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무슨 문젠데?”
“아니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러니까! 어떤 문제라도 괜찮으니 얘기해봐.”
디자이너 20년 생활이 지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디자인보다는 ‘디자이너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37명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동료로 일하는 조직은 많은 사건, 사고가 함께 했다. 팀장과 임원들은 하루가 멀다고 날 불러댔다. 사내 전화기나 핸드폰에 그들의 이름이 뜨면 항상 긴장 상태였다.
또 문제가 터졌군!
그들은 편안하고, 잘 돌아가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날 부르지 않았다. 나를 호출했다는 것은 급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을 들어가자마자 늘 호통이거나 질문부터 쏟아냈다.
같이 일하는 동료나 선후배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는 요청이나, 직원들의 면담 요청도 나에겐 모두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그룹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디자인이 거의 완성되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어쩌면 좋겠냐 등등 끝도 없는 문제점들 사이에 존재하는
나는 마치 ‘문제의 중심’ 같았다.
문제가 발생한 후 해결해야 하는 양과 질이 많아질수록 나는 문제가 생기기 전 미리 방지하려는 예감과 촉이 발달해 나갔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 혹은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미리 체크하고, 확인하고,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잘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불러서 지금 속도대로 하면 납기에 문제가 없냐고 물었다. 공사 현장에 나가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챙기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어느덧 나의 세포 안에는 마치 자신을 ‘문제 해결사’라는 생각으로 세뇌되었다.
가족 관계에서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지속되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엄마, 뭔 문제 있어?”라고 물었다.
신랑한테는 “당신은 그게 문제야.”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면담이나 인터뷰를 할 때도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문제인지를 정확히 숙지하고 해결이 빠르다.’라고 강조했었다.
사실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상황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동료나 선후배들은 나와 눈 마주치고 속 터지는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고, 나의 상사는 그 위의 상사에게 보고할 보고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엄마가 전화한 이유는 막내딸이 보고 싶으니 집에 들르라는 것이었다. 신랑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뿐이었다.
나와 소통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문제 발견자도 문제 해결사도 아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내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남은 인생을 웃으며 살기 위해 ‘문제 해결 연구소’는 이만 문을 닫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