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합니다
클래스톡 마케터 노다혜
김원세: 다혜 님 안녕하세요. 광고 배우는 대학생 김원세입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다혜 님과 편하게 수다 떨러 왔습니다. 제 프로젝트는 광고인과 수다를 떠는 게 1순위고요, 이 수다가 책이 됐으면 좋겠다가 2순위예요.
노다혜: (재미있다는 듯이) 왜요? 왜 하는 거예요?
김원세: 만남을 통해서 제가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노다혜: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김원세: 회사 대표님 두 분과 인터뷰를 했던 경험이 있어요.
노다혜: 어떤 대표님이요?
김원세: 한 분은 ‘부산언니’라는 채널을 가진 코스웬콘텐츠의 정소리 대표님이시고, 또 한 분은 온라인 교육 서비스 ‘디디캐스트’를 제공하는 산타의 박기웅 대표님이세요. 이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면서 수다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노다혜: 어떤 게 도움이 됐어요?
김원세: 일단 그분들의 히스토리에서 자신이 느꼈던 심상을 말씀해주실 때, 인터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도 입체적인 자극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촉감으로 타인의 서사를 읽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재밌게 듣다가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재밌어하고, 즐거워하는구나.’ 싶었어요.
노다혜: 우와 너무 좋다. 원세 님 멋있어요.
김원세: (손사래를 치며) 전혀 아닙니다. 제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닌데...
노다혜: 생각에 그칠 수도 있는 걸 이렇게 실천하는 게 멋져요. 저 역시 크리에이티브를 사랑하고, 원세 님 나이 때는 엄청나게 쫓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엔 광고든 마케팅이든 세상 모든 일이 실천하는 데 있다고 봐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히뜩한 아이디어 백 개보다 실천하는 이런 한순간이 훨씬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요.
김원세: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다혜 님께 인터뷰 요청할 때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는지 모르실 거예요.
노다혜: (농담하는 어조로) 성격이 안 좋아 보였나?
김원세: (웃으며) 받아주실까 하는 마음에. 메시지 한 자 한 자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노다혜: 저도 그게 확 느껴졌어요. 물론 귀찮고 칼같이 거절할 수도 있는데, 메시지를 읽으면서 ‘이 친구는 꼭 도와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원세 님의 힘인 것 같아요. 저도 광고를 10년 넘게 했고, 지금은 새로운 플랫폼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거죠. 물론 표현 방법이나 수단은 경력 있는 사람이 노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원세 님처럼 RAW 하게, 꾸미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그 어떤 언론사에서 온 형식적인 제안보다 훨씬 더 힘이 느껴졌어요.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싶게 제 마음을 움직인 거죠. 그래서 원세 님이 대단하다는 말이 단순히 부산에서 와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김원세: 너무나도 극찬인데요. 녹음해두기를 잘했네요. 집 가서 두고두고 반복해서 들어야겠어요.
노다혜: 그럼요. 그건 키우기 힘든 역량이거든요. 저도 이제야 조금씩 키우고 있는데, 소중한 능력인 것 같아요. 나중에 원세 님이 AE를 하시든, 카피라이터를 하시든, 장사를 하시든, 뭘 하시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잘 가꿔 나가면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당장 보이는 전국 대회 금상, 은상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따라오는 거고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김원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다혜 님 이야기로 넘어오죠. 대홍기획에 계시다가, 얼마 전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톡>의 마케터로 이직하셨다고 들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노다혜: 저는 제 이력 중에서 해외 광고제 상을 타고, 책을 내고, 디렉터 경력과 같은 화려함보다도 지금 회사로 이직한 걸 가장 만족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처음부터 새로 다시 배우고 있어요.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요. 저는 여태껏 화려하고, 남들이 봤을 때 대단해 보이는 것들을 쫓아왔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몸담은 곳에서는 ‘그것들이 실제로 중요한가?’ 그리고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인가?’ 물음을 던지죠. 그래서 클래스톡이 제 이력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직장인 것 같아요.
