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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J Aug 23. 2021

그녀의 갑작스런 퇴사통보

소셜벤처를 창업한 아내에게 변호사 남편이 내조하는 방법

"오빠, 나 그냥 퇴사할까?"

"그려."



아내는 충남 홍성에서 나고 자랐다. 덕분에 서울 토박이인 나는 연애시절부터 아내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통해 구수한 충남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다소 어려운 부탁을 드릴 때도 "그려~", "이~이"라고 부드럽게 받아주실 때 긴장했던 마음이 따스하게 녹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럴까, 아내가 10년이 넘는 회사생활을 청산하겠다는 무거운 질문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충청도 사투리로 답변이 나왔다. 멍하니 천장을 보며 나란히 누워 있었던 침대가 너무 편해서 였는지, 아니면 오랜 회사생활로 지쳐버린 아내의 마음을 마지막에라도 조금 가볍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내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코스메틱 및 패션브랜드의 온라인 마케팅 업무를 해왔다. 트렌드에 민감해야하고 외국인들과 익숙치 않은 언어로 계속 소통해야하기 때문에 조직생활에 피로감이 컸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뜬금없이 바나나 판매회사(?)로 3개월 정도 이직을 했었다. 그리고 바나나를 파는 것이나 화장품을 파는 것이나 똑같이 힘들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회사생활은 힘들다.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존엄하게 만들어주는 행위지만, 그것은 노동이 스스로의 사회적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나 통하는 정의다. 노동을 상품화하여 고용주에게 판매하고, 판매대가의 수령만이 노동의 유일한 목적인 시장경제체제의 회사에서 노동시간은 줄여야 하는 비용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회사와 근로자의 입장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내부에서 승진과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조직에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근로를 계속하는 것은 스스로의 인생에 지나친 낭비다. 그리고 본능에 반하는 낭비를 수년간 지속하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해친다.


따라서 회사원으로서는 어떠한 시점이 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첫째 선택지는, 회사에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서 승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한창 고성장을 하던 시대의 인생공식이다. 가능하다면 가장 안전한 삶의 방식이지만, 저성장시대로 접어든 지금 몇몇 직군을 제외하면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둘째, 이직한다. 회태기(?)가 온 회사원들 대부분이 선택하는 방식이고, 이직만 잘 한다면 단기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직은 말그대로 미봉책이고 본질적 해결을 미루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직을 한 후 또 어떠한 시점이 오면 회사원은 어김 없이 다시 한 번 선택을 해야한다. 반복적 이직을 통해 계속해서 선택을 연장할 수 있지만, 도돌이표가 많이 등장하는 음악은 쉽게 지루해질 것이다.


셋째, 회사생활과 나 개인의 행복을 연결시킨다. 즉, 행복회로를 풀가동하여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삶의 만족감과 회사생활을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원래부터 회사업무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면 문제가 없이 살던대로 살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최소한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 이렇게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세뇌'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넷째, 퇴사하여 제3의 길을 모색한다. 제3의 길은 앞서 언급한 이직이 아닌 이상 결국 창업이나 무직생활이 있을 것이다. 무직생활은 (너무 좋지만) 경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일차적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가 소득창출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사회적 관계가 제한되며, 공동체에서 자존감 있는 지위로 자리매김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때문에 여기서 제3의 길이란 창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한해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대기업이 대부분의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데다가, 자영업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가 창업에 이로운 환경인지는 각자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아내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성공창업에 대한 확신보다는 그저 회사생활에서 오는 현실적인 피로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변호사인 것을 믿고 퇴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당시 공익단체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어 월 급여가 도시가구 월평균소득보다 적었다. 때문에 오로지 남편을 의지하고 퇴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완전한 확신을 얻기 전이라도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할 시점이 있다. 아내에게는 당시가 그러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퇴사통보는 근로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퇴사 통보를 한 달전, 2주 전에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법적인 규제는 없다. 물론 인수인계 등을 위해 2주~1달 전에는 퇴사통보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다만 회사내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퇴직 절차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나 약정이 있다면 이에 따라야 하므로 해당 내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근로자가 사표를 제출한 경우 회사가 이를 수리한 시점이나 또는 당사자 사이에 퇴사 시기에 관한 특약(단체협약, 취업규칙 및 근로계약)이 있다면 각각 그 시기에 퇴사의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근로자가 사표를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이를 수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표를 제출한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날 때 퇴사의 효력이 발생한다(민법 제660조 제2항, 고용노동부예규 제2015-100호 참조). 따라서 회사와 전혀 협의되지 않고 사표를 제출한 경우에는 최소한 1개월은 더 출퇴근을 해야 한다. 다소 혼란스러운 마지막 문단은 변호사로서 글에 법적인 내용을 담아야 성미가 풀리기 때문에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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