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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4. 2024

사람 때문에, 사람 덕분에

마음에 작은 불빛이 켜질 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있다.

감정이나 생각이 없어서, 반격할 만한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침묵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말보다 힘이 있겠다, 싶을 때 나는 입을 닫는다.

마음속은 온통 꼬리를 잇는 질문과 반문으로 아우성이지만 그건 내 속 사정이므로, 나는 입을 틀어막고 말이 쏟아지지 않도록 애를 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작고 여린 나의 영혼을 지키는 방법이다.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의 포화를 뒤집어쓴 날들이 쌓이다 보니 체득한 것이다.


나와 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을 직접 볼 일은 보통 단 한 번이다. 서류를 접수할 때 보고, 그 후로는 전화나 이메일, 문자로 소통을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데 이 노인은 벌써 세 번째 왔다. 지난겨울에 접수하고, 봄에 한 번, 오늘 세 번째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요. 차나 한 잔 얻어먹을까 하고.


이 노인은 손에 쥔 손수건을 말아 쥐어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내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하지 못한 눈으로 나의 눈을 응시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그 마음을 알은체하지 않았다.   


노인의 집은 나의 회사와 지역이 아예 다른데 그냥 지나가다 들를 일은 희박하다. 나는 그 말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이를 맞아들였다.

한여름에 나의 엄마보다 연배가 많은 사람이 뒤뚱거리며 찾아왔는데 문전박대할 ‘명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으므로.


“아, 오셨어요? 앉으세요. 차 드릴게요.”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희끗희끗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고른 은발이라 정갈한 인상을 주는 노인이었다. 그녀는 짧은 커트 머리에 큐빅이 군데군데 박힌 머리띠를 했다. 그리고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했는데 그 모습이 나이와 겉돌지 않고 어울렸다.

노인은 전통적인 뉴스를 진행하는 7-80년대 아나운서 같았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렸다. 외양이나 음성으로 짐작했을 때 꼬장꼬장한 느낌이라 그런지 만만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라고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는 손가방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우리 아들인데 사진 한번 봐봐요. 학교 다닐 때 맨날 1등만 했거든. k대 나왔고, 지금 s전자에서 연구원으로 있어요.”


이 노인이 나에게 하는 말과 사진을 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잠깐 생각했다.


“네? 저한테 왜…?”


“돌려서 말 안 할게요. 선생님이 나는 우리 며느리감으로 마음에 들거든. 내가 일흔도 넘어서 주책없긴 한데 그냥 편하게 한번 만나보면 안 될까? 우리 아들 진짜 괜찮거든. 사람 좋고 똑똑하고. 자기 공부하느라 여태 짝을 못 찾았어. “


여기서 일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이런 유형의 민원인은 처음이었다. 업무로 만난 사람이 자기 자식의 사진을 들고 와서 소개를 해주고 있다니.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사는구나, 그날도 새삼 생각했다.


나는 내 앞으로 온 사진을 보지도 않고, 그녀에게 밀어내며 미간을 찌푸린 채 가볍게 웃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런 일로 오시는 건 좀... 그렇죠. “


“아, 결혼하셨구나. 결혼하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요. 나이는 좀 있어 보여서.”


그녀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본인의 감정을 잘 숨기는 것이 연륜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노인이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은 아들의 증명사진을 제 가방에 도로 넣으며 입맛을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선생님 주변에 괜찮은 친구 없을까요?”


나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침묵을 택했다. 여기서 말을 보태면 대화의 화제가 어디로 튈지 몰라 두려웠고, 나에게, 아니 둘에게 이 쓸모없는 이야기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아까웠다.


노인은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은 뒤에 커피를 들이켰다. 그녀 역시 내 침묵에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러다가 힘없이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미안해요. 바쁜데. 내가 원래 이렇게 정신없는 사람은 아닌데 자식 일에는...”


나는 상대의 미안하다는 사과에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대화를 무사 종결하는 절차라고 생각해서다.


“괜찮습니다. 그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뒷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뭘 이해한다는 말인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한다는 나의 무책임한 말이 그녀와 나의 경계를 허무하게 허물었다.


