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담그기/ 한국인의 매운맛
한국의 맛, 매운맛
한국의 맛, 이라면 많이들 매운맛을 생각한다. 물론 역사적, 분류적으로 생각한다면 상당한 약점이 있지만 굳이 따지지 않고 생각한다면 매운맛은 우리가 상당히 좋아하는 감각임에는 분명하다. 매운맛을 주는 재료들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친숙한 식재료는 단연 ‘고추장’이다. 맨밥에 맛있는 고추장, 참기름만 있다면 반찬이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는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회에 찍어먹는 초장, 고추장을 넣고 바글바글 끓여먹는 고추장찌개, 고추장 없이는 안될 비빔밥, 떡볶이, 제육볶음 심지어 군대에서의 ‘맛다시’ 도 어찌 보면 고추장의 일종이겠다. 이렇듯 고추장은 우리 식탁에 빠질 수 없었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라로 비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현실이라면 집마다 고추장은 한통씩 가지고 있지만 그 고추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고추장이 우리의 장이라는 사실은 점점 잊히는 것 같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고추장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국이 선택한 우수한 매운맛에 대한 이야기이다.
1. 엿기름 짜기
고추장을 만드는데 엿기름? 애초에 엿기름은 식혜를 만들 때나 사용했지 고추장의 단맛에 사용될 것이라 생각 못했을지도 모른다. 엿기름은 질금이라 하기도 하며 맥아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나 맥주를 양조하는데 빠질 수 없는 malt 가 바로 이 ‘엿기름’이다.
쉽게 말하면 싹 틔운 보리인데 보리는 배젖에 저장된 녹말을 발아 초기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고 수분으로 침윤된 배아에서는 ‘지베렐린’이라는 식물호르몬을 합성한다. 그러면 그 지베렐린은 보리의 호분층 세포에 발아 신호를 전달하고 그 세포들은 아밀라아제와 같이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들을 만들어 배젖은 전분을 분해하고 발아를 위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렇게 생성된 아밀라아제와 포도당은 그 자체로도 단맛을 내지만 고추장에 쓰이는 전분질을 당으로 분해하며 고추장의 은은한 단맛의 주인공이 된다. 엿기름은 생각보다 쉽게 시중에서 구할 수 있으며 사용할 때는 사용하기 전에 물에 불려서 고운 주머니에 넣고 짜서 사용한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을 엿기름이 먹으니 필요한 물의 양보다 더 넣는 것이 좋다.
엿기름물을 어느 정도 짠 후에 살짝 맛을 보면 은은한 보리의 단맛이 식욕을 돋운다. 음식들이 달아지고 설탕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자극적인 단맛에 익숙한 우리에게 엿기름에서 분해된 은은한 단맛은 새롭기도 하다.
2. 밀가루 죽 쑤기
분해된 엿기름물에 분해할 전분을 넣을 차례다. 고추장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끔 놀라기도 하기도 하는데 꽤 많은 전분이 사용된다. 사용되는 전분은 다양하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밀가루, 찹쌀가루 지만 지방에 따라 수수, 팥, 고구마 등을 이용해서도 고추장을 만든다. 고추장은 어떤 전분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쓰임과 맛이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밀로 만든 고추장은 찌개를 끓이거나 무침에 잘 어울리며 찹쌀고추장은 색이 선명하고 윤기가 나고 찰기가 좋아 초고추장 같이 가열하지 않는 음식 사용에 용이하다. 또 쌀에는 글루텐이 없기에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에 경우에는 쌀로 만든 고추장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고추장을 이용해 가열조리를 많이 하는 나는 우리밀가루를 사용해 고추장을 담갔다. 밀가루를 엿기름 짠물에 덩어리 지지 않게 골고루 섞는다. 골고루 섞은 혼합물을 약불로 서서히 죽을 쑨다. 센불로 밀가루 죽을 만들경우 쉽게 탈 수 있으니 주의한다. 끓이는 혼합물이 2/3 정도 남을 때까지 수분을 날려준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3. 메주 가루, 고춧가루 넣기
가열한 밀가루 죽이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가면 식기 전에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를 넣어준다. 이때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식기 전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주 가루와 고춧가루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날내? 풋내? 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이취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이과정이 일반적인 시판 고추장과 직접 담그는 고추장의 큰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메주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라 하면 고추장도 발효음식이라는 것이다. 즉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풍부해지는 삭힘 음식이다. 즉 단맛과 짠맛 매운맛이 아닌 다양하고 풍부한 발효의 맛이 바로 이 메주가루에서 나온다.
두 번째는 직접 고른 고춧가루이다. 고추장에서 제일 중요한 식재료라면 단연 고춧가루이다. 고추장용 고춧가루는 아주 곱다. 입자도 곱지만 색도 곱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춧가루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특히나 국산 고춧가루는 엄청 비싸다. 하지만 믿지 못할 중국산 고춧가루나 오래 묵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는 고추장의 맛을 끌어올릴 수 없다. 재료가 안 좋은데 어떻게 맛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고추장을 만드는 고춧가루는 그 해에 수확하고 말린 햇고춧가루를 사용해야 한다. 고추장이라 해서 다 같은 고추장이 아닌 것이다. 신선한 고춧가루는 고추장을 만들어도 약간의 산미를 띄는데 그 맛이 음식을 다채롭게 하는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4. 고추장 간 맞추기
어느 정도 우리가 아는 고추장의 형태가 나온다. 이제부턴 고추장의 맛을 조절한다. 굵은소금, 청장(조선간장) , 조청으로 간을 더한다. 청장은 고추장 감칠맛을 깊게 해 준다. 양을 많이 하지 않지만 간장에 녹아있는 아미노산을 고추장에 침투시켜 고추장 감칠맛에 활력을 넣는다. 고추장도 장이다. 장은 염분이 충분치 않으면 잡균이 생성되고 변질된다. 고추 자체의 항균성 때문에 덜하지만 직접 담근 고추장은 변질의 가능성이 있으니 시중에 판매되는 고추장보단 살짝 더 염분을 준다. 그리고 조청을 더하는데 조청은 단순하게 단맛을 주는 역할뿐 아니라 재료들을 조화롭게 한다. 각각의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움을 잘 조화시키는 역할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을 넣어버리면 음식 할 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한다. 특히나 고추장이 숙성되며 짠맛은 감하고 감칠한단맛은 올라오니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한다. 짠맛과 단맛은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해야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 고추장이 생각보다 뻑뻑해 섞기 곤란하면 청주를 넣어서 부드럽게 해주는 것도 좋다.)
5. 한국의 맛
이제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자연이 고추장을 만들시기다. 품질의 변화가 독인 시판 고추장은 미생물이 없다. 즉 시간이 지나도 같은 맛일 것이다. 하지만 직접 담근 고추’ 장’ 은 생명이 있다. 미생물이 살아있다. 발효의 힘이다. 감칠맛은 풍부해지고 단맛은 깊어진다. 짠맛은 다른 맛들을 돋보이게 해 준다. 적당한 산미는 시판 고추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밌는 맛의 역할을 해낸다. 시간의 맛이다.
우리에게 매운맛은 무슨 의미인가? 한국인의 맛인가? 우리는 왜 매운맛을 좋아하는가?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고추장을 직접 담그면서 느낀 것은 확실하다.
고추장은 고추’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