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해서 첫 학기를 보낸 딸아이의 성적이 나왔다. 결과는 꽤나 높은 학점을 받았다. 딸아이도 기분이 좋고 나 역시도 신이 났다. 딸아이는 성적이 잘 나온 것에 만족할 테지만 엄마인 나의 관심사는 "과연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그것이 부모의 관심사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정도 학점이면 장학금을 얼마를 받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물어볼만한 선배도 없고 학생들이 소통하는 에브리타임, 소위 에타에 들어가 봐도 속 시원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학과 온라인 게시판에 들어가 봐도 성적장학금의 종류는 소개되어 있지만 지급기준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결국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학과사무실에 수혜대상이 되는지 물어보거나 등록금 고지서 출력기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머리로는 등록금 고지서 출력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지서를 출력해 보면 장학금수혜 여부를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조급함'이 발을 동동 구른다는 것이다. 고지서는 8월 중순이 넘어야 출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 '조급증'이 또 내 마음의 전면에 등장했다. 빨리 결과를 알고 싶은 마음에 도저히 잠자코 기다릴 수가 없다. 대학생은 엄연히 성인인데 엄마가 학과에 전화를 하다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꽤 여러 번 "기다려"와 "전화해"가 내 마음속에서 무수히 엎치락뒤치락했다. 안타깝게도 조급함이 그 모든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물리치고 내 마음을 장악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학과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본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결과는 조교가 자리에 없어 통화를 하지 못했다. 며칠 뒤에 전화를 했으나 또다시 타이밍이 어긋났다.
'아, 기다리라는 사인이구나.' 역시 기다렸어야 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상담실에 오시는 많은 분들이 조급해하신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톱을 뜯거나 강박행동을 하는 것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반복해서 저지르게 된다.
가만히 있는 상태를 견디는 힘, 그것이 불안을 지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나에게도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온한 마음이 될 때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을 내려놓아야 기다릴 수 있다. '기다려도 괜찮다는 사실을 믿어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괜찮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내가 스스로 어찌해보려고 설치게 된다. 세상과 나와 타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애를 쓰고 동분서주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잠자코 기다릴 수 있다.
두 번의 전화연결이 실패한 뒤, 나는 힘들어도 기다려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조급하고 초조해하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그러면 하루하루 지나가고 언젠간 그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기다릴 수 있겠지. 조급함이 올라오는 내 마음에게 스스로 말해본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