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만큼 모자람을 아쉬워하다

by 오서리
한 시간만 더 있다면 마무리가 되는데..
하루만 더 있었으면 발표를 잘할 텐데..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시험에 합격할 거 같은데..



아쉬워하는 버릇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캠핑에서까지 발휘되었다.

경기, 대구, 경남에 사는 친구 다섯 명이 모여 만든 '캠핑클럽'은 분기별로 한 번씩 소집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백패킹을 최종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호화로운 장비 빨을 자랑하는 캠핑을 지향하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나무 도마와 각종 그릇 대신 콤팩트하고 기능적으로 필요한 주방용품을 가져온다. 컵 종류 역시 소주잔, 막걸리잔, 와인잔, 물 잔 등을 따고 구비하지 않고 각자의 캠핑용 티탄 컵 하나씩만 들고 온다.

그 컵으로 기상하자마자 차를 마시고,
헹군 후 아침 먹으면서 수프를 마시고,
행군 후 모닝커피를 마신다.
행군 후 점심 라면 국물을 따라 마시고
헹군 후 물도 한잔 마신다.
캠핑의 저녁 메뉴에 빠질 수 없는 돼지고기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헹군 후 와인을 마신다.
마지막으로 헹구면 내일 아침 차 마시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헹굼에 대해 그 누구도 성가심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 나도 처음 캠핑을 시작할 때는 종이컵 몇 줄씩을 들고 다녔지만, 물자와 환경 낭비이고 캠핑용 컵 하나를 사니까 더 이상 종이컵은 쓸모 없어졌다.


문제는 그 수없이 헹구는 행위이다.

맑은 종류의 차, 커피나 물은 다 마신 후 컵에 물을 1/5 정도 넣고 회오리치게 흔들거리다가 휙 버리면 된다. 그러나 막걸리, 수프 또는 라면 국물 따위를 먹고 나면 회오리 물헹굼으로는 만족도가 떨어진다. 잘 헹궈내지 않으면 맛은 섞여버린다. 매번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싶지만, 노지 캠핑을 가던지 캠핑장에서 설거지장의 거리가 멀 경우에는 각자의 둘째 손가락이 수세미 역할을 한다.


KakaoTalk_20200819_191846204.jpg 캠핑 컵을 헹굴 때 딱 손톱만큼 모자란다.

그날도 라면 국물을 마시고 난 후 맥주를 따라 마시기 위해 컵을 헹구고 있었다.

내 컵이 큰 것도 아닌데, 헹구려고 둘째 손가락을 집어넣었지만


딱 손톱만큼의 길이가 모자라네!


딱 1cm가 모자랐다.

둘째 손가락을 빼고 셋째 손가락을 넣어봤다. 그래도 0.5cm가 모자란다. 그리고 셋째보다 둘째 손가락이 컵 씻어 내기엔 힘이 좋다.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나보다 손가락이 긴 친구가 있다면 내 입으로 들이킬 컵인대도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친구들 손가락 길이도 그만그만했다.

컵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훑어내지 못한 채 맥주를 따라 마셨다. 맥주에서 살짝 신라면의 매콤함이 스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쉬웠다.


내 인생은 늘 손톱만큼의 아쉬움으로 남겨졌다.

시험 전날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00점을 받을 거 같았다. 과제 제출 전 딱 1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A+를 받을 거 같았다. 아침잠에서 허덕거릴 땐 딱 10분만 더 잤으면 싶다. 가지고 있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 성실한 태도를 잃은 채 거염스럽게 '더욱더'를 외치며 살아왔다. 만족함이나 최선의 노력으로 임하는 자세가 중요한지는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자꾸 내 탓을 했다.


이효리의 말처럼,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이쁘게 보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고 이쁘게 봐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둘째 손가락의 길이에 만족하기로 했다. 훑어내지 못한 컵 밑바닥 신라면의 향기와 맥주가 섞이는 맛 역시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콤 시원한 짜릿함'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이뻐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