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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생애 두 번째 코로나는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며칠을 끙끙 앓더니 병원에 다녀온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코로나란다!"

남편은 며칠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정말 심하게 끙끙거리며 앓았다. 집에 있는 이런저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소화도 안되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죽이나 마시는 것 종류만 조금 먹고 호되고 아프면서 생각했단다. '아, 내가 정말 약해졌나 보다.'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던 남편은 코로나라는 말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단다.

'그럼 그렇지, 코로나라서 그렇게 아픈 거였어!' 

남편은 코로나 첫 감염이다. 우리 식구들이 돌아가며 코로나를 앓을 때도 혼자 거뜬히 살아남았는데 이번은 비켜가질 못했다. 남편은 며칠간 심하게 아프긴 했지만 코로나라는 진단에 오히려 마음은 편해진 듯했다. 그렇게 남편이 안정기에 들어갈 무렵, 이젠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점심 먹고 오후에 남편 옷을 살게 있어 같이 쇼핑을 나갔는데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지치고 힘들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그냥 쇼핑을 중단하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널브러져 쓰러지듯 누웠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아픈 게 심상치 않아 집에 있던 자가키트를 꺼내어 해보았다. 아주 희미한 두줄.... 오늘이 증상 첫날이라 명확히 나오지 않는 거 같았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어 아무래도 병원 문 열었을 때 확진을 받는 게 나을 거 같아 동네 내과를 찾았다. 

목이 아프고, 몸살처럼 근육통이 심하다고 하고 내원사유에 '코로나 의심'을 적었다.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의사가 어찌나 깊이, 정확하게 면봉을 코 안으로 밀어 넣는지 진짜 눈물이 찔끔 났다. 이 코로나 검사가 이젠 비급여가 되어 비용이 25,000원이나 했다. 검사를 하고 대기실에 기다리자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코로나네요. 바로 나오는데요."

의사 말 한마디에 나는 코로나 환자가 되었다. 우선 목이 아프니 가글을 할 수 있는 액과 진통제 등 내복약 7일치를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수액을 맞기를 권했다. 그렇게 수액까지 맞으니 진료비가 9만 원가량 나왔다. 수액이나 검사가 비급여라서 그런 듯했다. 다행히 실비보험이 1세대여서 본인부담금 5천 원을 공제하고는 통원의료비로 지급받았다. 

진단받고 3일 정도는 몹시 아팠다. 조금이라도 걸을라치면 다리가 구름 위를 둥둥 걷는 듯했고 내 몸과 다리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고열은 아니지만 열감이 있어서 허벅지며 다리 쪽에 열기가 느껴졌고 칼날을 삼키듯이 목이 따갑고 아팠다. 머리는 멍하고 집안에서 좀비처럼 걸어 다니거나 에고에고 하며 눕기를 반복했다. 점심 먹고 약 한 첩 먹으면 저녁 먹을 때까지 의식 없이 쓰러져 잤다. 그리고 또 저녁 먹고 약 먹고.... 낮잠을 오후 내내 잤는데도 저녁에는 또 잠이 왔다. 그렇게 2~3일은 약 먹고 잠을 잤다. 


모임과 일정을 취소하고 칩거해서 앓았더니 3~4일이 지나자 조금씩 증상이 호전되었다. 1인 사무실에 나가서 온라인으로 짧은 모임이나 상담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방약은 5일 치 정도 먹으니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될 듯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고 느껴졌다. 미루었던 일정을 다시 잡는 중이다. 프리랜서는 무노동 무임금이라 코로나에 걸려서 일을 쉬면 수입도 감소하고 온전히 피해를 입어야 하지만 그나마 일이 없고 한가한 시기에 앓고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또 같이 지낸 딸아이가 감염을 피해 가서 참 다행이다. 컵과 식기를 따로 쓰고, 밥을 따로 먹고 가급적 같은 공간에 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지냈더니 한 집에 살아도 감염이 되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코로나이니 자신이 격리해야겠다며 방에 콕 박혀서 나오질 않기도 했다. 평소 치대고 안아달라고 잘하는데 일주일가량은 안기지도 못했다. 건강한 식구를 격리한 덕에 딸아이는 코로나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심각성이 줄었다 해도, 코로나는 코로나다. 그 어떤 감기 몸살보다 호되게 앓았다. 이제는 공공장소나 실내를 갈 때는 마스크도 챙겨서 쓰고 다닌다. 

"예전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해도 노약자나 기저질환 있는 분은 코로나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조심조심, 슬기롭게 코로나 대유행기를 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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