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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Sep 15. 2021

집요하게, 끈질기게

아이디엇 대표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승재

김원세: 승재 님 안녕하세요. 광고 배우는 대학생 김원세입니다. 승재 님과 연락이 닿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영광이에요.      


이승재: 저도 원세 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우리 재밌는 얘기 나눠 봐요.  

   

김원세: 좋아요. 승재 님께 제가 드리고 싶은 첫 번째 질문 키워드는 ‘20대’입니다. 수상경력을 비롯하여 발자취가 화려한 대표님께서도 20대에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이승재: 좋은 기회를 주셔서 오랜만에 20대를 돌아봤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더라?” 우선 고등학교부터 가볼게요. 저는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중, 고등학교 때 농구부 주장도 했고요. 잘하고 싶었고, 정말 열심히 했죠. 그리고 내가 과연 농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을 살펴봤어요. 당시 KBL 프로 농구에 10개의 팀이 있었는데, 매년 한 팀당 2명씩 총 20명의 선수를 뽑더라고요. 그런데 한 학교에만 해도 거의 2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있잖아요? 그럼 프로로 발탁되는 20명 외에는 모두 농구 선수라는 꿈이 좌절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이게 제 첫 번째 실패예요.   

   

그러고는 일단 대학은 가야 하니까 성적에 맞춰서 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니 너무 지겹더라고요. 한 달도 이렇게 지겨운데, 이걸 4년을 해야 하고, 4년을 하고 나면 이걸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지겨운 거예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그제야 저는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뭘 잘하지?’를 생각해보게 된 거죠.      


그러고 보니 제가 나름대로 잘하고, 좋아하던 것들이 광고랑 연결이 되더라고요. 친구들 별명 짓고, 별것 아닌 것들에 의미 부여해서 선동도 하고, 모임 기획하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이런 소소한 장기가 광고랑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수를 했고,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광고를 전공했죠. 그때부턴 진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재수를 하다 보니 그간 광고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 나름 잘했어요. 전국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서 광고 시험 보면 전체 1등도 하고, 공모전 출품하면 상도 많이 받고, 또 과대도 했어요. ‘이게 내 적성에 맞다. 이거 재밌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적성을 발견하고 군대에 가게 됐고, 군대 안에서 광고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광고 관련된 책도 찾아서 읽고, 기획서도 분석해보고, 카피는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2년을 보냈죠. 그런데 전역하고는 다시 대학 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을 때, 자율적으로 해보자 싶어서 창업을 했어요.      


김원세: (깜짝 놀라며) 설마 그게 아이디엇인가요?     


이승재: 모태죠. <전율>이라는 아이디어 컴퍼니를 세웠는데, 차리고 보니까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제안을 해요.      


김원세: 아이디어를 만들고 제안서의 형태를 갖춰서 선 제안하신 건가요?     


이승재: 그렇죠. 엄청 했어요. 엄청 했는데 하나가 안 돼요. 신기하게도 지금은 당시에 제안했던 곳에서 클라이언트로서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하나가 성사 안 됐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사실 24살짜리가 아이디어 들고 가서 제안하면 누가 일을 주겠어요. 심지어 아이디어 좋다고 뺏어가고 그랬어요.   

   

그때서야 내 기반이 없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만든 광고와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예 내가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몰인몰 플랫폼인데요. 옥션이나 지마켓, 쿠팡처럼 판매자들을 입점시키고, 고객을 유치해 거래를 이어주는 플랫폼을 몰인몰이라고 해요. 그때 당시 친환경 제품을 모아 놓은 플랫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에코 마켓을 열어서 판매자들을 입점시키고, 제가 공익 광고를 만들어 플랫폼을 홍보했어요.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의 일부로 기부도 하다 보니, ‘소비가 늘수록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메시지가 있었죠. 이 사업으로 정부에서 1년 동안 사무실이랑 지원금을 받으면서 시작했어요.      


