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까지 한 개가 남은, 아홉, 숫자 9는 미완의 불완전 수(數)다. 가득 찼지만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수, 예로부터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했다. 불안했던 이십 대의 끝자락 그것도 9회 초, 제대로 방망이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루킹삼진, 쓰리아웃 연애가 끝났다. 사랑에 또다시 실패했다. 이번 사랑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장담할 순 없었지만, 사랑을 할 땐 실패나 패배를 꿈꾸지 않았으니, 서운함이나 오해라는 연타석 홈런을 맞아도, 회복이라는 한방을 기대하며 관계에 기대를 담아 한구 한구를 던졌다. 하지만 모래알같이 흩어진 마음을 다시 뭉치긴 어려웠다. 그때, 불완전한 아홉을 지나며 완성하고 싶던 결과는 결혼이었다. 만년 우승은 아니어도, 관계라는 복잡 미묘한 인간적인 문제 앞에 반타작, 승률이 5할만 되어도 무난히 결혼이라는 가을야구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보너스 게임 같은 가을야구에 갈 수만 있다면, 반짝이는 시즌 우승반지가 아니어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대의 시작은 뜨거웠다. 1회 말부터 2회 초까지 여러 감정을 끌어내 화려하게 화력 전을 펼쳤으며, 4회부터 교체된 투수들은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었지만, 6회 초 마음의 투구 수를 다해 양 팀의 투수들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8회부터 다시 시작된 사랑은 9회가 끝나면 승리의 인터뷰가 기다릴 것이라 기대했다. 이 전의 사랑 실패로, 이번 회에선 다른 생각과 모습을 포수처럼 살뜰히 받아주고, 상대에겐 직구로 칭찬과 응원의 말을 꽉 채워 던지며, 타석에서 상대방의 볼을 끝까지 보고, 거를 말은 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10타석에서 3번만 안타를 치면 되는 3할 타자, 144경기 중 10 경기만 이기면 가질 수 있는 10승 투수가 눈앞이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감정의 똥 볼만 던지며 상처를 채웠고, 9회 초 관계에 반격을 가하기도 전, 눈만 껌뻑이다 삼진아웃, 경기는 종료되었다. 좋은 것만 보여 서로에게 이끌려 만났는데, 장점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요구했다. 4번 타자에게 도루를 요구하거나, 아리랑 볼을 던지는 구속이 낮은 투수에게 160의 직구를 요구하는 것과 같았다. 타인의 사랑 전개는 그렇게 잘 파악했지만, 나의 사랑엔 감정에 눈이 멀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견해는 좁혀지지 않았고, 감정은 이미 부상당했다. 사랑에 실패했고, 서로의 인생에서 경질되었다. 패배감에 자책하며 무기력감에 아무것도 하기 싫던 이별의 암흑기를 보내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무조건적인 희망과 믿음을 어렵게 삼켜냈다. 다시 처음부터, 리빌딩에 돌입했다. 수용할 수 있는 새로움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오래된 노련한 다짐이 적절히 어우러져 마음의 신구조화를 이뤄내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상대에게 던져지는 말과 행동을 돌려보았다. 내가 커져버린 이기심 가득한 투구엔 중심을 잡으며 힘을 빼고, 바람과 요구라는 볼을 적절히 걸러 인정과 수용에 타격할 수 있도록 경험을 연습했다. 그 해, 나의 야구팀에게 신바람이 불었다. 프런트에선 과감하게 트레이드를 감행했고, 노장은 투혼을, 만년 유망주는 드디어 실력 발휘를, 어린 선수는 처음으로 프로를 경험했다. 고질병 같이 약했던 중간계투는 버텼고, 마무리 투수를 얻었다. 사랑의 패배감으로 가득했던 하루를 야구라는 소소한 기대로 채워갔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오늘 져도 내일은 이길 것 같은 (뽕이랄까) 일희일비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나의 아홉수 우리 팀은 10년 만에 가을야구에 갔다. 눈물겨운 이십 대 사랑의 실패를 보상이라도 받는 듯 기뻤다. 이 기세라면 가을야구의 우승까지 가능했다. 그렇게 기적같이 우주의 기운으로 승리를 점치던 나의 30대의 사랑, 아니 가을야구는 정말 보너스같이 빠르게 광탈했다. 기대와 염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간절히 기다려지는 법이다.
