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주변엔 화려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면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식을 하면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요리사들이 사용하는 칼은 유럽, 일본의 칼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한식 요리사가 일본 칼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걸까?
경상남도 함안군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김 씨 공방은 전통방식으로 칼을 제작한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공방의 칼은 한국의 미와 한국 칼의 매력을 살려 제작된다. 오랜 시간 뚝심 있게 한국 전통칼을 지켜온 ‘김정식’ 공방장님과 한국 전통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전통칼은 단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철에 열을 가해 두드리는 방법이다. (시중에서 사는 칼의 대부분은 기계로 찍어내거나 찍어낸 것을 두드려 모양만 잡은 칼이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생산성이 좋지 않아 두드리는 작업 자체는 기계의 힘을 빌리고 마무리는 직접 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특히나 전통칼의 경우 접쇠 방식을 이용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다마스쿠스의 원리와 같다고 했다.
접쇠 기술이 처음부터 칼에 접목된 것은 아니고 철이 귀했던 시절 농기구들이 닳거나 무뎌지면 그것들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쇠와 쇠를 붙이는 기술이 발전됐다고 한다. 칼에서의 접쇠 방식은 불순물을 제거하며 탄소량을 조절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은 쉽게 우수한 품질의 철을 생산하기에 굳이 접쇠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은 품질의 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칼의 단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녹이 잘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탄소강의 칼에 크롬을 합금시켜 녹과 산에 강한 칼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녹을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공방장님은 칼을 제대로 사용하기 전에 칼을 제대로 가는 법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본인 총을 모르면 되겠냐는 것이다.
특히 제대로 칼을 가는 것을 강조했는데 칼은 만든 사람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가장 최적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일명‘면잡이’와 같은 무식한 방법으로 칼을 망쳐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칼은 자주 조금씩 갈아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칼 간다고 몇 시간 동안 칼만 갈아서 칼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공방장님은 본인의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웠는데 거의 50년 시간 동안 칼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어떤 일이던 힘든 것은 똑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맡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됩니다.”
화려한 말보단 그가 만든 칼들이 그 말을 담담하게 대신해주는 듯하다. 사라져 가는 한국 전통 방식을 지키며 뚝심 있게 한국 칼의 자존심을 지키는 그의 장인정신은 내 마음 한편을 먹먹하게 했다.
단풍이 만개한 지리산에 위치한 맛있는 부엌을 찾았다. 한국의 발효음식을 주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고은정 선생님을 만나 뵙고 간장과 된장 그리고 그것들을 만드는 메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인사하기 무섭게 그녀는 장독대로 안내한다.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장에 손을 넣어가며 지리산의 미생물을 맛본다. 찌릿하게 숙성되지 않은 어린 된장, 거무튀튀한 옛날된장 등 맛과 향이 같은 된장은 없었다. 매일 먹는 된장이지만 그곳에서의 된장은 특별하다.
간장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2019년 햇 간장, 3년 된 중장, 33년 된 진장, 마지막으로 일본식 생간장이다. 햇간장은 국을 끓일 때 주로 사용한다. 오래되지 않아 날카로운 짠맛이지만 미생물이 가장 많은 간장이다. 풍부한 향을 가진다. 다음은 3년 된 중장이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간장이다. 3년 된 간장은 단맛과 짠맛의 밸런스가 좋고 향도 좋아 볶음, 찜, 무침 등 대부분의 요리에 사용하게 된다. 다음은 33년 된 진장이다. 오랜 시간 숙성됨은 뽐내듯 묵직하고 선명한 색의 간장이다. 농도도 살짝 있고 다른 간장들과는 다르게 희미한 산미가 세월을 맛 보여준다. 귀한 간장이다 보니 요리에 있어 향과 색을 내는데 주로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식 생간장은 우리가 흔히 먹는 양조간장의 맛과 비슷하고 단맛이 강하다.
간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메주를 보여주셨는데 좋은 메주에서는 흰 곰팡이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깨끗한 메주가 좋은 메주가 아니고 오히려 많은 미생물이 생성되어 곰팡이가 잘 핀 메주가 좋은 메주라고 하셨다.
장 담그는 것은 특별한 팁이 없다고 한다. 좋은 메주, 정확한 염도로 장을 담그면 맛있는 간장과 된장이 된다. 그리고 같은 재료 같은 방법으로 담가도 발효되는 장소와 항아리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다르다고 한다. 매년 장을 담그지만 매번 다른 맛의 장을 만들 수밖에 없고 그것이 장의 재밌는 부분이라고 하셨다. 그녀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짜 간장이 아닌 직접 담가 먹는 진짜 간장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푸근한 인상과 다르게 결단력 있는 그녀의 위엄에 그녀가 얼마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과 부딪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킬 줄 아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醬)인 이다.
“사람들이 우리 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만 봐도 난 너무 힘이 나요.”
지리산 바람으로 유명한 바람골에 위치한 찬해원에는 인상 좋은 셰프이자 농부, 양재중 셰프님이 자연을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 5000평, 약 80여 종의 작물을 관리하고 계시는 셰프님의 화려한 이력보다는 인상 좋은 삼촌이 먼저 생각난다. 찬해원의 이곳저곳 마치 자연에서 보물을 찾듯 귀하고 신기한 작물들을 그의 설명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일식 분야에서 이미 유명한 셰프다. 우리의 식재료와 그의 섬세한 기술이 만나 한없이 감동스러운 맛은 먹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양재중 셰프님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어란은 대한민국 최고의 어란으로 평가받는데, 바람골의 바람을 통해 만들어지는 어란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숭어알은 일반적으로 4~5월쯤에 나오는데 가을에도 숭어알이 채취된다고 한다. 그것을 가을 숭어알이라고 하며 참숭어 알이 검은빛을 띠는데 비해 아주 맑은 갈색 빛을 띤다. 하지만 그는 숭어알을 위해 숭어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의 철칙인데 숭어알을 만들기 위해 숭어를 죽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횟집 상인들에게 웃돈을 주고 숭어알을 부탁해 그 알로 어란을 만든다. 그에게 어란은 자연이주는 선물이다. 자연과 함께 요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요리, 식재료에 대한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자연을 택한 그의 미소가 참 매력적이다. 지리산 바람골의 찬해원에 해가 진다. 아름다운 노을을 닮은 그가 준 선물들을 가득 안고 집에 가는 길, 두 손 가득한 만족보단 마음이 풍족해짐을 느낀 지리산이 준 선물이다.
“시골 와서 뭐 안 주고 보내면 섭섭해요, 받는 사람도 섭섭하지만 못준사람도 섭섭해.”
사라짐을 지켜보는 계절 가을,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는 또 그렇게 푸르른 잎사귀를 피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