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질소비료공장』(1932)의 작가 이북명은 흥남비료공장에서 3년간 노동자 생활을 했다. 다시 말해 『질소비료공장』은 전문작가가 아닌 실제 노동현장 출신의 작가가 창작한, 당시 식으로 얘기하면 ‘공장소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소위 ‘노동자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32년 『조선일보』서 연재를 시작하나 3회 연재를 마치고 일제 경찰당국의 탄압으로 중단된다. 이후 1935년 일본 좌익잡지에 일본어로 발표된다. 식민지보다는 식민지 모국인 일본서의 검열이 덜한 셈이었다. 이 작품은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우리말로 재번역 됐다.
‘흥남질소비료공장’은 일본 노구치 재벌이 세웠다. 노구치는 비료공장과 함께 장진강과 부전강에 수력발전소를 짓고, 만주국과 합자해 수풍 발전소를 세워 식민지 조선에 세계적인 전기-화학 콤비나트를 구축한다. 수풍발전소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력발전소였다.
노구치는 화학비료와 전기로 부를 축적해 거대재벌로 성장하고, 전쟁 발발 후에는 화약을 생산하는 군수산업에 껴들어 일제의 대륙침략에 첨병 역할을 한다. 서울에다가는 반도호텔을 짓고 그곳에 사무실을 두기도 했는데, 반도호텔은 지금 롯데호텔의 전신이다
이북명은 노구치가 세운 질소공장에 노동자로 취업을 해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주인공인 공장노동자 ‘문길’은 원래는 황소처럼 건강한 자였으며, 노동운동 같은 것에는 애초 관심을 두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다.
그는 종교잡지에 나오는 “노동은 신성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신이 복을 내려준다.”는 말을 신조로 삼아, 노동운동을 하는 동료들과도 만나기를 꺼려한다. 그럼에도 문길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친목회’ 사건으로 동료들이 붙들려 갈 때마다 그들을 외면하지는 못한다.
단지 문길은 출산이 몇 달 안 남은 아내, 부양해야 할 노부모를 생각하며 또 해고의 위협 때문에 노조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 어울리고자 하지 않을 뿐이다. 옥살이를 했던 동료들이 출감하면 술 한 잔 사며 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문길은 공장에 근무한 지 4년이 되던 해 폐병으로 건강이 악화돼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는 공장으로부터 홀로 버려지면서 비로소 노조에 소속되지 않는 개개 노동자의 힘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해고당한 날 문길은 홧김에 술을 먹고 집에 돌아와 작업복 보따리를 내던지며 아내에게 내뱉는다. “흥! 술장사(갈보) 십 년에 깨진 주전자만 남는다더니, 내사 사 년 동안 죽도록 일해서 그것뿐이라네. 제 - 기, 자네도 팔자 사나운 계집이야! 후유.”
결국 문길은 해고된 후 병세도 점차로 악화돼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동료 노동자들은 문길의 장례식을 메이데이 날을 빌어 치르면서 회사 측에 항의 집단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질소비료공장은 “암모니아 가스의 독한 구린내”가 말해주듯이 일본이 조선반도로 이전한 대표적인 환경오염과 공해산업이다. 노동자들은 악취 때문에 큼직하고 두툼한 마스크를 걸어보지만 호흡 곤란을 느끼며 가슴은 늘 물을 먹고 체한 듯 갑갑하고 몸은 오싹오싹하다.
문길은 점차 기침이 잦아지며 식은땀이 흐르고 쇠약해져 간다. 일본기업이 식민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유의했을 리 없을 터, 문길은 병원조차 가기가 두려웠던 게 그로 인한 노동력 상실자라는 신고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병을 방치하고 죽음에 이른다.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설립한 카르댕 추기경은, “생명 없는 물질은 공장에서 값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곳에서 한갓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라고 했다.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90여 년 전 식민지 조선에서도 이는 어김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