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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1. 2024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성당에 앉아서

내 발 사이즈는 222mm이다.

신발은 225 사이즈를 주로 신는데 발에 살집이 없어서 구두를 신는 게 어렵다.

스타킹을 신으면 미끄러워서 벗겨지고, 덧신을 신으면 영 모양이 안 날뿐더러 걸을 때 안에서 벗겨지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옷에 맞춰 구두를 신어야 할 때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신는다.


검은색 굽 낮은 펌프스를 아침 출근길에 신고 나왔다. 양말을 모아 둔 소쿠리를 뒤지다가 신을 만한 걸 못 찾아서 그냥 나왔다.

발에 땀이 차면 마찰력이 떨어져서 구두가 언제든 벗겨질 수도 있다.

이런 예감을 하면서도 왜 그 신발을 신었을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렸다.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줄 끄트머리에 서자마자 버스가 왔다.

탈 차례가 되어 승차 계단에 오르려고 오른발을 떼는 순간, 신발이 거의 벗겨져 앞코에서 달랑거렸다.

엄지발가락이 어떻게든 구두와 작별하지 않으려고 붙잡고 애원했지만 중력 앞에서는 무용이었다.

보잘것없이 작은 내 발가락 하나가 어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이날은 샤스커트를 입었다. 뒤에서 속옷이 보일까 봐 허리를 적당히 굽혀 신발을 주우려고 하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신발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구른 것이다. 대굴대굴 굴러 버스 밑으로 들어갔으니 품위를 지켜서는 구두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치마를 말아 쥐어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한 손은 땅바닥에 디딘 채로 손을 최대한 뻗어 나의 구두를 구했다.

흙먼지로 뒤덮인 발을 털어내지 않고 얼렁뚱땅 구두를 구겨 신고는 버스에 올랐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갈 길 바쁜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으니 미안해서 버스에 속히 타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목적지가 다 다를 것인데 아침 출근길에 10초, 15초가 어디인가. 뒤에서 코로 컹컹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어준 사람에게 고마웠다. 이 비극에 누구라도 웃으니 다행이었다.

버스에 앉을 자리가 없어 창가 쪽에 섰는데 사람들이 안 보는 척,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나를 향한 위로일까, 원망일까? 미안하고 민망했다.

땅바닥에 닿았던 무릎에 자잘한 돌이 배겼다가 떨어졌는지 얼얼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아침의 ‘불운’한 기운을 떨어내려고 애쓰며 커피를 내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출근했네? 잠깐 내려오세요.”

국장이었다.

국장이 업무 개시 전에 나를 부르는 일은 거의 없는데 무슨 일일까, 계단으로 내려가며 생각했지만 짚이는 데는 없었다.

국장은 신발도 갈아 신지 않은 채 구둣발로 나를 맞이했다. 그도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커피?”

“네. 감사합니다.”


비서가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와 면담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갔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상사에게 불리는 일이 많지 않고, 있다면 질책이 뒤따를 때가 많아 앞서 묻는 게 두려웠다.

국장은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비틀어 여러 겹으로 접힌 종이 2장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걸 아침에 사장님한테 받았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10년의 시간으로 라포가 형성된 우리 사이에 그가 존대를 한다는 건 상황이 심각한 거다.

그가 나에게 건넨 종이는 손편지였다. 궁서체로 이어 쓴 걸로 봐서는 나이 든 사람이 보낸 것이 분명하다. 요즘에 손편지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추정되었다.

편지의 요점은 ‘직원의 업무 태만으로 일이 지연되어  본인이 손해난 게 이만저만 아니니, 직원에게 응당한 처분을 내려라.’라는 거였다.

읽다 보니 발신인이 누구인지 윤곽이 잡혔다.

몇 달 전 민원을 접수하는 날부터 제 배를 막무가내로 들이밀며, 속한 처리를 사납게 요구한 사람인 듯했다.

그이에게 절차상 최대 1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듣지 않고 본인 말만 반복했다. ‘나는 모르겠고, 빨리 처리해 달라.’


그러고는 지난달 어느 날짜 화요일에 전화해서는 다짜고짜  ”당신,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뭐야? 토요일도 쉬고, 일요일도 쉬고, 월요일도 쉬면 대체 일은 언제 하는 거야?”라고 고함을 쳤다.

월요일에 휴가를 낸 게 사단이었다. 그때는 나도 독이 올라 “아니, 선생님이 제 인사권자세요? 저한테 월급 주세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에요!”라고 내질렀다. 평소 나답지 않게 신경질적으로 대응해서 기억에 남는다. 그랬더니 그는 “돈 벌기 쉽네? 하는 일도 없이 앉아서 노가리만 까는 게. 너 두고 봐.”하고 끊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지만 ‘두고 볼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까맣게 잊었는데 그 ‘두고 보라는 일’이 내게는 까마득히 높은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나를 골탕 먹이는 일이었다.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국장은 사장에게 불려 가고,  나는 국장에게 불려 가고.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꿰어진 채 나는 말단에 앉아 죄를 고백하고 있었다.  


마음씨 고약한 노인네 같으니.


아침의 일은 역시 대형 불운의 징조였다고 나는 끼워 맞추며, 나의 작고 여린 영혼을 암흑 속에 가만히 잠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국장은 사건의 경위를 물었지만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다. 눈치껏 사건 경위를 요약해 말하니 나의 감정은 배제되고, 민원인의 지적은 당위가 되었다.

국장은 사건 해결을 원했고, 나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 해결하겠습니다.”


국장은 물색없이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랬어? 살살 달래야지, 그런 사람들한테는 방법이 없어.”

그리고 그제야 웃으며, 내게 차를 권했다.

“사장님에게 보고는 드려야 하니 경위서는 오늘까지 제출하고. 나가봐.”


나는 눈물이 났다.

이제는 정말 하산할 때가 되었구나, 10년이면 할 만큼 했다.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

 



어영부영 열두 시가 되었다. 밥 생각도 없고, 직원들과 태연히 말 섞을 자신도 없어 회사 밖으로 나왔다.

오려고 온 건 아닌데 걷다보니 동네 성당이었다. 나는 누구와 약속이 되어있는 것처럼 성당 문을 열었다.

스테인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이 성당 안을 깊숙이 그리고 조밀하게 파고들었다. 빛의 알갱이처럼 부유하는 먼지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1시간 가까이 앉아서 망연히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거칠게 함부로 솟았던 감정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았다. 극단의 감정이 가라앉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잡념도 사라졌다. 누가 나쁜지, 뭐가 잘못됐는지,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깜깜했다.

 그야말로 머릿속이 무의 영역이 되었다.


고요한 세상에 그분과 나 둘 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로 긴장되지는 않았다. 서둘러 처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렸던 것 같습니다. 되도록 빨리 처리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는 생각보다 담담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젊은 사람이 뭘 시키면 ’네‘할 줄도 알아야지, 요즘 사람들은 일을 입으로 해. 이번에 좀 깨달았길 바라요. “

되레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알맞은 기회에 아랫사람에게 인생을 한 수 가르쳐주었다는 양 자비로웠다.  


나는 괜찮았다. 어쨌든 해결을 했고, 마음에 남은 건 없었다.

오랜 시간 통화하고 싶지 않아 정도에 넘치게 굽힌 경향은 있었지만 사과의 속뜻은 진심이었다.  

그때 말씨가 거칠었고, 감정적으로 같이 맞섰으니 나도 잘못했다.



그분 앞에서 나는 자꾸만 반성을 하게 된다.

모든 갈등의 매듭이 풀리고, 심적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신비가 그 안에 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외출하기 전 책상 위에 올려둔 사직서를 다시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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