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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원한

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중독자가 가지는 감정 중 분노와 원한이 있다. 먼저 분노는 ‘화’이다. 이 화는 상대방에 대한 화도 있고 자신에 대한 화도 있다. 

알코올중독자 역시 자신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 순간의 쾌락을 좇아 중독에 취하고 있지만 내성이 생겨 점점 더 많은, 더 센 중독을 찾게 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은 중독의 늪에 빠진다. 잠시의 쾌락이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은 더 고통스럽다. 그게 싫어서 또다시 술을 마시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마실 때도 마시지 않을 때도 알코올중독자는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 진짜 행복을 찾지 못해 가짜 행복으로 연명하고 있으니 그 삶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못마땅하고 화가 난다.    

  

이 화가 타인을 향해 쏟아지면 원한이 되고 자신을 향해 나타나면 우울과 자책이 된다. 

먼저 원한을 살펴보자. 사람은 어떤 힘든 상황을 만날 때 그 원인을 남 탓을 하거나 내 탓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내가 술을 마시게 된 건 아빠 때문이야. 유전된 거야.”

“나를 왕따 시키고 괴롭힌 그 놈들 때문에 내가 중독에 빠진 거야.”

“마누라가 집을 나가서 그때부터 내가 더 마시게 된 거야.”


중독행위는 남 탓을 하면서 더 많은 핑곗거리를 갖게 된다. 중독자는 타인에 대한 원망을 중독의 이유로 합리화한다. 이 상황을 제공한 사람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리면서 모든 책임을 그의 탓으로 돌린다.  주로 자신을 양육해 준 부모나 결혼생활을 함께 한 배우자 등 주변 가까운 사람이 원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인생에서 괴로운 경험을 주었던 가해자 같은 사람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신이나 절대자에 대해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도와주지 않는가, 왜 날 구원해주지 않나, 신이 있다면 나를 이렇게 괴로운 상태로 내버려 둘 수가 있나 하는 원망 등이다. 원망의 대상이 사람이든, 신이든 중독자는 사소한 이유를 찾아내서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한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럴 사람을 찾아내어 남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도 습관이듯이 원한도 습관이다. 내가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 마음의 패턴이 되어버리고 나면 삶의 여러 장면에서 이 원한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른다. 회사의 부장님을 볼 때, 이웃사람을 볼 때, 가게 점원에게도 예외가 없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감정의 버튼이 눌러지면서 분노가 폭발한다. 무시당하고 대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주로 작용하고 상대방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도 있다. 이런 결핍의 감정 때문에 대상을 정해서 미워하고 원망하게 된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인데 중독자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원한을 붙들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대한 주된 감정이 원한이라면 상황에 대한 감정 중에는 분노가 많다. 알코올중독자는 너무나 쉽게,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낸다. 버럭 하는 그 감정은 예상하기도 어렵고 갑자기 번개가 치듯이 벌컥 화를 낸다. 집에 왔는데 설거지가 쌓여 있다거나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거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티켓을 잃어버렸다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버럭 화를 내게 된다. 급히 화를 내는 미숙함이 중독자의 심리이다. 온유하고 천천히 화를 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인격적 성숙을 요한다.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지 않는 이상 화를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상태가 원초적인 알코올중독자는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미숙함을 드러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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