김원세: 내가 만든 광고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어서 나의 브랜드를 창업한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승재 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이승재: 맞아요. 그렇게 에코 마켓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광고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수익적으로는 실패하게 됩니다. 너무 착한 플랫폼이라 그런지 큰 수익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을 생각했죠. 제가 브랜드를 만들어서 광고를 해봤으니까 이제는 ‘미디어, 매체를 만들어 보자’였어요. 나처럼 광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 주고, 그들의 광고를 노출하는 채널이 되어보자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 당시가 2013년쯤인데, 광고를 보면 혜택을 나눠주는 리워드 앱이 한참 유행하던 때였어요. 저도 깔아서 해봤는데 광고를 볼 때마다 50원씩 모이더라고요. 그런데 한 달 내내 해도 금액이 안 커서 햄버거 하나를 못 먹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어차피 광고주가 앱 플랫폼에 예치한 광고료의 총량은 같다. 이걸 다수가 50원씩 나눠 갖든, 한 명이 다 가져가든 상관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광고 시청의 대가로 개인이 50원씩 받는 대신, 전체 금액을 다 가져갈 수 있는 로또 응모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자.     


이번에는 민간투자를 받아요. 한 반년쯤 준비해서 론칭하고, 실제로 광고주들도 100개 정도 유치하고 되게 잘됐어요. 잘하다가 그 민간 투자자가 여러 사업을 했었는데, 그중 두 개가 잘못되어 저희 투자를 빼겠다고 분쟁하면서 결국엔 실패하게 됐죠. 그때가 스물다섯.   

   

김원세: (당황하며) 제가... 지금 스물다섯인데... 제 나이 때 정말 많은 일을 하셨네요.     


이승재: 말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스물다섯까지 왔네요. 그렇게 실패하고 나서 또다시 고민했던 거예요.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에코 마켓을 열어서 웹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했었고, 리워드 앱을 만들어서 앱 마케팅을 했어요. 다시 말해서 제가 ‘디지털 마케팅’을 했더라고요. 내겐 이런 경험들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사업보단 누군가의 마케팅을 제대로 대행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인 같은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 마케터 채용 글을 보고 연락해서 제안했죠. “신입을 뽑아서 낼 수 있는 퍼포먼스보다, 반값 혹은 70% 가격에 내가 더 높은 성과를 내겠다.” 그렇게 제 인생에 전성기가 와요.  

   

김원세: (웃으며) 대박이네요.  

   

이승재: 스물여섯이 됐을 때, 혼자서 온라인 마케팅으로 6개 정도의 작은 업체를 관리하게 돼요. 그걸로 꽤 많은 돈을 법니다. 시간도 되게 많아요. 대학생보다 시간이 더 많아요. 금전적, 시간적으로 여유롭던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유로워지다 보니까 ‘질적 성장’을 꿈꾸게 되더라고요. 저는 원래 크리에이티브를 꿈꾸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일을 안 하고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유보금을 만들고 나서, 다시 크리에이티브 선 제안을 나서요.     


김원세: 다른 회사들을 찾아서요?    

 

이승재: 네. 회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 생기기도 했고, 당시엔 스스로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막연하게 제안하기보다는, 달력을 보고 기념일들을 찾았어요. 이 기념일들은 저마다 주제성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물의 날이면 물과 관련된 기관에서 어떤 행사를 하겠죠. 그중에 제가 봤던 기념일은 세계 응급처치의 날이었어요. 매년 9월 둘째 주 토요일이 되면 대한적십자사가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알려요. 그런데 대한적십자사가 많은 예산이 있는 기관이 아니니까 저는 거기에다 제안한 거죠.     


김원세: 그때 나왔던 게 막대 풍선...     


이승재: 맞아요. 혼자 출력소에 가서 막대 풍선에 이미지를 붙이고는, 이 샘플을 가지고 적십자사로 가요. 담당 부서가 원주에 있더라고요. 사전에 연락하고, 직접 원주까지 가서 PT를 했어요. 돌아보면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담당자를 잘 만났어요. 그 담당자가 지금도 고마워요.

     

당시 적십자사에는 원래 예정 중이던 캠페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밀어내고 진행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광고를 집행했던 게 국제광고제에서 상까지 받았죠. 상을 받으니 적십자사가 되게 좋아해 주고요. 내년도 플랜을 공유하면서 “우리 내년에도 같이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같이 학교 다니던 동기, 후배들을 모아서 아이디엇을 시작합니다.   

