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이 더 괴로운 알코올 중독
“저의 애인이 알코올중독이에요.”
“동거남(혹은 동거녀)이 알코올중독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얘기한다면 상대방은 뭐라고 답할까?
“결혼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얼른 도망쳐!”
“아이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빨리 헤어져!”
아마 십중팔구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이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는 당신을 지치고 힘들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독자가 변화하고 달라지기를 당신은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의 선배들은 그런 일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다고 답한다. 중독자가 술을 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일시적으로 단주하더라도 몹시 재발의 위험이 높다는 것은 이 세상 많은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결국 알코올중독자 주변인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별’을 추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당신이 여전히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말리고 반대하고 입을 모아 헤어질 것을 추천해도 당신은 여전히 알코올중독인 연인 옆에 머물러 있고 중독자를 돌보고 있다. 그, 혹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무엇 때문에 그 사람에게 끌렸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남녀가 만나서 사귀게 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끌림의 과정이 있다. 아름다운 용모, 시원시원한 성격, 자상한 배려, 경제적 능력, 지적인 총명함 등등 많은 요인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당신은 중독자의 어떠한 매력 때문에 중독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나? 여러 가지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이런 감정은 없는지 한번 돌아보자.
중독자는 스스로 서기 어려운 사람이다. 알코올중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렵다. 버스를 타거나 집을 찾아가거나 마신 술병과 식탁을 치우는 등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 말은 곁에 있는 누군가가 취한 이를 도와주게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중독자가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술의 세상으로 회피하고 도망갔을 때 그 빈자리는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이가 대신 메꾸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나뉜다. 누군가가 하지 않는 무책임한 일을 대신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내가 왜 이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냐고 불쾌해할 수도 있고 언짢아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몰라라 하기도 한다. '내가 왜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편을 선택한다.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거나 술이 깰 때까지 기다려주거나 약을 사다 주기도 한다. 이 행동을 하는 당신의 마음이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중독자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코올중독자가 도움의 수요자라면 당신은 도움의 공급자이다. 당신은 알코올중독자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갖다 바치고 있다. 전기의 플러스 극과 마이너스 극처럼 중독자는 끌어당기고 당신은 제공하고 그래서 이 관계는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주위의 만류나 조언이 당신 커플을 헤어지게 만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구원자 환상이란 용어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 도울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저 안타깝고 혼란에 빠진 알코올중독자를 내가 중독의 늪에서 구해주리라, 심지어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믿는다. 나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알코올중독자를 떠날 수 없다. 떠나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역할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며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매우 희박한 확률이지만 반드시 그 사람을 단주시키는 데 성공해야 하고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삶의 중요한 동기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텅 비게 되면 마치 내가 사라진 듯 몹시 공허하고 견딜 수 없다. 나는 나이고 상대방은 상대방인 상태가 감정의 경계가 있는 것인데 이 구원자 환상인 상태에서는 서로 간의 경계가 없다. 내 삶의 목적이 ‘그 사람의 변화’에 있기 때문에 나와 상대방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 나와 중독자는 밀접한 관계가 되어 분리가 어려워진다. 이쯤 되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었는가? 무엇을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는가? 당신이 어린 시절에 양육과정에서 받았던 사랑과 배려는 어떤 형태였는가? 만약 엄마를 돕거나 동생들을 돌보거나 애교를 부리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등등 어떤 역할을 해야지만 사랑과 인정이 주어졌다면 당신에게 역할 행동이 학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무엇을 해야지만, 행동해야지만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다가온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끊임없이 어떤 행동을 하려 한다. 그런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친구나 애인은 누구일까? 바로 중독자이다. 그는 상대방의 행동을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당신 마음속의 우월감이다. 대체적으로 알코올중독자는 열등하다. 술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은 알코올중독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는 결함이 있는 사람이고 객관적으로 함량미달인 존재이다. 모자라고 부족해 보이고 나중에는 경제적인 능력도 하락하고 신체적인 건강도 나빠진다. 이런 열등한 대상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를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왜 그럴까? 대부분이 자기보다 낫고 능력 있고 멋있고 괜찮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택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옛 속담에서 그 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딸은 치넣고 며느리는 아래서 데리 온다’는 말이 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어보면 아래와 같다.
‘아들은 가난한 집에 장가보내고 딸은 부잣집에 시집보낸다’
이 말의 의미를 떠올려 보자. 딸은 부잣집에 시집보내어 풍족하게 살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마음이라는 것은 이해가 쉽다. 하지만 아들은 왜 가난한 집 딸과 결혼을 하게 할까? 부잣집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것과 가난한 집 딸을 며느리로 들이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무래도 예전에는 콧대 높고 꿀릴 것 없는 부잣집 딸보다는 가난한 집 딸을 며느리로 삼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시집살이를 시킬 수 있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이런 속담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친정이 부자든 가난하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사람들은 가난한 집 딸은 쉽게 구박하고 내 편한 대로 대해버린다. 안타깝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이런 마음은 우리에게도 있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선택해서 때론 내 마음대로 하기도 하고 내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내 본능대로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는 동기로 인해 중독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이러한 동기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마음 깊이 숨어 있어서 발견하기 어렵다. 정직하고 깊이 있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이런 우월감의 동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는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겨볼 일이다.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파괴적 관계도 없는 것보다 낫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중독자와의 연애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이 있다. 취하면 연락이 두절되고 술값을 달라고 하고 취해서 일으킨 사건들로 경찰서에 가야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고 기념일을 챙기고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이런 다정하고 낭만적인 일상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이 관계를 유지하는가 살펴보면 때론 이 관계가 유일하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중독자가 아닌 다른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알코올중독의 연인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사람과 정상적인 사랑을 하기 어려운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중독자는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이 사람과의 관계라도 나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에 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그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지막 요인은 이 불안하고 자극적인 관계가 익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부모나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중독이었을 경우에 많이 나타난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중독자의 가정에서는 언제 취할지 모르고 언제 큰소리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오래 누적되어 쌓인 감정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내 마음속에 굳어 있다. 감정의 패턴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 누군가 나에게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면 그것이 무척 어색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친절이기 때문이다. 반면 거칠게 소리치고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반면 가끔 잘해주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의 상호작용은 나에게 매우 익숙하다. 어린 시절 여러 번의 경험한 감정과 행동의 패턴으로 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이 원리를 알게 되면 또 한 가지 이해되는 점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알코올과 폭력이 싫었던 딸이 왜 똑같이 술주정뱅이와 결혼을 하게 되는가?'이다. '남편의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도망쳐 가출한 여자가 왜 또 중독자인 남자를 만나는가?‘ 하는 점이다.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나는 어색하고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마음 아픈 사실을 알아차리고 직면하고 위로할 때 이제 당신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