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지 마, 자식 다 필요 없다!

위로를 가장한 위선

by 오서리
얘, 미쳤나 봐!!!
네 나이 오십인데 만약에 임신해서 애 낳으면
애가 스무 살이면,
넌 70이야. 네 신랑은 75세고!!
애는 무슨 죄니?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사는 거야!!


나이 오십에 애를 낳으면 정말 미친 짓일까?

지금 애를 낳으면 자식에게 죄를 짓는 걸까?

그녀는 나를 위로한 게 맞는 걸까?


오랜만에 친구 모임이었다.

세 명이 모이다가 한 명은 애 낳고 살림 사느라 바빴고, 또 한 명은 엄마가 아프셔서 간호하다가 결혼을 늦게 해서 애가 어려서 바빴고, 난 일하느라 바빴다.

결혼 전, ‘나도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모임에서 했었다.

둘 다 결혼을 했으니, 결혼 이야기도 듣고 싶었고, 결혼 못하고 있는 나의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대뜸,

“절대 결혼하지 마! 그냥 멋지게 혼자 살아. 너 돈 벌잖아.”

그 말로 위로를 했던 친구다.

그땐 그 말을 듣고 골드미스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다.

결혼하면 남자 친구일 때와 남편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니라고 했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댁까지 식구이기 때문에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엔 신랑과 좋은 데 가서 밥 먹고 여행하고, 너무 사랑하고 행복하다고 하트 뿅뿅 날리고, 시어머니가 친정엄마보다 더 좋다는 말들을 오글거리게 남기는 그녀였다.


자식 다 필요 없다고 했다.

아들이 둘인 그녀는 자식들이 평생 속은 썩이지만,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한다. 말로는 아들 흉을 보고 있지만, 자세히 듣고 있으면 뻥이 섞인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 자기 아들 자랑을 알아 달라는 심산으로 입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젊었을 땐 사느라고 자식 예쁜 줄 몰랐는데, 이젠 동네 애들도 이쁘다면서, 가능만 하다면 늦둥이 하나 더 낳고 싶다고 했다.


‘이건 무슨 논리지? 지는 늦둥이 낳고 싶다면서 나 보고는 미친 짓이라고 하나?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늦둥이는 인정하고 첫애를 낳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뜻인가?’


난임으로 시험관 아기 하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쳤을 지난 5년 동안의 아픔을 옆에서 봐왔던 친구이기에 가능한 위로였다. 결혼은 너무 늦었지만, 아이를 낳고 싶다는 간절함을 일찌감치 아는 그들이었기에 나를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위로하면서 상대방에게 말실수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러나 위로와 위선의 차이는 나와 상대방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달라질 때 발생한다. 그것을 상대방이 알아차리는 순간,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되며 마음의 문은 순식간에 닫혀버린다.


나에게 고민이나 문제를 털어놨던 수많은 친구와 선후배가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뱉었던 말들을 생각해내느라 밤잠을 설쳤다. 위로란 나의 입장에서 내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다. 어차피 나는 상대방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도 동일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냥 옆에서 듣고 있고, 눈 마주쳐 주는 것 그것이 실수와 위선을 피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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