  

김원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처리하다가 일이 커졌을 때 팀원을 꾸린 거네요.   

   

이승재: 그렇죠. 그렇게 동료들이 인볼브 되고, 처음 1년 동안은 회사의 Cash Cow 확보를 위해 온라인 마케팅을 중심으로 열심히 했어요. 그 이후에는 우리가 얼마만큼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서 재능 기부 캠페인들을 하기 시작해요. 그게 환경미화원 스티커.     


김원세: (감탄하며) 와... 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네요.     


이승재: 네, 아니었어요. 단지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환경미화원 스티커, 그림 없는 전시회, 점자 포스터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 세 개가 다 잘된 거예요.      


김원세: 저도 그걸 여쭤보고 싶었어요. 아이디엇이 하는 것마다 상을 받았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요? 유치한 질문은 삼가려고 했는데 너무 궁금하네요.     


이승재: (웃으며) 잘 모르겠어요. 처음 대상 받은 게 환경미화원 스티커인데, 상 받을 때 저희도 놀랐죠. “우리가?!” 결과가 잘 따라준 게 감사하죠.     


김원세: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특별한 공식이 있는 건가요?     


이승재: 공식이라기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판단하는 눈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어쨌든 그 기준에 부합되는 수준으로는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저의 기준이 많은 사람의 공감할 수 있게 잘 맞아떨어진 거죠.    

 

김원세: 일이라는 게 항상 데드라인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때가 다가오는데 내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어떻게 하세요?     


이승재: (단호히) 해내야죠. 그게 직업인데.    

  

김원세: 내가 낼 수 있는 아웃풋에 대한 자신감이 웬만큼 있지 않은 이상, 이런 길을 쉽게 걸어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승재: 곱씹어보면 일이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일로서 ‘어떻게 해야지’가 아니라 저는 그냥 재밌었어요. 일의 영역이 아닌, 내 ‘삶’을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로 임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고요.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했어요.      


김원세: 지난날의 스스로가 반성도 되고, 강한 동기부여를 얻네요. 다시 이야기 이어 가볼까요?     


이승재: 그래서 당시 캠페인들이 잘되고 나서는 기업은행이나 노랑 통닭, 시크릿 콘돔 같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게 됐고, 그리고 그걸 또 잘 해냈고. 그러다가 작년에 현대자동차, 그게 또 잘됐고. 여러모로 좋은 기회들이 맞물리면서 올해는 이래저래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김원세: 그럼 질문을 바꿔서 드려볼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20대 때 승재 님께서 크리에이티브를 좋아했다는 마음은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런데 광고를 하고 싶다는 것과 창업을 하고 싶다는 건 아예 다른 문제잖아요? 원래 CEO의 꿈도 꾸고 계셨던 건가요?     


이승재: 전혀 없었어요. 3, 4명 정도 소규모 그룹에서 리드하는 역할 정도는 생각했었는데, 지금처럼 10명이 넘는 회사의 대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이 일이 좋아서, 잘하고 싶다 보니까 대표가 됐고, 대표가 되니까 이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커지고, 잘 운영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그러면서 회사는 조금씩 덩치가 커지는 거죠. 그런데 잘 못 해요. (웃음) 대표로서는 잘 못 해요.   

  

김원세: CEO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승재 님이 생각하는 리더란 어떤 사람이고, 아이디엇을 이끌어 가고 있는 승재 님만의 리더십은 뭔가요?     


이승재: 최근 “리더의 중요한 덕목은 결단력, 카리스마다” 하는 글을 봤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이 분야는 답이 없잖아요? 고민이 있을 때 곧바로 공유하고, 함께 최선의 답을 찾아가고, 확신을 더해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정해진 답이 없으니까 계속 의심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누가 단독적으로 카리스마 있게 이끄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주로 하는 건 “이런 게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하는 거예요. 무수한 경우의 수를 늘어뜨려 놓고, 거기서 가장 합리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원만하게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 같아요.      


