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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May 04. 2021

37 정난주 님의 묘를 가다

20210421

정난주 님의 묘를 가다


8시에 일어나서 나머지 짐을 싼다. 3월 14일부터 4월 20일까지 제주시 벤티모 호텔에서 잘 머물렀다. 여기 있으면서 올레길도 거의 돌았고. 5월 말까진 서귀포 있다가 6월에 이틀 정도는 성산 일출봉 부근에 가서 21코스, 1코스를 다시 돌고 그 이후 6월 보름 동안 있을 숙소를 고민하다 다시 이 벤티모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그 대신 지금 같은 전망 없는 방이 아니라 전망 있는 방으로. 그렇게 하니 하루에 만원이 더 비싸져 숙박료가 일 45,000원이네. 그래도 서울 올라가기 전에는 전망 있는 방에서 플렉스 좀 해야겠다.  


벤티모에서의 뷰


숙소를 제주시의 동일한 벤티모로 잡게 되면서 짐도 많이 줄었다. 여기서 6월 초까지 짐을 맡아주신다네. 안 입는 옷과 휴대용 청소기 등을 박스에 넣어 맡기기로 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린다, 적어도 방금 전 까지는. 당초 목적지를 지난번 중간 스탬프 안 찍은 섯알오름으로 정했다. 그러다 황경한의 어미 정난주 마리아 님 묘지가 근처에 있어 거기 먼저 들리기로 했다. 여긴 11코스 중간쯤에 있는데 지난번엔 아무 스토리도 모른 상태로 그냥 지나쳤지 뭔가. 흑.  


황경한의 어미 정난주 님을 뵈러 가는 길엔 고난이 따르 보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 낮게 쌓은 담을 박아 무너뜨렸다. 바로 프론트에 달려가 내가  일을 말했다. 여기저기 알아보시더니 호텔 비용으로 처리해 주신단다.  감사드린다.  


오른쪽 앞 범퍼가 깨졌다. 제주 와서 사고 한 번도 안 난 차인데. 차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그래도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안 다친 게 어디냐. 하늘이 도와주신 거다.  



후원도 하고 올레길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면서 자신감과 교만이 하늘을 찔렀나 보다. 이렇게라도 나를 돌아보고 낮출 수 있게 해 주신 신께 감사한다. 그 감사한 맘을 가지고 정난주 마리아 님을 뵙게 되어 더 좋다.  



1시간을 달려 대정읍에 있는 정난주 님의 묘를 찾았다. 입구의 모자상부터 눈물짓게 만든다. 혼자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노란 꽃 한 송이를 바친다. 눈물이 또 터졌다. 하염없이 운다. 그리고, 올레길을 무사히 마쳐 가는 것과 여기를 찾게 해 주심에 감사했다. 모자의 영원한 안식과 행복도 기원했다. 홀로 무덤 앞에서 흘쩍이고 있는데 천주교 신자분인 올레꾼 두 분이 들어오셔서 기도하신다. 난 묘 좌측으로 가서 눈물을 훔친다.



그 두분도 정난주 님과 아들 황경한의 스토리를 알고 계셨다. 그래, 신을 믿든 안 믿든 이건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지. 엄마와 아들 간의 슬픈 스토리는 다 감동을 주겠지. 나도 무릎 꿇고 기도드린다. 그리고, 시를 한편 바친다.




버린 엄마 


엄마만 겨우 부를 수 있는

두살배기 아들

제주로 귀양 가는

모진 바람과 출렁이는 돛단배 안에서

그저 울기만 한다


제주는 몇 시간 더 가야 하는데

눈 앞에 보이는 추자

아이가 토하기를 반복하다

지쳐 잠들 때

어미는 추자에 잠시 배를 세우고

그 아이를 갯바위에 버린다


버려짐은 비움이고

새로운 시작임을

엄마는 알지만

그렇지만

흐르는 눈물 감출 수 없고

그저 조용히 기도한다


천주여

천주여

아들을 도와주소서





눈물을 뒤로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다시 본 깨진 범퍼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알뜨르 비행장의 파랑새도 다시 보고, 대평포구로 이동한다. 지난번 제대로 보지 못한 박수기정을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박수기정은 바가지로 마실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솟은 절벽 '기정'의 합성어다. 절벽 아래로 가면 샘물이 있다고 하는데 거긴 오늘 밀물이라 못 들어갈 것 같다.



박수기정 앞 바위에 목이 긴 새 한 마리가 있다.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한참을 서 있는 것인가? 난 왜 서 있는가? 왜 걷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박수기정을 바라보며 길을 묻다.


차를 몰고 주상절리로 향한다. 지난번 올레길 8코스 걸을 땐 그 앞을 지나가게만 되어 있어 주상절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명불허전이로세. 시가 절로 나온다.  





주상절리 


육각형 파스타 면을  

한 손에 움켜쥐고

바다로 던졌더니

퍼지지 않고

그대로 꽂혔다


다가가 한 올씩 풀면

그대로 풀릴 것 같은

생동감


그 밑에 파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제 서귀포 숙소로 들어간다. 제주 유포리아 지식산업센터 안 숙소인데 전혀 숙소가 있을 것 같이 않은 오피스 빌딩이다. 그 안에 들어갔더니 저 멀리 범섬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와우. 여기 있으면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가서 글 쓸 필요가 없겠다. 웬만한 카페 전망보다 배로 좋다.  



서귀포의 첫날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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