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인도에 가는 예능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예인들이 무인도에 가서 자연산 해산물을 잡아서 셰프가 음식을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내용이다. 자연에서 식재료를 구해야 하니 출연진들은 낚시도 하고 해루질도 한다. 머구리 옷을 입고 얕은 해안가에서 전복이나 소라 멍게 해삼 등 자연산 식재료를 구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몇 명의 머구리가 바다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찾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전복이다. 전복을 찾으면 환호하면서 기뻐한다. 다른 사람들도 전복을 찾은 머구리의 공로를 치켜세워준다. 전복을 손에 들고 의기양양해한다. 전복을 잡지 못한 머구리는 자신도 전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전복을 찾지 못할까 초조해하는 모습, 시무룩한 모습 등이 화면에 비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전복이 더 가치가 있지?
한 머구리가 소라를 발견하자 다른 이가 말한다.
"그거 말고 전복 잡아. 전복!"
대체로 바닷가에서 전복은 무척 환영을 받는다. 귀한 식재료 취급이다. 전복이 귀한 건 좋은데 소라, 고동 등 다른 해산물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다. 전복이 주인공 역할이라면 다른 해산물은 조연 같은 느낌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전복은 몸값이 비싸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높은 시장가격으로 인해 전복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 어떤 재화도 자본주의 체계 아래서는 가격, 즉 몸값이 정해져 있다. 전복이 비싸고 참돔이 비싸고 톳이나 미역은 비싸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싼 전복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전복을 얻었을 때 기뻐한다.
그런데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전복이 비싸서 환영받지만, 소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천으로 널린 톳보다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격과 가치는 다른 듯하다.
홍합은 몸값이 참 저렴하다. 한가득 든 망을 사도 몇천 원 하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전복이 만원이 훌쩍 넘는 것에 비하면 홍합은 참 몸값이 낮다. 그래서 가끔 홍합을 사서 얼큰한 홍합탕을 끓이면 맛도 맛이지만 이렇게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이렇게 푸짐한 음식 한 사발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래서 홍합탕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저렴하고 따스한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홍합은 가격은 낮다. 하지만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가격은 상대적이지만 가치는 절대적이다. 전복도, 홍합도 모두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비록 시장에서의 가격은 다를지라도 존재의 가치는 차등이 없다. 전복도 소중하지만 홍합도 소중하다. 당신도 소중하지만 나도 소중하다. 나도 소중하지만 당신도 소중하다. 존재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