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엔 눈이 왔다.
해가 나지 않아 그런지 아침부터 스산했다.
접수와 면담이 잡혀 있는 날은 출근 전부터 긴장이 된다.
오늘은 어떤 사람일까, 늦지 않고 와야 할 텐데, 빠진 서류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로 아침부터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그녀는 내가 당부한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에 들어왔다. 긴 머리와 양쪽 어깨에 달라붙은 눈의 결정이 투명한 구체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녀의 시선은 사무실 벽에 걸린 액자들에 머물렀다가 파티션 앞에 놓인 고무나무, 스투키, 개죽순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나를 보진 않았다.
“눈 오는데 우산 안 쓰고 오셨어요?”
“저는 눈은 맞아요. 우산 안 써요.”
나는 안녕하세요, 인사도 없이 티슈 몇 장을 뽑아 여자에게 건넸고, 그녀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대답하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낯선 사람이었지만 대화를 그런 식으로 시작해도 괜찮았다.
여자는 내가 안내한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서류를 꺼냈다. 천에 비닐 수지를 입힌 자주색 인조가죽 가방이었다.
바닥에 닿는 면의 양쪽 가장자리가 마모되어 엉성하게 박음질해 놓은 실들이 이리저리 삐져나왔다.
그녀는 입구가 닫히지 않을 만큼 두툼한 편지 봉투를 열어, 꺾이고 접힌 여러 장의 서류들을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펴느라 애썼다.
“구겨져도 괜찮아요. 그냥 저 주세요. “
그녀는 내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구겨진 서류를 펴는 일에 더욱 몰두하였다.
자신의 생활공간과 경계가 뚜렷한 생경한 장소, 낯선 냄새와 이상한 고요함, 지극히 사적인 과거와 현재를 처음 보는 이에게 토해내야 하는 수치감.
그녀의 몸과 마음은 오그라들어있다.
긴장한 이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죄어든다. 익지 않은 것을 ‘첫’ 경험하는 데서 오는 불편한 감정과 날카로워지는 마음에 깊이 공감하니 그렇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나는 대답도 듣기 전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탕비실로 들어가 싱크대 상부장에서 티포트를 꺼내어 물을 끓였다.
티백 뒷면에 차가 맛있는 온도 80도,라고 쓰여있어서 물이 부르르 끓기 전에 전원버튼을 내렸다.
속이 깊은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들큼한 배향이 감도는 흑차 티백을 담가 찻물을 우려냈다.
“조심하세요. 뜨거워요.”
그녀는 내가 건넨 컵을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머그컵에 두 손을 대고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컵이 뜨거운지 손을 대었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해야 할 말을 머릿속에서 고르며, 그녀 맞은편에 앉아서 티백에서 천천히 우려 나오는 찻물의 색 변화에 시선을 두었다.
얼마 뒤 갈색빛으로 퍼져나가는 찻물 위로 작게 파장이 일었다.
여자의 눈에서 동그스름한 눈물이 방울방울 찻물 위로 떨어졌다.
나는 덩달아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눈물을 겨우 안으로 밀어 넣고는 머그컵을 잡은 그녀의 두 손을 내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갑고 떨리는 두 손을 잡으니 그녀의 삶이 뭉개진 채 하나의 덩어리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은 나로서는 느닷없는 돌발이었지만 마음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한 생각이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괜찮아요. “
그녀는 그제야 내 눈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운 사람 같지 않게 깨끗하고 말갰다.
“자꾸 눈물이 나서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따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면담할 때요.”
담담한 척했지만 실은 애원하는 여자의 속사정을 나는 읽었다. 그녀는 제 인생을 알지 못하는 남의 서툰 위로를 바란 게 아니다. 타인과 나 사이에 벽을 세우고 제 삶의 최소한의 개인적인 공간을 바라고 있었다. 타인이 결코 스며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여지, 딱 그만큼의 거리를.
“그럼요. 괜찮습니다. 차 드세요. “
나는 절차에 필요한 서명을 서류 몇 군데에 받고, 일의 절차와 마무리에 대해 속히 설명한 후 내 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이 초 단위로 흐르는 것을 체감하며 서로의 거리를 지킨 채로 앉아있었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녀의 뒤를 보고 나는 울었다. 속에 고여 찰랑찰랑하던 눈물이 몸 바깥으로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를 모른다. 그녀의 인생도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녀가 찻잔에 떨어뜨린 눈물방울이, 나를 애써 피하는 시선이, 바르르 떨리는 얼음장 같은 두 손이 나에게 와닿았다. 그녀의 삶을 구체화하여 체험하는 일은 나의 영역이 아니지만 그녀가 오랜 세월 몸으로 받아낸 비애와 좌절, 분노, 공포, 굴욕, 수모, 모든 복합적인 고통이 날카로운 칼처럼 내 안에 파고들어 왔다.