#가을야구 광탈 #삼십대도 꾸준히 사랑의 연패행진 #사랑…너라는 긁지 않은 복권 어쩌면 좋니 #성공은 없는데 성공을 바라는 미련한 사랑바보 #목표는 가을야구가 아닌 #현재의 진행방법 #Since 2013 #그깟 사랑 #제발성공좀하자 #응원해나자신 (한강각)
인터뷰 각
(실패로 읽고 기대로 쓰는) 하나의 사랑
하나씨에게 사랑은 어떤 건가요?
저는 사랑에 소극적이었어요.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아빠와, 감정이 쌓여있는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감정은 누르는 것에 익숙해서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혼자 잘 삭히고 쉽게 잊어버렸는데요, 칭찬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는 부끄러워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사랑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반응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서로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사랑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정을 짓고, 표현을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어요. 사랑은 저에게 배움이네요
하나씨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저의 첫사랑은 H였어요. 스무 살이 되고,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였는데,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해졌어요. 그때는 연애도 사랑의 감정도 모든 것이 새롭고 모르는 것 투성인 낯선 서울생활 같았어요.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요. H와 단둘이 처음으로 롯데월드에 간 것도,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감정을 이야기할 때도 서로가 관계의 발전을 기대하는지 몰랐어요. 그렇게 무심함으로 멀어져 서로의 일로 가득 채우다, 휴학으로 20대의 가운데 쉼표를 찍었어요.
B는 두 번째 사랑이자, 공식적인 첫 연애 상대였어요. 복학하고 새 학기가 시작하는 봄에 처음 만나, 뜨거운 여름 캠퍼스 커플이 되었어요. 다섯 번이나 변하는 계절을 함께 보냈어요. 긴 시간이 야속하게 헤어지는 이유는 ‘연락이 뜸해져 서운한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평범한 이유였어요. 사랑은 대단하고 커다란 일 같지만 일정한 온도를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체온같이 평범함을 잃어버리면 지속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어요. 그렇게 20대의 끝에서 B와 헤어졌어요. 사실 B와의 사랑 실패로 첫사랑 H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어떻게 H를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당연히 있던 익숙함이 사라지니 마음이 허전했어요. 어떻게 이별에 대처해야 하는지 무방비한 상태이기도 했고, 허전함과 답답함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해서 사람을 찾았어요. 때마침 H와 연락이 닿았어요.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했는데, 밤새도록 H의 이야기만 들었어요. 아픔, 슬픔, 기쁨, 기대 같은 지난 시간 다양한 모습의 H에 대해 들을 수 있었어요. 스무 살에 처음 만났던 H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설레는 감정만큼은 그때와 같았어요. H와 보내는 시간은 겨울의 솜이불 같이, B와의 이별로 마주한 아픈 감정을 따뜻하게 덮어주었어요. 친구 사이까지 멀어질까 두려웠지만, 2호선 순환 노선을 한 바퀴 돌며 마음을 맞춰나갔어요. H와의 시작은 모든 게 겨울과 같이 새로웠어요. 8개월, 빠르게 변하는 날씨처럼 관계에 변화가 생겼어요. 바뀌는 옷처럼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어요. 상황에 겹쳐진 감정들이 따뜻할 줄만 같았는데, 날이 풀리고 더워지는 날씨에 지친 듯, H는 어두운 그늘에 자신을 감추고 마음을 숨겼어요. 마음의 온도 차이를 느꼈어요. 상대의 마음이 메마른 건 아닐까 저는 늘 갈증이 났고, 본능적으로 집착했어요. 언제나 통보하던 방식이,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나 혼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사랑 보단 상처로 느껴졌어요. 같은 방향으로 순환하며 종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는 이미 어딘가에서 내려 길을 헤매고 있었어요. 결국 카톡으로 이별했어요. 두 번째 사랑에 실패했죠.
