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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o Sep 04. 2024

‘쓰레빠’와 밥벌이

2시 15분.

국장은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를 진작에 다 마신 후 팔짱을 낀 자기 손목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2시라고 제대로 알려준 거 맞아? 어디쯤이래?” 차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내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요 앞이래요. 거의 다 왔대요.”

나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초조한 마음으로 오늘 올 사람을 기다렸다.

하얀색 독일산 소형차가 도로에서 빠져나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커브를 돌아 주차장 입구로 진입하더니 건물 앞 빈자리에 급히 차를 세웠다.

푸른 계열의 폴로 캡모자를 깊숙이 내려쓴 젊은 남자가 차문을 열고 내렸다. 헐렁한 흰색 티셔츠에 해변에서 입을 법한 짧은 형광색 반바지, 정강이까지 바짝 올려 신은 스포츠 양말.

슬리퍼를 끄는 그의 걸음 소리가 미세한 진동이 되어 4층인 사무실까지 울렸다. 예감이 불길했다.

‘설마 저이는 아니겠지?’

그가 몇 걸음 걷다가 차로 다시 돌아가서는 차문을 열고 보조 좌석에서 서류봉투를 꺼내는 것을 보고 나는 기대를 접었다.




“이거.”


서른 살이 안 돼 보이는 그 남자는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무심히 던지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 사람은 왜 말을 하다 마는가, 왜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꼴은 저게 뭔가,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타인을 어설피 판단하는 게 싫은 나로서는 이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드물지만, 서류봉투를 열어보고 이 말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거쳐 국경을 너머 나라마다 잠언으로 굳은 연유를 알게 되었다.


넹, 넵,ㅇㅇ, x.

서류에 있는 질의마다 단 그의 답변이다.


이 자가 제정신인가 싶어 나는 그의 얼굴을 망연히 올려다 보고는 “선생님, 이건 답변이 아닌데요?”라고 물었다.

그는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올리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이따 말로. 뭐라고 쓸지 몰라서.”

흥분한 건 나뿐이었다. 나는 애써 분을 참으며 사람 좋은 미소까지 지었지만 그는 이게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나의 참을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가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두자 나는 서류 뭉치를 들고 맞은편 면담실로 들어갔다. 국장이 의자에 누워있듯이 기대앉아있었다.

그도 말은 안 했지만, 건너편 사무실을 흘깃하더니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라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내 마음은 바짝 죄어 오그라들었다.

나는 그림인지 낙서인지 모를 ‘기호’로 갈겨진 서류를 내려놓으며, 오늘 면담 가능하겠냐고 물으니 그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뭐 어떻게 해? 들어오시라고 해.”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은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이 사람이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과 이 사람의 몹시 격의 없는 옷차림과 무례한 태도에 나의 책임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지 않은지, 지나온 과정을 빠르게 되돌려 나의 미심쩍은 ‘과오’를 머릿속에서 샅샅이 뒤졌다.

나의 무신경, 태만 혹은 안이한 근무 태도의 결과가 지금의 사태로 이어진 것이 아닌지 나는 몸소 죄인이 되어 자기 검열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안내를 한 거야? 똑바로 해."

그는 서류에 시선을 둔 채 짜증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다음엔 한번 더 체크하겠습니다. “

내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더 이상 어떻게 더 안내를 잘해요? 사전 통화도 몇 번 했는지 아세요? 다 큰 어른한테 뭘 어떻게 더 떠먹여 주라고요?

...라고 할 수는 없으니 죄송합니다로 마무리한다. 늘 그러하듯이 죄송합니다로 갈무리되는 대화에는 군더더기의 말이 이어 붙지 않는다.

항변보다 수긍이 속한 길이니 억울함은 내 안에 구겨 넣고 차후에 알아서 정리하기로 한다.


그는 면담을 마치고, 사무실 문밖에 서있는 나를 그냥 지나쳐 갔다. 인사나 가벼운 목례나 눈 맞춤도 없이.

복도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는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에 스며드는 날카로운 것을 느꼈다.


이 감정은 분기탱천할 만한, 그런 ‘규모’의 분노는 아니지만 은근한 불쾌함, 솥밥을 할 때 보르르 끓어오르는 밥물 같은 화다. 폭발력 없는 이러한 희미한 감정은 내 안에 끈덕지게 머문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인간은 이상하리만큼 잔상이 오래 남는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나란 인간과는 다른 부류라 그런가. 가끔은 내가 너무 규정과 틀을 중요시한 나머지 어느새 ‘진지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아니 태생이 그러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짜는 무엇인가. 본질은 겉치레를 벗겨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인가. 내 안의 본질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철저히 분리될 만한 성질의 것인가. 나를 둘러싼 포장이 곧 그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의 자세와 태도는 그것이 담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즉, 그 일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이 행동, 옷차림, 제스처, 표정 같은 것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이 중요한 면접을 볼 때, 경조사에 참여할 때, 공적인 자리에 초대를 받았을 때 오늘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무례함이 쿨함인 듯, 솔직함인 듯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에게도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고, 그 중요한 일을 할 때 입는 옷, 격식에 맞는 행동과 자세가 있을 것이다. 단,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라면.


내가 못마땅한 것은 그가 오늘의 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하는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가 청원하는 일이라면, 그 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표시해야 하지 않을까?

면담 일정이 있는 날에 하고 온 입성은 차치하고, 쌍방 간의 약속을 경시하는 태도는 그의 명백한 잘못이다.  


나는 민원인을 만나기 전에 준비하는 게 많다. 서류를 준비하고, 접수와 절차에 필요한 안내를 하고, 관련 기관과 사전 연락을 해놓는 일들인데 매사 꼼꼼하게 준비를 하지 않으면 업무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어렵다.

이는 나의 업이니 그가 나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가 일적으로 만났을 때 표해야 하는 매우 최소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동료들과 모여 차를 마셨다. 나는 오전에 다녀간 사람이 팬티인지 바지인지 모를 것을 입고 ‘쓰레빠’를 질질 끌고 왔는데 늦기까지 했다며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무례한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으나 나의 동료들은 내 말을 가벼이 받아넘겼다.


“그런 애들은 어디에나 있어. 신경 쓰지 마. “


평소 동료들 앞에서 성풀이를 하면 들뜬 감정이 가라앉고 노기도 삭곤 하는데 오늘은 영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러려니’가 안된다.


나는 단순히 그가 나를 무시하는 태도와 그의 격의 없는 옷차림에 불쾌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일과 일터를 꼴같잖게 판단한 데 대해 모멸감이 든 것이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이곳에 머물러야 하므로 오늘의 일은 내게 아득히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하다. 그러므로 밥벌이는 경건하다. 그것의 가치를 함부로 재고, 판단하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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