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by 간질간질

돌멩이는 전염됐다. 다행히 요즘 유행하는 코로나는 아니다. 돌멩이 후배가 퍼뜨리는 우울함에 깊이 빠져들었다. 돌멩이의 후배는 다른 부서에서 근무했지만 그 후배가 모시던 상사가 밀리자 같이 밀려났다. 원래 잘 나가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일을 하던 잘 나가는 후배였지만 지금은 밀려서 돌멩이네 팀까지 흘러 들어온 후배다. 하긴, 월급쟁이에게 잘 나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나간다는 말은 회사를 빨리 나가게 될 거라는 것과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돌멩이의 우울함은 끈적끈적함을 주 무기로 삼던 본부장이 이번 인사발령에서 밀려 나가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최고조에 다다랐다. 소설에서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수록 사람들이 긴장하고 소설에 빠져들지만, 삶에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수록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 말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


후배가 알려준 직장인의 쓸데없는 걱정 3가지 중 하나가 임원 걱정이라지만 없는 걱정도 모아서 하는 것이 직장인의 본능이다. 나머지 두 가지의 걱정이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돌멩이는 나중에 글 중간에 집어넣기로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와 상관없는 돌멩이의 하소연을 끝까지 읽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임원이다. 임원은 정규직과 달리 계약해지라는 단어로 얼마든지 그만두게 할 수 있다. 임원이 되면 사람들이 축하할 때 으레 하는 말로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고 던지는 말이 인사치레만은 아니다. 정규직을 내 보내려면 법이 보호해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만 임원에겐 허술한 울타리마저 없다. 그냥 나가라고 하면 나간다. 뻐대어 봤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법도, 오너도,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혀를 끌끌 차며 동정은 할지 몰라도 부당한 일이라며 나서지 않는다.


본부장도 잘 알고 있다. 통보를 받고는 재빠르게 팀장들을 모아서 뒷정리를 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직원들의 단출한 임원의 짐 싸는 것을 돕는다. 그중에 돌멩이도 껴 있다. 동네가 같아서 가끔씩 끌려가다 보니 들었던 정 때문인지 끈적함을 싫어하는 돌멩이였지만 어느새 감정적으로 묶여 있다. 평소에 자리를 옮기라는 회사의 지침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나 번잡했던 짐 싸기였지만 나가기 위한 짐은 박스 2개도 안 나온다.


목숨을 건 상소장을 만들 듯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갈아 넣어 만든 서류들도 박스 안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집에 갈 때가 되면 버리고 갈 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서로 괴롭혔는지. 버려진 서류뭉치들은 회사를 나가는 사람들이 회사에 남기는 감정과 같다. 두고 오기. 회사 생활과 개인의 삶은 그만큼 벌어져 있다.


회사와 개인뿐만 아니다. 좋아하는 선배가 후배가 나가면 감정적으로 동요를 일으키지만 살아남아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이내 생존했음에 안도하고, 나간 사람들은 쉬이 잊혔다가 소문으로 다시 알려진다. 대박 맞았데, 망했데, 재혼했데, 이혼했데, 이민 갔데, 빌당샀데... 그리고 죽었데. 쯧쯧.


후배가 돌멩이에게 돌멩이를 매달아 우울의 늪에 빠뜨린 문장은 단순했다. 까먹기 전에 직장인의 쓸데없는 걱정 두 가지를 덧붙여야겠다. 하나는 재벌 걱정, 또 하나는 연예인 걱정.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회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도, 잘 나가는 회사를 부러워할 때도, 경영진을 욕할 때도, 구조조정 소문이 돈다고 할 때도 후배는 단순했다.


"현실은 원래 다 비루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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