하나 씨의 사랑 실패에 결과가 있을까요?
먼저 글을 쓰게 되었어요. B에게 많은 것들을 받았어요. 관심과 편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받으 3며,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는지 배웠어요. 많은 것을 받아서 남에게 어떻게 줄 수 있는지 배웠어요. B에게 많이 무심했던 것 같아요. 사랑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H에게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었어요. 읽는 것을 좋아하던 H를 위해 편지를 쓰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바쁜 H에게 글을 통해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고, 하다 보니 더 예쁘게 글을 쓰고 싶었어요. 매일같이 글을 쓴 것이 실패의 결과물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별 후 사랑 실패의 결과물인 글쓰기를 통해 아픔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어요. 꽁꽁 감춰두었던 감정들을 글로 쓰며 표현하니 감정이 해소되었어요. 어쩌면 그동안 피하려고 했던 감정들을 글쓰기를 통해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의 사랑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그동안의 제 모습을 보았을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 않았던 말은 오해로 남고, 하지 못한 말은 야속함으로 남았는데 말이죠. 앞으로는 조금 더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고 싶어요.
#가슴속에 차오르는 그댈 #이렇게 외면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잖아 #그댈 원하고 있어
#하나씨 다시 사랑하세요
실패자 : 박정민
실패내용 : 반려동물 사랑 실패
실패년도 : 2019년
동물의 사랑이란...
도마뱀이 몇 마리 있다.
그중 암컷에게 배란기가 왔다.
며칠 째 먹이도 먹지 않고, 피부가 탁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아 우리 안에 넣어줬다.
수컷은 암컷을 보자마자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유혹하기 시 작한다.
암컷은 수컷을 보고 도망친다.
수컷은 몇 번의 유혹을 더 시도한다.
암컷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고 기다린다. 수컷은 얌전해졌다.
암컷이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탁해졌던 피부도 천천히 회복되어 갔다. 수컷은 기운이 없는지 조용히 누워있다.
어느새 둘은 함께 은신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수컷은 기운을 차렸는지 활발하게 움직인다. 수컷은 다시 꼬리를 흔들어 암컷을 유혹한다. 암컷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
수컷이 은신처 밖으로 나와있다. 수컷은 안에 있는 암컷을 바라본다. 암컷은 조용히 누워있다.
암컷에게 먹이를 준다.
수컷도 먹이 냄새를 맡았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암컷이 먹이를 받아먹었다.
수컷은 몸을 날려 먹이를 먹고 있는 암컷의 얼굴을 물었다. 암컷은 소리 지르며 구석으로 도망간다.
수컷은 강제로 퇴출당한다.
암컷이 탈피를 하기 시작한다. 수컷은 하루 종일 누워있다.
실패자 : 신금용
실패내용 : 예외
실패년도 : 20109년
예외의 존재
모두 거기서 거기다.
역사에서 쌓인 데이터로
나는 일상을 연명한다. 그것은 안도감과 빠른 속력, 돈, 생존을 약속한다.
인간이 가진 ‘감정’을 싫어한다.
인간의 ‘감정’이 예외를 만든다.
‘예외’는 나의 일을 그르치게 한다. ‘예외’는 나에게 돈과 시간을 뺐는 동시에 생동감을 안겨준다.
역사적으로 마땅히 행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하찮은 감정으로 전복시키고 자신을 불태우는 행동을 한다.
불나방 같은 ‘예외’의 존재들을 증오하며 한편으로 사랑한다.
실패월간 4호 끝.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 각성 잡지 실패월간.
by 도시 비둘기
문의 : fffail09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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