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프로젝트

by 간질간질

돌멩이가 요즘 말이 없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켜던 TV도 건드리지 않고, 넷플릭스를 헤매지도 않고 쓰잘데기라곤 수제비의 근육을 불룩이는 거 외엔 없는 말장난도 하지 않는다. 수제비는 묻지 않는다. 둘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 공간에서 수십 년간 따로 살던 생명체가 같이 머무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간에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규칙은 글로 써 놓을 수도 있고, 말로 할 수도 있고, 한쪽이 포기할 수 도 있고, 양쪽 다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다. 설명할 수 없고 명확히 할 수 없지만 공간에 있는 권력자 두 명이 따르면 그것이 바로 규칙이 된다. 넓디넓은 초원이나 사막도 아닌 아이 손바닥 만한 공간에 사람 둘이 머물면 무조건 마주치게 되고 건드리게 된다. 수제비와 돌멩이의 공존 규칙 하나. 한 명이 말을 걸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존재를 무시한다.


돌멩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둘이 있지만 혼자 사는 공간으로 바뀐다. 분명 생명체가 존재하지만 2차원의 존재가 3차원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듯, 식물이 가득한 정글에서 '아무도 없네'라고 말하듯,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외로움을 느끼듯 혼자. 며칠째 수제비는 혼자의 공간을 누리고 있다. 죽은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뚫고 지나가듯 돌멩이는 수제비를 지나쳤지만 수제비도 돌멩이도 혼자다. 사실 혼자만의 공간은 어디에도 있다. 1천만 명이 넘는 서울이지만 회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은 혼자다.


"응모했어"

돌멩이가 오랜만에 입을 뗐다.

"잘했네"


수제비는 돌멩이가 말하는 응모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브런치에서 공모하고 있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돌멩이가 응모했다는 밀이다. 돌멩이는 친한 회사 후배의 권고사직 이후 작가가 돼서 책을 내겠다고 떠들어댔다. 수제비는 안 되는 걸 알지만 말리지 않았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허우적 댄다. 그때 수영을 못하는 니가 허우적 대서 뭐할 거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잔인하고 차가운 말은 없다. 돌멩이가 책을 낸다고 하는 건 허우적거리는 거다. 그걸 알기에 수제비는 그냥 둔다. 어설프게 구하러 들어갔다가는 둘 다 물에 빠진다. 수제비도 버거운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 돌멩이가 허우적 댄다고 다가갈 수는 없다. 둘 다 죽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둘은 금방 다시 혼자가 된다. 둘이 같이 앉아 있지만, 돌멩이가 습관적으로 켜 놓은 TV에서 몇 번을 본지도 모르는 방송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누구도 TV를 보고 있지 않다. 이 공간에는 혼자인 생명체 둘. 혼자인 무생명체 하나가 있다. 무생명체는 소리를 내지만 생명체는 소리가 없다.


돌멩이도 알고 수제비도 안다. 응모작은 셀 수도 없을 만큼 길고 긴 스크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으며, 얼마나 많은 글쟁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으며, 얼마나 그 글을 담아낼 만큼 서버가 많은지. 얼마나 책을 낼 수 있는 글이 적으며, 얼마나 선택받을 사람의 수가 적으며, 얼마나 그 글들을 텍스트로 변환했을 때 용량이 적은 지.


하지만 누구도 미리 이야기하지 않는다. 돌멩이도 알고 수제비도 안다. 돌멩이의 글이 선택되어 책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수제비가 이번에 참여한 출판사 사장이 아닌 이상 돌멩이의 글이 선택될리는 없다. 돌멩이의 글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쥐어 흔들 정도로 애절하지도 않고, 돌멩이의 글이 출판사에게 부를 안겨줄 만큼 돈 냄새가 나지도 않고, 돌멩이의 글이 모든 사람을 잠시 착각하게 만들 만큼 마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돌멩이와 수제비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돌멩이는 응모를 했다. 돌멩이와 수제비는 누구의 눈에도 띌 만큼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최근에 세상을 떠난 삼성 회장처럼 돈이 많지도 않고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BTS처럼 재능이 돋보이지도 않지만 살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역사책에 기록된 사람이 많아 외우기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돌멩이와 수제비의 선배들은 수레를 한가득 채우고, 트럭을 한가득 채우고, 화물선을 한가득 채워도 넘치도록 많다. 역사책에는 그저 사람들, 민족, 국민, 병사, 이민족, 노예, 백성 이란 말로 퉁쳐 있다. 이번에 돌멩이의 글은 '응모작'이란 단어에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 있을 것이다.


돌멩이는 응모했고, 떨어질 것이다. 아니 돌멩이와 수제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소수의 사람. 이 글을 적고 있는 작가에게는 응모했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산 것이다. 버스를 타며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타면서 환승을 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누구에겐 읽씹을 당하는 것처럼 그냥 하루를 지낸 것이다.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로또를 사는 것만큼이다. 1등을 기대하지만 1등이 되지 않고, 1등이 안되었다고 목 놓아 울지 않고 금세 잊어버리는 하루를 산거다.


돌멩이도 알고 수제비도 안다. 하루가 지난 거고 하루가 지날 거다. 오늘 하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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