김원세: 그렇다면 대홍기획에서 근무하실 때 이직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노다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광고를 만드는 게 꿈이었고, 실제로 그걸 이뤘고, 그리고 잘했어요.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허한 거예요. 내가 만든 광고가 상을 타고, 유튜브 조회 수를 몇억만 뷰 달성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더라고요. ‘이게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크리에이티브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되게 많았어요.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 이 회사에 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대기업 두 군데로 이직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회사에서 면접 봤을 때, 대표님께서 제 공허함을 채워주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마케팅이란 무엇이고, 콘텐츠는 무엇이고, 플랫폼은 무엇인가. 왜 일하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대표님이 던진 질문은 본질적으로 조금 달랐죠. 다른 곳에서의 면접은 휘황찬란하게 나를 꾸미는 데 공을 들였어요. 하지만 동시에 내가 대단한 곳의 광고주가 돼서 빅 캠페인을 맡게 되더라도, 내가 느낄 공허함은 채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나 스스로한테 채울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게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예요.
비록 지금 하는 일이 제가 10년 동안 하던 업과 완전히 일맥상통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교집합 하나로 오게 됐어요. 저 진짜 컴맹이거든요? 그런데 IT 회사에서 일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how to’는 중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why’를 던지면서 일하고 있어요.
김원세: 그럼 오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노다혜: 저희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인데, ‘누구나 배움을 즐겁게’라는 가치를 전달하려고 해요. 우리나라 교육 시장은 수능 중심이에요. 사탐에 이지영, 수학에 현우진, 영어에 시원스쿨. 이렇게 수능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는데, 저희는 모든 분야에서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어요. 예를 들면 손글씨, 직업 군인 되기 클래스도 있고 별의별 교육이 다 있어요. 양질의 콘텐츠를 많은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전달하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스타 강사로부터 얻는 배움이 아니어도 끊임없이 배워가잖아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으니까, 그걸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플랫폼인 거죠. 그래서 오늘은 미팅을 했어요. ‘이분이 클래스를 열면 많은 분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서 제안하러 갔어요.
김원세: 그럼 선 제안을 하신 건가요?
노다혜: 그렇죠. 경험을 나눠주십사 찾아가는 거죠. 그게 광고 회사에서의 업무와는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지금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에요. 클래스를 열어줄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소비자가 될 수강생이 될 수도 있고, 저희를 몰랐던 사람일 수도 있고, 매체사일 수도 있고, 투자자일 수도 있고요.
김원세: 듣기만 해도 일이 쏟아질 것 같네요. 그러고 보면 저와 다혜 님과의 인연이 KOSAC에서 진행한 강의에서 시작됐는데요. 초청 강사로 학생들을 만나시고, 대학교 특강에 참여하시고, 또 이런 대학생의 인터뷰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주시는 모습에서 다혜 님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본업으로 아주 바쁘신데도 나의 경험을 흔쾌히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노다혜: 저는 후배들이 상담이나 포트폴리오 피드백 요청이 오면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웬만하면 다 받아주거든요. 제가 대학생 때는 마땅한 선배가 없었어요. 후배를 위하는 선배들이 없어서 혼자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후배라는 표현보다는 저랑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 나처럼 광고라는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죠. 덜 힘들었으면 좋겠고, 허튼짓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일 큰 이유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강연이나 강의를 다니면서 늘 하는 것이, 광고 회사에 대한 환상을 많이 깨뜨려 주는 거예요. “만약 같은 예산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한다면, 너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틀에 박힌 광고보다 지금은 유튜브 콘텐츠, MCN이 훨씬 효율적이야. 그런데도 너희가 광고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본질적으로 너희는 광고를 하고 싶은 이유가 크리에이티브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인 거야? 후자면 눈을 더 넓혀. 제발 광고를 위한 광고를 쫓지 마. 머지않아 그 길은 많이 좁아질 거야. 살아남기 힘들어질 거야.”라는 얘기는 어디서든 해주는 것 같아요.
김원세: 어쩌면 이런 생각의 저변이 다혜 님을 이직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겠네요.
노다혜: 많이 크죠. 정확하게 짚어주셨네요. 이 일에 몰입하게 되면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하게 돼요. 우리가 광고 예산을 쓰는 이유는 시장에서 목적성을 가지고 메시지를 던지는 건데, 지금 시대는 방법론이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그래서 저는 광고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김원세: 사실 제가 책 제목을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여러 안 중에서 하나가 광고하는 대학생들 뼈 때리기를 줄여서 광대뼈...
노다혜: (질색하며) 어우 너무 싫어요. 광고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순간 아니야. 그리고 광대뼈는 너무 KOSAC 제안서 느낌이야.
