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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

두 번의 수능, 포기하는 용기

by ondo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늘닮기라는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봉사를 하며 제가 앞으로 갈 길을 찾았고, 우리 학교가 제가 가는 길에 빛을 비추어 줄 것이란 확신으로 입학했습니다."


영혼과 분리된 내 입은 나비처럼 나풀나풀 가벼이 날아올랐다. 무대에 선 나는 너무 긴장이 되지 않은 나머지 ‘꾼’처럼 보일까 봐 짐짓 긴장이 되는 양, 나지도 않은 식은땀을 닦는 시늉까지 하였다. 나는 유령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와 거칠 것 없이 달변을 쏟아내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학 입학 홍보물에 그대로 쓰여도 될 만한 선전을 펼치고 나자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낙비 소리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손뼉을 치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때 걔’가 되어 학내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학교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마음엔 다른 방향에서 일어 오는 작은 파도로 차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실 도피 후 찾아온 마음의 평화와 안정의 틈새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의혹이 싹텄다. 입학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일어난 마음의 변덕이었다.


속세와 절연한 수도원과 다를 바 없는 학교에서 낯선 것이라곤 동네 떠돌이 개나 고양이뿐이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본 사람과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유일하게 배달 가능한 가게에서 주문한 치킨을 기숙사 사감 몰래 두레박 올리듯 받아야만 하는 상황과 산책 중에 들개에게 쫓겨 황급히 동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점차 현실과 미래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수업에 함께 다니던 친한 언니가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남자친구가 ‘산골 학교’에 다니는 그녀를 자주 만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언니는 사랑하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별 고민 없이 반수를 택했다. 나는 크게 흔들렸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풀리지 않는 의혹에 매어있었다.

그간 말재주를 부리며 주절주절 떠들어댄 말들을 태연히 주워 담을 용기가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의 위선은 얼마나 꼴 같잖은가. 산뜻한 스무 살의 나이에 위선자가 될 수는 없었다.


뱉어놓은 말과 딴 길로 샌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새, 봄이 어름어름 지나가고 초여름이 되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타과 교수들과도 종종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난번 차에 태워준 일을 인연으로, 나를 무대에 세운 김 교수와 가까이 지냈다. 동기들과 함께 그의 연구실에 찾아가 리포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묻거나 참고할 만한 책을 추천받았다.


그는 상대의 말을 받고, 응답하는 방식이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거침없이 본인의 생각을 툭 던지거나 성의 없이 뭉개지 않고, 충분히 고심하고 대답을 했다. 본인이 뱉는 말을 책임이라는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다는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진솔하게.


나는 어느 평일 오후, 공강 시간에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어떤 결심이 선 것도 아닌데 발길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그는 내게 차를 내주며 무슨 고민이 있어 혼자 찾아왔냐고 물었다. 무엇이든 받아주고 이해해 줄 것 같은 그의 미소에 이끌려 나는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학교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길이 아닌 것 같아요.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요."


나는 그의 질책과 실망이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다. 신앙 간증하듯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사람들 앞에 섰던 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 앞장서 정상에 오르겠다고 기수 역할을 자처한 놈이 등산로 초입에서 ‘가다 보니 이 산이 아니다. 하산하겠다.’라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가. 그는 내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학교에 남아 더 경험해 보라는 설득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예상한 게 아니라서 좀 놀랍기는 한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 지금 멀리 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이제 시작이니까 몇 번을 돌아가도 길은 충분히 찾을 수 있어요.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막다른 길에서 포기하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고.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나는 응원하고 싶어요. 학생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한참을 찻잔만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나왔다.


그의 말에 나는 포기하는 용기를 얻었다. 부모님께 수능을 다시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휴학계를 제출한 뒤 1학기를 마치기 전 짐을 싸서 집으로 들어갔다.


7월, 종로에 있는 단과 학원을 등록한 뒤 수능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듣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수행'과 같은 시간을 보낸 뒤 시험을 치렀고, 청년의 열기로 일 년 열두 달 북적이는 한 사립 대학에 다시 입학을 했다.


나는 여전히 ‘산골 대학‘ 동기들을 만난다. 한 데서 먹고 자고 놀던 두 달의 시간은 짧지 않았던지, 시절인연으로 그치지 않고 일이 년에 한 번은 만나 근황을 나눈다. 나는 만날 때 가끔 김 교수의 소식을 묻는다. 그는 서너 해 전 입학처장이 되었고, 여전히 좋은 멘토로서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가끔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릴 때 그를 떠올린다. 그라면 내게 어떤 말을 해줄까. 새로 시작할 용기를 줄지, 현실에 순응하도록 이끌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 다정하고도 진솔한 말을 건넬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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