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의 품격

할머니와 장 담그기와 된장찌개

by 김대영


할머니가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우아한 감칠맛, 자연스러운 단맛이 된장의 품격을 보여 준다. 시중에서 파는 된장으로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할머니는 매년 온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장을 담그셨다.


나는 한식에 관심이 많은 요리사다. 대학생 시절 한식 발효를 공부하고 직접 장을 담그기도 했다. 장을 담근다는 것은 정말 과학적인 일이다. 장을 발효시키는 중에 잡균의 번식을 막기 위해 독을 소독하는 일, 소금물의 농도를 정확하게 맞추기, 마지막으로 살균 작용을 하는 숯이나 고추 등, 장을 담그면서 여러 책을 찾아보며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나에게 장 담그기는 발효의 정점이며 섬세한 과학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할머니가 장을 담그시는 것을 본 적 없었기에 장 담그는 것을 도와드리며 배우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할머니는 볼게 뭐 있냐며 나보다 네가 더 나을 거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하지만 이내 장을 담그고 싶어 하는 게 기특하셨는지 같이 담그자고 하셨다.

장 담그기에 사용할 메주 한말.


소독기구, 계량컵, 비중계, 염도계, 등 정확하게 계량했던 나와 다르게 할머니의 도구는 단순하고 투박했다. 고무대야와 작은 바가지 그리고 양동이가 전부였다.

작은 바가지와 간수 뺀 소금이 담겨있는 양동이.


할머니께 소금물의 염도를 여쭤보니 “ 물 한동이에 소금 작은 3 바가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곧이어 달걀 하나를 챙겨 와 달걀을 띄워보셨다. “달걀이 동전만치 뜨면 딱 적당한 농도인겨~” 그 동전이 얼마나 한 크기 인지도 모른 채 소금 농도 맞추기는 끝났다. 장을 담그는 내내 할머니는 나에게 알려줄 만한 게 아니라고 미안해하셨다. 할머니와 장 담그기는 나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동전만 한 크기로 띄워진 달걀.


염도 18~20 보메의 소금물과 정확한 계량을 위한 계량컵, 비중계는 천일염 3 작은 바가지, 물 한 양동이 그리고 띄워진 달걀로 대체된다. 할머니의 감과 세월이 장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한식을 하겠다고 생각한 때부터 할머니의 조리법이나 노하우를 전수받아야지 라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정량화된 것은 없었고 그때마다 불쑥 튀어나오는 ‘’ 이 날 괴롭혔다. 정확한 레시피와 정보에 익숙한 나에게 그 애매한 것은 노하우가 될 수 없었다.

장을 담그고 집으로 가는 길, 할머니는 자취하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네가 혼자 뭘 해먹겠노, 반찬 좀 싸가지고 가.” 두 손 가득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이 내 밥상에 차려진다. 몇 해 전 담가놓은 된장으로 찌개도 끓여 한 숟갈 떠먹어본다. 바로 이 맛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조리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먹는 사람을 향한 진심을 알려주셨다. 치밀하게 계산된 공식이 아닌 오로지 먹는 사람들을 위한 ‘정성’ 말이다. 할머니의 ‘감’ 은 당신의 자식들을 위한 시간과 마음이 담겨있었다.

된장의 품격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노하우의 전부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장 담그기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준 기억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교수였고 최고의 요리사였으며 날 어른으로 만든 사람이다.


장 담그기는 문화이다. 필요함에 생긴 한국문화이며 시간이 준 삶의 지혜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고유문화들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며 외면받기도 한다.

물론 정확하고 과학적인 것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과학으로 인해 우리 장도 세계인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으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처럼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경험이라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한식문화가 그렇다. 언제나 이야기가 있고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한 인문학이 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맞춰 우리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옛것을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옛것을 알고 우리 음식의 인문학을 공부하고 우리 한식의 틀을 기본으로 현대의 기술을 접목시킨다면 더욱 가치 있는 한식문화가 될 것이다. 문화는 대중의 선택을 받아 사라지고 발전한다. 문화의 가치를 만드는 것도 우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장 담그는 일은 힘 좋은 내가 하기도 조금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매년 할머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힘든 일을 혼자 해오셨다.

“물 한 양동이에 소금 3 작은 바가지."
“소금은 오래된 소금이 간수가 잘빠졌다."
“달걀을 띄워 동전만치 뜨면 간이 맞더라."



그 방법이 틀리든 맞든 우린 그런 장을 먹고 어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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