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목욕탕 門
Naoshima Bath “I ♡ 湯”
목욕탕이야? 미술관이야?
일단 벗고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어렸을 때 TV 만화 중에 ‘이상한 나라의 폴’을 정말 좋아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10살 소년 폴은 생일에 부모로부터 봉제 인형 ‘찌찌’를 선물 받는다. 찌찌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2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대마왕으로부터 니나를 구출하기 위해 난 늘 폴과 함께 마음 졸였었다.
나는 오빠와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나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 환상은 ‘이상한 나라의 폴’을 보면서 ‘나도 저 4차원의 문으로 들어가서 나만의 세계에 가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었다.
그 상상은 엄마와 함께 가는 동네 ‘은하수탕’으로 귀결되었다.
목욕탕을 가고 싶어서 일부러 안 씻은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꼬질꼬질한 나를 데리고 자주 은하수탕을 갔었다. 정문 가운데 앉아있는 아줌마에게 천 원짜리 두 장을 내고 들어가는 순간 나만의 4차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내 눈에 목욕탕 안에는 각기 다른 괴물들이 있었다. 안쪽에 있는 문 하나를 더 지나가면 2천 년 동안 잠들다 깬 십 수명의 대마왕들이 나를 향해 웃음 짓고 있었다. 이태리 때수건을 ‘탕탕’ 치는 대마왕, 등을 ‘짝’하고 때리는 대마왕, 탕 안에서 첨벙첨벙 헤엄치는 대마왕 등 모든 울리는 소리와 뜨겁고 습한 기운들은 나를 이상한 나라의 폴로 만들어 주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목욕탕을 그리워했었는지.
Naoshima Bath “I ♡ 湯”(탕 :일본어 발음 ‘유’) 는 한순간에 나만의 몽환의 숲으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한 4차원의 門이었다.
작정하고 떠난 일본 나오시마 섬의 미술관 기행에서 만난 ‘I ♡ 목욕탕’은 일본 아티스트인 오오타케 신로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나오시마 섬 안에 전체 미술관을 총괄하고 있던 관장이 직접 오오타케 신로를 찾아가서 이 섬을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는 ‘섬의 마을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은 뻔하겠지. 별 볼 일 없는 거 아냐?’라며 가볍게 섬을 방문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브루스 나우먼’의 대표작이 있는 섬을 보고 깜짝 놀랐고, 섬의 미술관을 리모델링하는 데 참석하기로 했다.
섬사람들이 직접 이용했던 목욕탕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공간 자체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목욕탕은 공공시설이므로 현대미술 작품이기 이전에 재미있고 그곳에 오면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되도록 섬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림을 모두 구상화로 하려고 했다.
1975년에 발매된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의 라이브 음반 <라이브 스톡 Live Stock>의 자켓에 있는 창고와 같은 건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내부에는 남탕과 여탕을 이어주는 코끼리 조형물, 춘화 콜라주를 탕 바닥에 깔았다.
“어떤 목욕탕이면 좋겠습니까?” 아티스트는 섬 노인들께 물었다.
“불끈불끈. 섬의 노인들이 건강해지는 것. 그게 최고죠”
대답에 걸맞게 완성된 목욕탕은 내가 4차원에서 생각했던 기억들과 이상한 나라의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하나의 콜라주 작품이었다.
옷을 벗고 미술관을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 나만의 4차원의 세계, 폴과 함께 니나를 구출하는 용감한 나, 언니 오빠와 함께가 아닌 나만의 공간에서 한참을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며 쿵작쿵작한 이상한 BGM을 느끼고 있었다.
저 문을 나가면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는 거다.
내가 다시 나오시마 섬으로 돌아오는 날, 난 반드시 니나를 구출해서 돌아가리라. 기다려라, I ♡ 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