김원세: 그러면 하고 계신 일이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CD의 역할도 있지만, 하나의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자로서의 일도 있는 건데, 그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진 않으세요?     


이승재: (웃으며)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매일 늦게 가고 그래요. 그런데 재밌어요. 저는 사실 웬만한 취미보다는 이게 훨씬 즐거워요.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광고하는 것처럼 우리 회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갈 것인지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나가는, 되게 재밌는 일이에요. 즐거워요.      


김원세: 그러면 연애할 시간도 없으시겠어요.     


이승재: 하하. 어렵죠.  

    

김원세: 그렇다면 반대로 승재 님이 원하는 팔로십이 있나요? 이런 팀원과 함께하고 싶다.     


이승재: (곧바로) 생각하는 사람.      


김원세: 생각하는 사람이요?     


이승재: 네. 생각은 누구나 다 하거든요? 그런데 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생각하는 힘이라는 게, 문득 어떤 생각이 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엔 결론을 지어보는 힘인 것 같아요. 대부분은 표면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그쳐요.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일상에서 문제가 없고요. 하지만 생각하는 힘은 발달하지 않는 거죠. 본인만의 접근으로 생각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확실히 창의적인 힘이 있어요.     


김원세: 생각을 끈질기게 하는 거네요.      


이승재: 사실 광고가 인사이트 싸움이잖아요? 다른 시선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재조합하는 것에서 승부가 나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해보면 놀라움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김원세: 그럼, 생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승재 님의 경험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승재: 이건 우리 동료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누군가의 창작물이잖아요? 그걸 두고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는 거예요. ‘특정 사물의 이름이 왜 이렇게 지어졌을까? 이 사물의 아이덴티티가 뭘까? 내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여지는 없을까?’ 이런 훈련을 오랫동안 했어요. 제게는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김원세: 단순히 식당에 가더라도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깊게 생각하시겠어요.     


이승재: 그렇죠.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     


김원세: 문득 궁금증이 생기네요. 아이디엇에서 준비한 아이디어가 크리에이티브하고 훌륭하지만, 아쉽게도 클라이언트의 철학과 맞지 않아서 무산된 경우도 있나요?      


이승재: (단호하게) 그건 기획을 잘못한 거죠. 이 브랜드가 쌓아온 자산. 그리고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것을 위해서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건데,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브랜드의 철학을 간과했다면 그건 잘못됐죠.  

    

김원세: 그러면 일상에서의 생각도 그렇게 접근하시겠어요. 단순히 디자인을 두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 가게가 가진 철학은 뭘까? 이 작은 요소 하나도 이 가게의 철학에 부합되는가?’

     

이승재: 정확해요. 좋은 브랜딩이나 페르소나에 대해 생각해보면, 하나의 컨셉 아래 확장되면서 다양한 표현으로 뻗어가잖아요? 예를 들어서 카페의 네이밍, 인테리어, 메뉴 구성, 아니면 전화 왔을 때 응대 멘트. 모든 것들이 ‘브랜드다움’을 표현하는 수단들이에요. 여기에 따른 일관된 전략들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일치가 보이는 곳에 가면 기분이 좋고, 아니면 아쉬운 점들을 생각해보게 돼요.      


김원세: 승재 님은 20대를 돌이켜봤을 때, ‘이거는 꼭 해볼걸.’ 하고 아쉬운 것들이 있을까요?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셔서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승재: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더 극단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용의 자세라고 하잖아요? 사람은 중용을 위해서 나를 너무 소모하는 때가 있어요. ‘중간 없이 더 극단적으로 살아볼걸.’ 싶어요. ‘놀 때는 더 극단적으로 놀고, 일할 때는 더 극단적으로 일해볼걸. 내가 묶여있던 애매한 것들을 최소화해볼걸.’ 싶죠. 물론 상충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다 가지고 싶잖아요?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고 그런 거죠.     


김원세: 극단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는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까요?     


이승재: 막연하게는 ‘취미를 더 끝까지 파볼걸.’부터, ‘친구들이랑 더 소모되듯이 놀아 볼걸.’ 밤새 술 먹고 쓰러져서 며칠 누워있을 정도로.     