노인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마음에 고여있던 말들을 쏟아부었다. 하루에 쏟아야 하는 말의 총량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나에게 쏟아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어떤 책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얼마나 큰 공연장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했으며, 유학생활은 어디서 몇 년을 했는지, 논문은 무슨 주제로 몇 편을 썼는지, 그런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잇고 또 이었다.

 

나는 곧 피로해졌지만 그녀의 조각난 말들이 여러 빛깔로 이어져 마치 패치워크처럼 조화로웠으므로, 중간에 끊을 수 없었다. 노인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이 이야기를 끊으면, 곧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닫았다.

노인이 원하는 것도 나의 침묵이었다.


이 노인이 나를 찾아온 속뜻은 뭘까.

아들의 선을 주선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버릴 만한 마땅한 쓰레기통을 찾아온 것일까?


노인은 나의 사무실을 본인의 사적인 공간으로 함부로 차지했다. 영역 다툼에서 잠시 패배했지만 나는 무력하지 않았다. 10분, 딱 그 시간만큼 이 노인에게 능동적으로 양보하기로 했다.


경험상 말이 많은 사람은 본인의 패를 상대에게 들키기 쉽다. 노인은 돌아가는 길에 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나, 괜한 이야기를 했나, 자기 검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노인은 내가 그녀의 사생활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 모든 일의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나의 상식이었으므로 반드시 그리 되리라 자신은 없었다. 얼토당토않은 그이의 말들과 일방적인 나의 침묵이 오늘로써 끝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음속에서 노인에게 주었던 10분은 지났지만 이야기에는 끝이 있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제가 조금 있다가 회의가 있어서요…” 목례를 하며 수화기를 드니 그녀가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목례로 답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노인이 나가고 나서 나는 사무실 의자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무너진 채 앉아있었다. 때로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데 힘이 더 든다. 화자의 말과 생각을 놓치지 않고 좇으려면 계속 기운을 내야 하므로, 작은 에너지로 작게 사는 사람에게는 듣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 똑똑.


아까 그 노인이 들어와서 또 같은, 아니면 다른 얘기를 다시 쏟아낼까 봐 불안한 찰나에 한 젊은 남자가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아, 이거 저희 어머니께서 농사지으신 귤인데요. 어머니가 지난번 일 감사하다고 선생님께 꼭 갖다 주라고 하셔서 가져왔어요.”


그는 귤이 서른 개쯤 담긴 조그만 박스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아… 저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마음만 받을게요. 죄송합니다.”


예전에 민원인으로부터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포도 세 송이를 받았다가 상사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어 나는 얼굴을 작게 흔들며 거부했다.

귤을 주기 위해 일부러 이곳까지 온 사람에게 미안했지만 별수 없었다.


“저희 어머니…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기억하실까요? 정 xx 씨라고. “


이름을 들으니 기억났다. 나의 대학 동기와 이름이 같아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제주도에서 귤농사를 짓는 예순이 넘은 여성이었는데 또래보다 훨씬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이였다. 얼굴은 볕에 검게 그을리고, 며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피로가 눈 밑에 쌓여 그늘진 인상이라 그렇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 아이고… 어떻게… 그런….”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한 채 남자의 눈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와 마주친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저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귤을 여기 직원분한테 드리라고 하셨어요. 고생하신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하셨어요.”


나는 그 귤을 받아들였다. 돌아가신 분의 마음을 거절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힘드셨겠어요.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나는 이런 말들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를 위로할만한 말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을 위로하는 말에는 힘이 없다는 걸 나는 안다.

그저 귤을 받고, 돌아가신 분의 마음을 받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 앞에서 말보다 침묵을 택한 날이었다.

침묵으로, 꺼내지 못한 감정과 생각, 언어들이 안에서 덩어리진채 엉겨 붙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실타래처럼 단단히 엉킨 마음이 느슨해지며 풀어졌다.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전류처럼 타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마음에 작은 불 하나를 켜놓았다.


이리저리 몸을 뒤치며 털어내려 해도 진득이 붙어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이 불의 온도로 인해 녹아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내게 상처를 내지만 또 사람이 아픈 곳을 다독이므로 나를 살아가게 한다.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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