그래도 나는 여태 살아있다고, 나는 결국 생존자라고 그녀가 몸부림하는 것을 나는 마음으로 알았다.
뜨겁게 일렁이는 마음이 한참 가라앉지 않아서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좁은 사무실을 안을 일 없이 배회하였다.
“냉면 먹으러 가자. 내려와”
점심시간 30분 전에 상사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말했다. 나는 운 얼굴을 들키기 싫어서 책상에 코를 박고 알겠다고 흘려 말했다.
주차장에 내려가니 상사가 차를 빼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다가가자 엑셀을 슬슬 밟으며 셋 셀 때까지 안 타면 그냥 가겠다며 싱거운 농을 걸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20분 남짓 국도를 달려 북한식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냉면집에 왔다.
“거냉 먹어봤나?”
“거…? 그게 뭐예요?”
“거, 냉. 뭘 거 같아. 맞춰봐.”
나는 나의 작은 에너지 전부를 오전에 이미 소진하여 생각할 여력이 없었지만 상사의 장단에 맞춰야 하므로 맥없이 퀴즈를 풀었다.
“거… 위 간으로 만들었나요? 냉면 고명으로 올리는 고기가 거위? 거위냉면의 줄임말? “
그는 답이 없다. 웃지도 않는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것인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대답이라서?
나도 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용된 이로서 월급을 받는 처지이므로 혼자 웃었다.
“거… 지 냉면? 양이 적게 나오나요? “
내가 생각해도 거지 같은 대답이었지만 아무 말이나 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먼저 깨우친 자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려가며 어린 중생에게 ‘한수’ 가르침을 주었다.
“거, 제거할 거야. 냉, 냉함. 그래서 냉함(차가움)을 제거한 냉면이라는 거지.”
“단어에 모순이 있네. 그게 무슨 냉면이에요? 냉면은 차가운 면이라는 거잖아요.”
웃기네,라는 소리를 덧붙이려다 나의 주제를 알고 성급히 말문을 닫았다.
“일단 한번 먹어봐. 거냉을 먹으면 평양냉면의 진짜 맛을 알 수 있지.”
그는 좋다, 싫다, 나의 어떠한 대답도 듣지 않고, 멋대로 거냉 두 개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홀 서빙 직원이 기계적으로 주문표에 뭘 흘려 적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되묻지 않는 걸 보니 냉면가게에서는 ‘되는’ 메뉴인가 보다. 나는 거냉의 맛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냉면은 차가운 맛에 먹는 건데 사람들 취향 한번 못되게 세부적이구나, 싶은 비뚤어진 마음으로.
주문한 지 5분 만에 거냉이 나왔다. 냉면 위에 살얼음이 없는 것 빼고는 일반 평양냉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수육과 절임무, 삶은 계란, 송송 썰린 파와 고춧가루의 단출한 구성.
냉면을 받자마자 젓가락을 들고 면을 휘젓는 내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지, 일단 국물부터 마셔봐.”
그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냉면그릇을 두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려서 국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나는 작은 반발심에 숟가락을 들고 냉면 육수를 반 수저 정도 떠서 입에 흘려 넣었다.
“응?”
“그렇지? 맞지?”
나는 응?이라고 했을 뿐인데 상사는 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승리자의 미소를 띤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냉면 그릇을 들어 올려 육수를 쭉 들이켰다. 국물이 혀를 거쳐 목구멍을 넘어 식도, 위장, 오장육부를 적실만큼 들이부었다.
“캬아-”
차가운 맛이 없는데 속이 시원해졌다. 육수의 온도가 온수도 냉수도 아닌 정온으로 유지되니 그 ‘슴슴한’, ‘아무것도 아닌’ 맛이 더 세밀하게 혀에 닿았다.
그 맛이란 담백한 고기와 맑고 깨끗한 메밀의 맛, 동치미 국물의 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맛인데 육수의 재료를 한 번에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혀의 각 부위가 제 역할을 하였다. 온도 차에 따라 같은 음식의 맛이 달라지니 새로웠다.
평소 평양냉면을 먹을 때 ‘아무 맛이 아닌 맛’, ‘하얀 면행주를 삶은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거냉을 먹어보니 평양냉면의 진수를 알게 되었다. 냉한 면이 아닌 냉면에서 맛의 진수를 찾다니 별나고 이상하다.
나는 면발은 먹지 않고 거냉의 육수를 연이어 들이키며, 오전 내내 가졌던 복합적인 마음과 그중에 가장 큰 슬픔 그리고 내게 드리워진 여자의 그림자를 지워냈다.
먹는 것으로 희로애락을 다스리는 일은 원시적인 일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작은 인간이고, 그렇게라도 내 마음이 정제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작은 인생에서 거냉을 알게 되어 기쁘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