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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May 05. 2021

38 마지막 올레길, 가파도를 걷다

20210422

38 마지막 올레길, 가파도를 걷다 

(10-1 코스, 4.2킬로, 상동포구-가파 치안센터)


오전 5:15에 기상, 바나나와 소시지 하나 그리고 커피와 요구르트로 간단히 요기한다. 속히 준비하고 나선다. 버스 정류장 50미터를 남기고 눈 앞에서 모슬포행 202번 버스가 떠난다. 흑 15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다음 버스가 빨리 도착해서 모슬포에 있는 하모3리로 간다. 3코스에서 만난 모슬포 이자섭 형님이 차로 정류장까지 나와주셨다. 그 차로 운진항까지 이동해서 주차하고 표를 받는다. 형님이 전날 예매한 것이다.


형님께 드릴 말씀이 많다고 하니 뭐냐고 물으신다. 첫 번째는 오늘 가파도가 올레길 마지막 코스이다. 둘째는 올레길 간세 후원했는데 간세 설치 장소가 하반기 새로 생기는 추자도 18-2 코스 출발점이다. 지난번 3코스 걸을 때 정난주 님과 그의 아들 황경한 스토리를 들려주셨는데, 그래서 더 추자도 코스가 감동적이었는데 세상에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새로 생기는 추자도 18-2코스에 출발점은 내가, 중간점은 형님이 간세 후원하신다네. 이젠 추자도도 나와 형님의 스탬프가 있어야 완주가 된다. 형님과 이어진 추자도 인연으로 인해 더 기쁘다.  



가파도 들어가는 운진항 매표소는 오전 7:40인데도 북적인다. 요즘이 가파도 청보리밭이 장관이란다. 배도 만석이다. 8:40에 드디어 가파도로 출발한다. 배는 15분 만에 가파도에 도착한다.  



항구에 도착해서 마지막 출발점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여긴 중간 스탬프가 없으니 이제 도착 스탬프만 찍으면 길었던 올레길 여정도 끝이 난다.  


걷는다. 해안을 따라서. 우측에 마라도가 보인다. 갯강활, 갯매도 보이고. 가파도는 고도가 가장 낮은 섬이다. 20미터가 최고 고도란다. 여기도 멕시코에서 날아온 선인장이 보이고.  



형님은 퇴직 후 바로 산티아고 가지 않음을 후회하신다. 올레길 먼저 걷고 산티아고 가려고 했는데 그놈의 코로나가 터질 줄이야. 언젠가 하늘길이 열리고 갈 날이 있으실 거다.  



1킬로 남짓 걸었을 뿐인데 클린 올레 하시는 형님의 쓰레기봉투는 페트병으로 가득 찬다. 이 아름다운 자연에 쓰레기 무단 투기하는 인간들이 밉다. 바로 분리수거하는 곳이 보여서 버리고 편히 가신다. 그러면서 집개부터 챙기신다. 우도에서도 줍는 집개 두고 오셨다고. 올레 패스포트도 두고 온 사람도 있는데요 뭐. ㅎㅎ



바람이 불며 보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르르 차르르. 다시 바람이 분다. 차르르 차르르. 이렇게 섬 전체가 보리밭으로 덮여 있을 줄 몰랐다. 자전거로 섬을 도는 분들, 걸어서 도는 분들, 보리밭에서 사진 찍는 분들, 아기자기한 카페와 조개나 소라 껍데기로 장식한 벽들. 가파도는 낮지만 아름다운 섬이다.



송악산 코스 걸으며 바라본 가파도 풍경은 낮은 평지에 가까워 별로였는데 가파도에서 제주도를 바라보니 장관이다. 제주도에 산이라 부르는 곳이 7개인데 가파도에서는 하나를 제외한 6개가 보인다고 한다. 표선에 위치한 영주산을 제외하고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 그리고 가장 거대한 큰 형님인 한라산이 보인다. 날씨가 좀 더 맑았으면 더 선명하게 보였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는다. 별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기쁠 뿐. 난 첫 번째 완주만 한 것이지 앞으로 더 갈 길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매듭 끝내니 좋긴 하다.  



채 두 시간도 걷지 않고 돌아오는 오전 10:50 배편, 송악산 뒤로 산방산이 버티고 있다. 하얀 물보라가 인다. 그래 다시 돌아간다. 4-5킬로만 걷고 끝내려니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다시 7코스 종점부터 걷는다. 자섭 형님 친구분도 같이 걷는다. 사진작가 하시는 고니 형님이 두 번째 걷는다고 새 올레 패스포트도 선물해 주신다. 다시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끝은 또 다른 시작임을 몸으로 느낀다.  



고니 형님이 멋진 사진도 많이 찍어 주신다. 사진작가의 솜씨는 확연히 다르다. 모든 사진이 다 예술이다.


오후 5시, 총 26.66킬로 걷고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도착한다. 올레 센터 선생님 한 분까지 합류하여 넷이서 올레 완주 축하파티를 연다. 근처 '용이 식당'에서 돼지 두루치기를 먹는다. 이건 완전 제주식이다. 돼지고기가 다 익을 무렵 파채, 콩나물, 무채를 다 넣고 다시 볶는다. 맛도 엄청나다. 근데, 여기는 술을 안 판다. 자섭형님이 술을 넉넉하게 사 오신다.  



올레 완주 날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P.S.

가파도는 고도차가 없고 거의 평지를 걷는 매우 짧은 코스다. 4월의 가파도는 청보리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푸름을 즐기고 여유있게 걷다 보면 어느새 종점이다.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즐기다 오면 좋은 코스 같다. 올레길 코스 중 가장 짧은 4.2킬로로 만들어 놓은 이유도 지친 올레꾼들에게 하나의 산들바람 같은 코스로 인식되게 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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