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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하다

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중독자는 대체로 무질서하다. 정리정돈이 어렵고 주변환경이 어질러져 있기 일쑤이다. 중독자가 살고 있는 방을 보면 쓰레기와 각종 물건이 뒤섞여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중독자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 안은 먹다 남은 음식과 버리지 않은 쓰레기 들로 인해 앉을 수조차 없기도 하다. 바닥과 시트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다. 어떤 알코올중독자는 가족들이 생활하는 거실이나 방을 피해 창고나 차고 등에 자신의 은신처를 마련하기도 한다. 조명을 어둡게 한 음침한 공간으로 피신해 음주를 즐기곤 한다. 이런 공간은 대체로 정리정돈이 되지 않고 어질러져 있다.      


중독자가 이렇게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는 것은 기질이나 성격인 탓도 있지만 중독의 특성 자체가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질서 정연한 삶과 거리가 먼 것이 중독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운영되고 사람이 살아가는 창조의 원리에서 멀어진 것이 중독자의 삶이다. 정돈된 삶을 떠나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방이나 집이 엉망으로 어질러진다. 이 모습은 중독자의 마음상태와도 비슷하다. 알코올중독자의 사고방식이나 뇌의 활동 또한 뒤죽박죽이다. 

그의 카드명세서와 수입지출도 일목요연하지 않고 여러 가지가 마구 뒤섞여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다가 갑자기 멀어지다가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집중적으로 연락을 하는 등 인간관계도 대중이 없이 중구난방이다. 

말이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문의를 하거나 점원과 이야기를 할 때 중독자의 말을 잘 들어보면 앞뒤가 정리되어 있지 않고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버버 하면서 앞뒤 상황을 섞어서 혼란스럽게 말한다.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지 두세 번 듣고 물어야 겨우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중독자는 인지, 정서, 영성의 세 가지 영역이 혼란스러워져 있는 상태이다. 이 혼란스러움이 대화와 같은 언어표현, 인간관계, 경제적인 상황, 방이나 승용차 책상과 같은 물리적인 환경으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움이 중독자의 특징인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저장강박적인 성향도 더해진다. 중독자는 물건을 버리기를 힘들어한다. 이것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저것도 추억이 깃든 것이고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수십 년째 보관만 하고 있는 것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점점 물건은 늘어나고 집은 엉망이 되어 간다. 정리를 하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쌓이기도 한다. 이것은 심리적인 결핍, 허기를 물건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에 이 물건을 버렸을 때의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지고 이거라도 붙들고 있고 가지고 있어야 그나마 마음이 덜 헛헛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독자는 오래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기를 힘들어한다. 


충분히 소유했다는 만족감이 있는 사람은 물질이나 행위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은 자신이 이미 받은 사랑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채움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이런 만족이 충분하지 않을 때 사람은 물건이나 행위로 심리적인 결핍을 채우려 하게 된다. 필요도 없는 물건을 계속 사는 쇼핑중독 역시 뿌리는 심리적 결핍이다. 쓰레기를 집안에 가득 차도록 모으는 저장강박 역시 불안, 결핍이 감정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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