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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May 06. 2021

39 올레길 완주, 그리고 새로운 인생길

20210423

39 올레길 완주, 그리고 새로운 인생길


6:45에 눈이 떠지다. 커피 한잔과 요구르트 하나 먹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뮤지컬 곡 ‘겟세마네’를 틀어 놓고 브런치에 올릴 글을 편집한다. 고니 형님이 전날 찍은 사진을 보내주셨다. 역시 전문가의 솜씨는 다르다.  


9:20 쯤 16코스 현영선 선생님이 전화 주셨다. 완주 축하해 주시려 서귀포 올레센터까지 오신단다. 샤워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올레센터로 간다. 이번엔 걸어서가 아니라 택시다. ㅎㅎ


내 앞에 한 명의 여성 완주자가 완주 인증절차를 밟고 있다. 여쭤보니 어제 추자도를 마지막으로 10개월 만에 완주하셨단다. 축하드렸다. 다음은 내 차례다. 내 올레 패스포트를 꼼꼼하게 살피신다. 그치, 난 초반에 스탬프를 개념 없이 다른 페이지에 찍고 그랬으니 스탬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다 찾으시고 완주증서를 주신다. 멀리 제주시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현영선 선생님도 축하해 주신다.  



올레센터 선생님이 완주 증서의 문구를 읽어 주시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걸 듣는 데 가슴도 뭉클해졌다.




당신은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돌담,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과 정겨운 마을들을 지나 평화와 치유를 꿈꾸는 제주올레의 모든 코스 약 425Km를 두 발로 걸어서 완주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제주올레 도보여행자입니다. 




3/14일 제주에 내려왔고, 3/18일부터 걷기 시작해서 4/22일에 올레길 26코스를 완주했다. 걸은 날자만 치면 24일 동안 26코스 425킬로를 걸었다. 하루 평균 16.3킬로를 걸은 셈이다.



4월에만 벌써 337명이 완주했고, 서귀포 올레센터에선 6,491번째 완주자, 올레길 전체로는 대략 9,200 - 9,300번째라고 한다. 아직 만명도 완주하지 못한 올레길, 더 많은 분들이 올레길을 즐기고 완주하였으면 한다.  



완주 메달은 파란색과 주황색이 있다.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난 이번에 정방향으로 갈었으니 파란색으로 했다. 담엔 역방향으로 걸어서 주황색 메달을 받을 거다. ㅎㅎ



또 하나의 순서가 남아 있다. 올레 간세 후원자에게 후원자 메달과 날개 달린 후원자 뱃지를 주신다. 와우, 이게 더 기쁘다. 바람이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섬, 그리고 정난주와 황경한의 애틋한 스토리가 있는 추자도에 내 간세가 놓인다니. 흑, 감동이다. 아직 간세 후원자를 찾지 못한 외로운 15-A 중간 스탬프 간세 후원자도 빨리 나오길 바란다. 안 나오면 내가 또? ㅎㅎ  


기념사진 촬영까지 마치니 11:20  되었다. 배가 슬슬 고파온다. 후원을 해서 정신적으로 풍성해졌다 해도 육체적으론 배가 고프다.   찾기고 귀찮아 올레센터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마침 완주증서를 받은 60 초반으로 보이는 형님이  합석을 청했다.  



함께 완주 축하하며 식사에 곁들여 맥주를 마신다. 그분께 어느 코스가 제일 좋았냐고 여쭤보니 바로 추자도라고 말씀하신다. 역시 추자지. 특히 그분은 하추자도가 너무 좋았다고 하신다. 추자도를 다 걷고 마지막으로 제주시에서 출발하는 18코스 걷는데 이런 좋은 자연에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과 기분이 참 좋으셨다고 하신다. 추자도는 인생길 최고의 행복을 맞이한 순간이었다고. 더 말씀을 이어가시는데 작년에 혈액암으로 고생하셨는데 올해 건강이 많이 좋아지고 은퇴도 해서 올레길 오셨다는데 쉬엄쉬엄이라도 걸을 수 있다는 것 가체가 감동이었다고 하신다.


이 분도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검토하셨는데 코로나로 못 가서 제주 올레길 걸었다는데 제주 올레길에 푹 빠지신 듯하다. 특히 하추자도에. 그래서 하추자에 새로 생기는 올레길 코스에 제가 출발점 간세 스탬프 후원한다고 하니 놀라신다. 하추자를 사랑하는 이분은 반드시 추자를 다시 찾으실 것 같다. 내 스탬프도. ㅎㅎ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 허전하다. 허전함의 근원은 한동안 매달렸던 올레길 이란 거대한 목표, 집중할 수 있었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올레길은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그저 놀멍 쉬멍 즐기는 대상이다. 한 달 넘게 매일 생각하며 거의 매일 걸었던 올레길을 이젠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올레길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이 있으면 그 길을 따라가겠지만, 길이 없으면 내가 만들면서 헤쳐나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항상 그랬듯이 과감히 도전하면 되니까. 뭐가 되었든 난 내 새로운 인생길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  


터.벅.터.벅. 걸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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