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난 철물점 사장님이 될래요

내 인생 첫 번째 머신(Machine)

by 오서리

“우리 막내딸은 장래 희망이 뭐야?”

“아빠, 난 철물점 사장님이 될래요!”


어렸을 때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어보면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선생님, 발레리나, 공주님 아니면 현모양처라는 대답도 나왔었다. 나는 부모님과 시장을 가면 엄마가 가는 화장품 가게나 옷 가게를 가지 않고, 아빠를 따라 공구상, 철물점, 자동차용품점을 갔었다.

나는 철물과 공구의 세상이 너무 좋았다.


요즘은 펭수가 있고, 그 전엔 보라돌이가 있었지만, 내가 5살 때는 1976~78년까지 방송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인형극 ‘부리부리 박사’가 있었다.

부리부리 박사와 다람쥐 삼 형제


딩글, 댕글, 동글이 다람쥐 삼 형제와 함께 엉뚱한 것만 발명하는 부엉이 부리부리 박사는 당시 나에겐 우상이었고, 난 그때부터 책상 서랍에 부엌에서 쓰는 컵에 물을 담아 놓고는 혼자 실험하는 삶을 살았었다. 집에 있는 모든 공구는 내 책상 서랍으로 이동했고, 아버지가 철물점에서 뭔가를 사 오시면 모두 내 실험실로 옮겨다 놓았다.


오빠, 언니까지 낳고는 부모님은 아들 하나를 더 얻고 싶어서 셋째를 낳기로 하셨다. 막내딸로 나온 나를 보곤 친할머니는 크게 실망하셨다고 했다. 아들을 얻고 싶었던 부모님의 소원대로 난 사내아이 같은 취미가 일찌감치 발달했었고, 열다섯에 이미 나만의 공구함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삼 남매를 위해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신 연필깎이는 미제였다. 이름은 “Boston”, 나사로 바닥 고정형이고 연필 깎을 수 있는 구멍은 총 8개였다. 연필 밥을 버리기 위해 뚜껑을 열면 마치 기계실을 연상케 하는 이중 날 회전 방식으로 되어있었다.

Boston 연필깎이


두 개의 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그 짜릿함 때문에 나는 늘 연필을 부러뜨리고 깎고 부러뜨리길 반복했다. 오빠, 언니의 연필도 전부 내가 깎아주었다. 연필깎이의 메커니즘을 보고 싶어 뚜껑을 열고 깎아서 바닥엔 늘 연필 밥이 가득했었다.


첫 번째 연필깎이가 너무 오래 사용해서 녹슬고 말을 안 들을 때쯤 아빠는 두 번째 연필깎이를 사 오셨다. 일본 제품인 내셔널 자동 연필깎이였다.

내셔널 자동 연필깎이


단추로 연필심의 굵기를 조절할 수 있었고, 구멍으로 연필을 밀어 넣으면 드르륵 윙~소리를 내며 파랑, 노랑, 빨간 불로 켜지면 연필은 뾰족해져서 나왔다. 오빠와 언니는 신세계라며 자동 연필깎이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전자동이 싫었다. 소리도, 뾰족한 정도도, 너무 금방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그 느낌이 싫었다. 전자동 연필깎이를 몇 년간 쓰는 동안 아빠에게 투덜댔고 나는 차라리 도루코 칼로 연필을 깎았다. 그러는 동안, 언니와 오빠는 샤프와 볼펜을 사용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집에서 연필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빠, 난 자동 연필깎이가 싫어. 그냥 옛날 거 다시 사줘!”


나의 단호함에 아빠는 수동 연필깎이를 구해봤지만 첫 번째와 같은 제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빠는 막내딸만을 위한 세 번째 연필깎이를 사 오셨다. 그 이름도 유명한 ‘티티 하이 샤파 기차 연필깎이’는 그렇게 내 인생에 첫 번째 머신이 되었다.

티티 하이 샤파 기차 연필깎이


그렇게 40년 가까이 나만의 첫 기계는 아직도 내 책상에서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나와 같이 늙어버린 하이샤파는 연필을 깎기 위해 기차 머리를 빼면 잘 빠지지 않고, 자꾸 심이 부러지고, 잘 깎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철물점 사장님’이라는 원대한 장래 희망으로 가슴 부풀어 있을 때, 그 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던 그 녀석이었기에 난 아직도 연필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