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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May 14. 2021

두 달간의 제주생활 소회

두 달간의 제주생활 소회


제주에 내려온 지 두 달이 되었다. 3/14일 그저 올레길 걸어 보겠다고, 책을 써 보겠다고 배를 타고 건너온 지 말이다. 제주시에 머문 40여 일의 기간 동안 8코스부터 걸었던 올레길은 4/22일 완주하였다. 그 기간 동안 목표는 명확했다. 바로 올레길을 완주하는 것.


제주시에서의 숙소는 창문 열면 바로 1미터 거리에 커다란 옆집 빌라 벽이 마주했다. 3층 좁은 방에서 있으면 답답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숙소였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올레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올레길 완주를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올레길이나 걸어 보자' 정도의 마음이었다. 걷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겼고, 달리 할 것도 없어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걷고 매일매일 기록하고, 글로 다듬고 브런치에 올리는 과정을 그 좁은 제주시 숙소에서 다 해냈다.


목표는 때론 그렇게 설정되기도 하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 욕심이 조금 생기고, 그걸 따라가다 보니 완료하고 싶어 지고. 그것도 비좁고 전망 없는 답답한 방에서 말이다.


이에 비하면 서귀포의 숙소는 넓은 방과 탁 트인 전망으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즐거웠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바다와 병풍처럼 보이는 범섬까지 이 숙소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난 길을 잃었다.


좋은 환경에선 오히려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올레길 완주를 끝낸 이후로 더 헤매고 있다. 정확히는 5/7일 '놀멍 쉬멍 올레길 걷기' 연재를 마치면서 말이다. 책을 쓰겠다는 막연한 목표도 희미해지고 있다. 난 무엇을 위해 여기로 온 것인가?


제주에 온 이후 의도적으로 책을 피했다. 활자에서 벗어나 그것에서 더 멀어질수록 그래서 활자에서 벗어나야 그 갈증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두 달 동안 책 한 줄도 읽지 않았고 이제 거의 바닥에 도달할 거라 예상했지만 나에겐 바닥은 아직 멀었나 보다. 그러니 조바심이 난다.


모르지, 이렇게 오늘 글을 다시 쓰는 것도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조짐일 수도. 난 여전히 책을 읽지 않고 올레길도 걷지 않고 무료하게 숙소에 처박혀 있다. 그렇게 좋은 전망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니 더 문제다. 홀로 숙소에 처박혀 있으니 말도 줄어들고 머리도 멍해진다. 움직여야지 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미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 그것도 여전히 미궁이다. 책, 그건 좀 더 바닥을 쳐야 될 듯하다. 근데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책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책 쓰기는 몸 쓰는 올레길 걷기보다 몇 배의 고통과 인내가 수반되기 때문에 그 두려움으로 책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시작을 못 하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니 제주 온 지 한 달 되었을 땐 난 감동적이었던 추자도에서 나오고 있었다. 두 달 된 지금은 며칠 째 씻지 않은 몸 상태로 바다를 바라보며 있다.  


그래, 좀 더 멀어져 보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책을 빨리 완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도 스스로 푸시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 갈증의 끝이 어디인지 바닥이 확인될 때까지 더 내려가야지.


한 가지만이라도 오늘 해야겠다. 떡진 머리부터 깨끗이 하고 밖에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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