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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Feb 03. 2022

16시간의 희비극 ; 내 마음의 가짐

[오후 2시]

캠핑장에 도착했다. 신랑과 나는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확인한 후, 장비들을 옮기고, 텐트와 타프 피칭을 마치고, 테이블 의자를 펴 놓고 잠시 앉아서 차를 마시며 오랜만의 둘만의 숲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인데도 여전히 매미는 숲이 떠나가라 울고 있다.



[오후 5시] 

시간이 이렇게 훅 가버렸나.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지려나. 벌써 어둑해지는 시간. 집에서 가져온 고기와 야채들을 얼른 프라이팬에 구워서 정신없이 먹으며, '밖에서 먹으니 정말 맛있네!'를 연거푸 말하며 웃음 짓는다.



[저녁 7시]

TV를 좋아하는 신랑이 웬일인지 밤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에게 음악도 듣지 말고 이 저녁을 조용히 즐기자고 한다. 우리 둘은 눈을 감고 숲속의 소리와 바람, 그리고 시원한 가을을 즐긴다. 



[저녁 8시]

집에서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왜 캠핑을 오면 더 일찍 자게 되는 걸까. 술도 한 모금 안 마신 우리 둘은 잘 준비를 하고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 신랑은 차 트렁크에 항상 구비하고 다니는, 어디선가 얻어온 대가리 빠진 골프채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혹시나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거란다. 우리를 포함하여 이 숲속 캠핑장엔 딱 2팀만 있다. 고요해서 좋지만, 고요해서 살짝 두려워진다. 텐트 속 모든 랜턴을 끈다.



[밤 10시]

상대방의 침낭 서걱거리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때문에 둘 다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밤 11시]

밖에 누가 있는 듯하다. 텐트 바로 뒤에 있는 산에서 소리가 난다. 


"오빠! 이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는데, 누가 있는 거 같지? 누구세요?"


신랑은 대가리 빠진 골프채를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손에 꼭 쥐며 밖을 대고 소리친다.


"아무도 아닌가 봐. 얼른 자자."



[밤 11시 30분]

분명 누가 있는 거 같다. 


"사각사각, 쪼르르 쪼르르, 찌르르르르, 파드닥파드닥, 뭔가 뚝 떨어지는 소리, 쓰으윽~탁 쓰으윽~탁, 부르릉..."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전부 내 귀로 들어온다. 뭔가가 자꾸 텐트를 건드린다.


"오빠 자? 밖에 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어! 너도 들었어? 사람은 아닌 거 같고, 동물인 거 같아!"

"쉿!!! 쉬이잇!"


신랑은 길고양이를 쫓을 때 내는 소리를 낸다. 


"혹시 뱀인가?"


텐트 지퍼를 꼭 잠갔는지 다시 확인하고, 다시 손에는 골프채를 쥐고 있다.



[밤 12시] 

소리는 점점 잦아지고 커진다.


"너 혹시 칼 있어?"

"어! 가방 안에 맥가이버 칼 있는데?"

"일단 줘봐 봐!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일단 넌 차로 가있어!"


나는 신랑에게 칼을 건네고, 신랑은 나에게 차 키를 준다. 마치 부부 탐정단 같은 작전을 짜고 있다. 신랑의 오른손엔 골프채가, 왼손엔 맥가이버 칼이 있다. 웬만한 나쁜 놈 두세 명은 때려잡을 것 같은 그의 눈빛은 이미 특공대다. 



[새벽 1시] 

잠시 졸았나 보다. 눈을 살짝 뜨니 신랑은 양손에 무기를 든 채 잠들어 있다.



[새벽 2시] 

아까 들렸던 소리는 조금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태어나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괴상망측한 소리 때문에 도저히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다. 내가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신랑도 이내 잠에서 깬다.


"잠 못 자겠으면 우리 차에서 잘까?"

"아냐, 밖에 나가기 무서우니까 그냥 여기 있자. 좀 있으면 해 뜨는데.."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해 뜨는 시각을 확인했다. 

6:14이다. 

젠장! 한여름에는 5시쯤 해가 뜨더니 대체 언제 이렇게 늦어진 거야!

밖의 소리를 덮기 위해 살짝 음악을 틀었다.


"음악 꺼. 혹시 모르니까 밖의 소리에 집중해야 해!"



[새벽 3시]

이상한 소리는 뜸해졌지만, 새벽바람이 부나 보다. 나무들의 서로 부딪히고 쒹쒹 소리를 내며 숲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가 난다. 


"오빠 자? 밖에 바람이 많이 부나 봐. 우리 텐트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그르게, 바람이 많이 부네! 괜찮을 거야. 저기 아래에 관리인 있으니까, 만일 위험하면 올라와서 대피하라고 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좀 더 자. 오빠가 무슨 일 있으면 깨울게!"



[새벽 5시]

'화장실도 가고 싶고, 밖으로 나가보고 싶은데, 조금만 더 있어 보자'

밖은 서서히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신랑은 밤새 피곤했는지, 살짝 코를 곤다.



[새벽 6시] 

밖은 훤해졌다. 


다행히 우리 텐트는 날아가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텐트에 나쁜 놈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텐트에 반달가슴곰이나 산 멧돼지가 공격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우리 텐트 안으로 뱀은 들어오지 않았다.


신랑은 여전히 골프채와 맥가이버 칼을 손에 쥔 채 텐트의 지퍼를 살살 열고 있다. 나도 뒤에 숨은 채 따라 나간다.


타프 안의 어제 놔두었던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다. 

단지 테이블과 물건들에 여러 벌레가 붙어 있었다. 

나방도 몇 마리 죽은 채 바닥에 있었다. 텐트를 툭툭 치던 그 어떤 존재들은,


'매미'였다. 


여름의 끝자락에 제자리로 들어갈 매미들이 밤에 몸부림치고 여기저기 몸을 튕긴 후 결국 생을 마감하는 시즌이었다. 텐트 밖에는 돌아가신 매미님들 몇 마리가 놓여있었다. 


우리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잠시 멍했다. 


낮에 들렸던 늦여름 잦아지는 매미 소리와 몸짓은 텐트 안의 우리를 공격하는 공룡 정도로 느껴졌다.

해 질 녘 어둑한 눈앞의 모습과 귀 호강으로 들렸던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는 아무도 없는 숲속 밤 텐트 안에서는 폭탄의 소리보다 공포스러웠다.

저녁에 불었던 숲속 바람은 텐트 안에서는 자연재해로 느껴질 정도의 두려움이었다.

밝은 낮에 넓은 공간에서 보고 들었던 사소한 것들은 어두운 밤, 작은 텐트 안에서는 공포와 낯섦 자체였다.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모든 자극은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16시간 동안 우리가 느꼈던 희비극 :
세상 모든 이치는 내 마음의 가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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