김원세: (망설이면서) 2안은 퇴근길, 당신을 붙잡다...
노다혜: 이건 괜찮네요. 여기서 조금 더 워싱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원세: 제가 한번 진득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제 이야기로 출발을 하는데요. 제가 최근에 한 의류 브랜드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하루는 피팅룸에 입장하시는 고객님의 옷을 확인하고, 고객님이 착용 후에 퇴장하시면 놔두고 가신 옷과 자리를 정리하는 일. 말하자면 피팅룸에서 고객 동선을 확보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옷가게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을뿐더러, 일도 처음이다 보니까 조금 서툴렀나 봐요. 바쁜 시간대에 피팅룸에는 저와 다른 직원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가 답답하셨는지 “원세 님 일 너무 못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기분은 상했지만 그래도 계속 일을 이어 나갔고, 휴식 시간이 됐어요.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매니저님이 제게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원세 님, 일 너무 잘하고 계세요.”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순식간에 인사이트가 스쳤어요. 하루 만에 ‘일 못해’와 ‘일 잘해’를 들은 사람으로서 ‘아, 이게 사람에 따라 일 잘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 그 직원분에게 일을 잘한다는 기준은 ‘빨리빨리’였던 거예요. 바쁜 시간대에 고객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반면 매니저님에게 일을 잘하는 기준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적응력’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곳의 문화에 녹아들어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금방 관두지 않고 오랫동안 근무해 줄 인력에 기준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일 잘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그리고 직무마다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다혜 님에게 일 잘함의 기준은 뭘까?’예요.
노다혜: 원세 님 같은 분! 너무 중요한 인생의 포인트를 일찍 깨달으신 것 같아요. 그걸 깨달으면 멘탈이 건강해져요. 자존감이 무너질 일도 없어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엑셀을 정말로 못해요. 그런데 제가 구청에 가서 일하면 일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 되겠죠. 그런데 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있기에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번째 기준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곳과 fit 한가?'인 것 같고요.
두 번째로는 제가 큰 조직에서 일을 해봤던 경험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사회생활 안에서 일 잘한다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사를 일 덜하게 하는 게’ 일 잘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기준은 따지고 보면 상사한테 안 좋은 거죠. 왜냐하면, 상사는 일에 있어서 조금씩 도태될 테니까요. 서로가 배우면서 성장하는 게 가장 좋죠.
김원세: 그렇다면 지금 몸담고 계신 직장에 후배가 들어온다면, 어떤 후배가 들어왔으면 하시나요?
노다혜: 저는 일을 잘하는 것보다 사람을 보는 것 같은데, 일단 자기 자신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 건강한 사람, 몰입할 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는 사람.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 내가 성장하고 싶다는 건강한 욕심이 있는 친구가 좋아요. 후배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이랑 함께 하고 싶어요.
김원세: 이어서 다혜 님의 롤 모델도 들어보고 싶어요.
노다혜: 저희 엄마요. 저희 엄마는 본인이 잘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분이세요. 그리고 사랑을 정말 많이 나눠주시고, 너무 강인하신 분이죠. 유일하게 제 머리 꼭대기에 있는 분이에요.
김원세: 그럼 ‘엄마’가 되고 싶으세요?
노다혜: (고민하면서) 자연스러운 과정에 맡길 것 같아요. 엄마가 막 되고 싶다기보다 흐름에 따라가게 될 것 같아요.
김원세: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요즘 고민거리를 들어보고 싶어요.
노다혜: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하는 거예요.
김원세: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시죠.
노다혜: (웃으며) 그렇다면 너무 행복한 거고, 저는 사랑을 나눠줄 때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걸 지속하고 싶고, 많은 사람에게 주고 싶고, 어떻게 하면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줄 수 있을까. 여기서 사랑은 이성과의 사랑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당장 내일 죽을 수 있잖아요? 작년에 제 정말 친한 친구가 죽었어요. 그 이후로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삶의 가이드가 생겼어요. ‘원세 님이랑 이렇게 인터뷰하고 죽었을 때 후회할까?’ 스스로 물었을 때 후회 안 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저는 돈이나 성공에 큰 욕심도 없고, 단지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걸 어떻게 이루지?’ 하는 게 제 고민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