면 본인이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대상에게 잘해주는 방식으로 회유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마시지 않을 때는 더없이 잘해주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독자의 선행은 세밀히 들여다보면 타인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해 이 모든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중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