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do Aug 31. 2024

어른이의 만능키, 엄마

엄마, 엄마, 우리 엄마가요

나는 80년대생이다. 나의 엄마는 50년대 후반에 태어나셨다.


나의 엄마가 자란 세상은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어수선한 시기여서 그랬는지, 출산은 곧 집안의 노동력이자 재산으로 이어지던 때라 그랬는지, 말을 하고 손끝이 야물 무렵이 되면 아이도 제 할 일은 제가   했다.


엄마 말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화는 본인이 직접 빨았단다. 집 밖에서는 밭일을 거들고, 집 안에서는 살림을 거들고. 설거지는커녕 제 밥도 못 뜨는 요즘 어린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옛적에?라고 묻겠지.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시내버스를 타고 혼자 학교에 등교했다. 8살이었는데 매표소에서 회수권도 10장씩 혼자 잘 끊었다. 그리고 열 살이 넘어가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대부분 혼자 했다. 오히려 부모님이 도와주시는 게 부끄러울 만큼 뭐든 혼자서 해내고 싶었다.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나도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근래 사무실을 찾는 청년들은 제 엄마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오기 멋쩍어서 같이 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제 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다 해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기 일인데 왜 당사자는 팔짱을 끼고 앉아있고, 그 옆에 앉은 엄마가 펜을 들고 서류 앞에서 쩔쩔매는 걸까?


방문만 같이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문의를 할 때부터 본인이 전화 안 한다. 엄마가 ‘해준다.’

듣다 듣다 나도 부아가 나서 “근데 왜 어머니께서 계속 전화를 주세요? 스케줄을 잡으려면 본인이 연락하셔야죠.”라고 뾰족하게 말했더니, “우리 애가 직장일로 바빠서요”라고 한다.

‘못났다. 얼마나 분초를 다투는 일이면, 단 5분 시간을 못 내서 늙은 엄마가 전화로 시중을 들고 있나?‘

나는 속으로 아우성을 친다.


“바쁘시겠죠.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가 이 일의 당사자이신가요? 본인이 직접 연락하라고 하십시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야 마지못해 당사자가 연락을 한다. 면담일에 와서도 볼이 부루퉁해서는 “저는 잘 몰라요. 우리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라고 한다. 서른이 넘은 성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나는 당혹스러워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닫기 일쑤다.


손발이 다 자라기도 전에 자기 앞가림을 해왔던 부모들이 이제는 허리가 앞으로 꼬부라지게 생겼는데 장성한 자식들 뒷가림을 하느라 여기저기 쫓아다니니 애달프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본인이 앞장서지 않는다. 엄마가 전화하고, 찾아오고, 편지 쓰고, 사장 찾고 난리다.

속이 터진다. 그런데 별난 한두 명이 아니다. 날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남편 회사 사정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회사에 결근한 직원의 엄마가 전화를 건단다. “우리 애가 아파서 오늘 못 나가요.”

그리고 어떤 직원의 엄마는 “우리 애가 왕따를 당한다는데, 사장님 바꿔주세요.” 울면서 전화한단다.

오직 ‘내 새끼‘만 보느라 ’ 남의 새끼‘까지 생각 못 하는 것도 슬픈 일인데 왜 내 새끼의 자립까지 돕질 못할 망정 망치고 있는지.


이런 사람들을 만난 날은 가슴이 갑갑해진다. 나는 식견이 넓지 못한 사람이지만 제 엄마랑 제대로 분리 안 된 ‘어른이’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진정으로 걱정이 된다.

언제까지 엄마가 내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혼자 사는 법을 모르는데 앞으로 이 불완전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가슴이 답답한 날은 친한 회사 동료들과 모여 떠든다. 민원인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말은 못 하지만 뭉뚱그려 이야기하면 대강 알아듣고 공감한다.

자립을 하기 위해선 모체와 분리되면서 멀어지는 단계가 필요한데 오늘 만난 사람은 이걸 제대로 겪지 못한 모양이라고 했더니 동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끌탕을 하며 저들이 겪거나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학교에 가방을 안 가져가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담임에게 전화해서 야단 좀 쳐달라는 엄마, 엄마가 원하는 남자랑 조건에 맞춰 결혼했다가 이혼한 친구, 결혼 후에도 집안 대소사는 꼭 엄마랑 의논하는 남편 이야기까지.


이렇게 엄마랑 분리가 제대로 안 된 어른이들이 세상에 많구나,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나의 아들이 집에서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여섯 살이면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부모가 독려해 주며 혼자 해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현실은,


(내가) 벌레 허물 벗은 듯 바닥에 집어던진 옷들을 군말 없이 주워 개키고, (내가) 대중없이 늘어놓은 장난감을 정리하고, (내가) 반찬을 밥 숟가락에 얹어 떠먹여 주고, (내가) 자리끼를 준비해 주고, (내가) 잠옷을 입혀주고… 아이의 일이라면 일대일, 최고의 서비스를 해준다.

애가 지금 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남편이 “혼자 먹게 둬.”,  “자기가 정리하게 둬.“, ”애가 엎질렀으니 애가 닦게 둬.“ 하는 말을 허투루 들어왔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

“우리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라고 말한 그 서른 살 먹은 남자가 우리 아들의 미래가 되지 않게 오늘부터 정신 똑바로 차린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어깨를 거들먹거리기 전에, 남 말하느라 혀를 빠르게 놀리기 전에,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인간을 대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오늘 생각한다.


오늘 만난 사람 덕분에.







이전 07화 거냉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