김원세: 승재 님 성격에 무작정 노는 건 불가능하지 않으셨을까요?

      

이승재: 아니에요. 저도 노는 거 좋아하고, 술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그런 걸 더. 더. 더 해볼걸.     


김원세: ‘광고’라는 주제에서 시작하지만, 인터뷰라는 것이 결국엔 그 사람에 대해 듣게 되는 거잖아요? 대표님의 이런 ‘이승재다움’이 저한테 너무나도 강한 자극을 주는 것 같아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국민 MC 유재석이 방송에서,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승재 님도 20대에서 30대가 되셨고,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위치나 역할도 많이 달라졌고요. 지금의 위치에서 포기하고 있는 것들, 잠시 양보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세요?     


이승재: (탄식하며) 많아요. 20대와 30대가 다른 것 중 하나가, 20대 때는 일도, 공부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다 잘하고 싶었고, 모두 다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게 20대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들이 심화되면서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더라고요. 우선순위가 생기고, 취향과 가치관이 확고해지면서 새삼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돼요.      


김원세: 씁쓸하지만 조금씩 단호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네요.     


이승재: 네. 그래서 내가 고민해서 포기한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져요. 그래서 일상에서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요. 예컨대 ‘일을 더 오래 하기 위해 컨디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 같은 전략이요.      


김원세: 정말 치밀하세요.     


이승재: 개인의 성장, 회사의 성장, 인간성. 이렇게 저한테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를 놓고, 이를 위한 세부 기준들을 적으며 계속 뻗쳐나가다 보면 맵이 만들어져요. 거기서 행동에 대한 기준들이 생기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김원세: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네요.  

   

이승재: 사실 해보면 하루도 안 걸리는데, 만들어 놓으면 그걸 토대로 삶을 루틴화 할 수 있죠. 제일 끝에 가서는 ‘내가 하루에 물을 몇 잔 마셔야 하는지. 비타민은 언제 어떤 것들을 먹어야 하는지. 술은 일주일에 며칠을 먹자.’ 이런 세세한 행동 기준이 생기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지키는 것들이에요.     


김원세: 승재 님 나이가 서른셋이라고 하셨나요?   

  

이승재: 네 서른셋이요.     


김원세: 너무 멋지신 것 같아요. 저도 승재 님처럼 20대를 보내고, 승재 님 같은 30대가 되고 싶어요.     


이승재: 원세 님은 스물다섯?     


김원세: 네.     


이승재: 스물다섯은 어떤 나이예요?      


김원세: (고민하며) 과도기는 이제 지난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 알겠고요. 그걸 알아채는 시기가 남들과 비교하면 느렸던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해요. 제가 지금 이 프로젝트를 하느라 부산에서 서울을 매주 오고 있어요. 친구들은 제 비행깃값을 걱정해주기도 하는데,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얻는 것들이 교통비보다 훨씬 값지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로 하길 잘했다 싶고,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는 버릇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승재 님처럼 뛰어들기에는 두려운 마음도 공존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가고 싶지만 불안한 길과 보편적이지만 안전한 길 사이에서 저는 늘 저울질해요.     

 

이승재: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김원세: 이런 저와 같은 20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망설이는 친구들이요.     


이승재: (오래 고민하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증명해야 해요. 증명의 책임은 본인한테 있잖아요. 그걸 못 해내면 자신도 납득이 안 되는 길일 테고, 할 수 있으면 그게 내 업이 될 수 있는 거죠.

      

김원세: 승재 님께서는 스물셋부터 증명에 대해 도전하셨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잘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은 없으셨어요?     


이승재: 현실적인 고민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크진 않았어요.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나의 존재를 온전히 세우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사명이라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현실적인 불안과 걱정들도 많이 해결되더라고요.      


김원세: 마지막으로 승재 님의 꿈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승재: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업에 대해서는 똑같은 크리에이티브로 더 가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고, 좀 더 큰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규모도 필요하고 기반도 필요하니까 그걸 준비하고 있는 거죠. 지금 저의 책임은 회사의 대표로서 동료들과 함께 하는 아이디어가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게끔 판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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