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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추리 Jun 15. 2021

제주 석 달 소회(feat 이제 일하고 싶다)

제주 석 달 소회(feat 이제 일하고 싶다)


비가 온다, 추적추적. 3월 중순 제주 내려왔을 때는 바람만 세차게 불뿐 비는 그리 자주 내리지 않았다. 바람과 추위에 시달리며 걸었던 3월의 올레길, 그 이후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는 날이 넘 좋았다. 적절한 기온과 약해진 바람, 한라산과 수평선이 훤히 보이는 맑은 날씨가 그지없이 좋았다.  


제주시 골방에서의 40여 일과 서귀포 아름다운 전망과 넓은 공간에서의 40여 일, 그리고 잠깐 들린 성산에서의 3일, 다시 제주시에서의 2주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시 제주시로 돌아왔을 땐 지미봉에서의 부상으로 왼쪽 발목엔 깁스가 끼워져 있었다. 그러니 제주시 생활은 숙소에서 누워서 환자로 거의 보냈다. 덕분에 제주시 골방에서는 글을 쓰기로 한 계획도 무산되었다.  


이렇게 제주 생활을 마무리하기엔 아쉬움이 넘 크다. 지난주 깁스는 풀었지만 다리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도 추가 일주일을 쉬며 회복했더니 이젠 절긴 하지만 걷는데 지장은 없다. 그래 일주일 제주생활 연장이다.  


친구 은익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위미에서 닷새를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간다.  


여전히 앞날이 불투명하다.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왜일까?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5년 반 다닌 첫 직장 KTB를 관두고 유럽으로의 배낭여행, 그리고 인터넷 광고 관련 스타트업에서의 CFO 생활과 해외 M&A 경험, 다시 VC로의 이직과 코스닥 상장사(보이스웨어) 인수, 그곳에서 4년 동안 CFO로 10여 회의 M&A 경험, 해외 VC인 IDG Ventures에서 9년여의 벤처투자 및 대표 경험, 그리고 떠난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이어진 내가 창업한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현 AG 인베스트먼트), 창업한 지 2년도 안되어 내가 만든 VC에서 쫓겨난 경험, 이어진 방황과 블록체인으로의 입문, IT 대기업 임원으로의 영입과 3년 동안 LINE 3개 계열사 대표 역임 등. 지금까진 의도했던 안 했던 난 내가 원했던 바를 다 이루고 살아왔다.  


대표 생활만 10년을 했고 그 바쁜 와중에도 야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석사,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세 권의 책도 출간했으며 대학교 강의 경험도 해보았다. 라인에서 블록체인 조직을 만들고 상장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인을 만들어 해외에 상장도 시켰다. 그 코인은 한 때 1조 원의 시가총액을 넘기기도 했다. 내 제자가 후임으로 대표가 되는 것도 보았고 내가 채용한 직원들이 무럭무럭 성장하여 사회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지켜봤다.  


석 달의 제주생활로 머리는 맑아졌으며 체력적으로도 강해졌다. 석 달이 지나니 노는 것, 쉬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 다음 주면 서울로 올라가는 데 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까 보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난 VC에서 투자업무를 하며 주로 살아왔다. 투자는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투자업무는 개인적으로 엔젤투자를 하면 되니 앞으로 그리 하고 싶지는 않다. 엔젤투자도 몇 건은 해 두었거든.  


투자업무와 쫄투 진행, 창업스쿨 운영을 통해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왔다. 창업자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도 해주며 내 경험을 들려주고 그들이 바른 방향성을 잡고 성장해가는 것도 봐왔다. 그럴 때 난 더 큰 쾌감을 느꼈다. 그래, 난 스타트업을 돕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런데 단순한 조언자로 남기는 싫다.  


어느 정도 성장한, 그렇지만 조직이 커지고 사업도 정체기에 있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스타트업에서 CEO를 하고 싶다. 상장을 앞두고 있다면 더 좋다. 구글도 성장할 때 에릭 슈미트가 마케팅과 사업부문에서 큰 역할을 해왔던 것을 잘 알 것이다. 나도 LINE에서 글로벌 사업과 조직운영 경험을 했다. 상장사 CFO 역할도 해보며 상장사의 생리도 잘 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 창업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회사 사이즈에 맞게 창업자의 리더십도 변화해야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창업 초기에는 비전을 설정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길을 이끌어 가야 한다. 중기에는 거대한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시장에 대한 이해력과 공격적인 마케팅 역량이 필요하다. 상장을 앞두고는 조직관리 역량, 재무 및 인사관리 역량이 중요하다. 즉, 큰 조직 경험과 관리 경험이 있는 노련한 관리형 CEO가 필요하다. 난 3년간 라인에서 계열사 3개를 이끌면서 국내외 인력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조직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해본 바 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대표 자리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 주위를 보면 VC 출신을 영입하여 더 큰 성장과 상장을 이룬 펄어비스,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표로 영입한 이석우 대표의 두나무(업비트)도 있다.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한 선택은 창업자의 몫이다.  



내가 잘하는 것 


1) 몰입과 적응 


LINE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기 전에는 난 블록체인 문외한이었다. 2018년 1월 블록체인에 빠진 이후 두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백서를 읽고 블록체인을 금융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을 썼다. 블록체인 관련 유튜브 방송도 1년 동안 매주 8편씩 2백 여 편을 찍었고, 토큰 이코노미 스터디 그룹(TES, Token Economy Study Group) 운영과 '토큰 이코노미' 책도 펴냈다. 장황하게 썼지만 난 새로운 기술에 대한 몰입과 적응이 상당히 빠르다.


LINE에서의 생활도 소규모 인원이 일하는 VC에서와는 다른 환경이어서 처음엔 생소했다. 한국-일본 간의 소통, 대기업에서 다양한 부서/이해관계자들과의 협업 등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빠르게 적응하였다. 커뮤니케이션의 소중함과 스몰 톡의 중요성을 느끼고 실천했던 시간이었다. 빠른 적응은 업무 성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매우 중요하다. LINE 입사 5개월 만에 암호화폐 LINK를 발행하였고 그 후 1개월 만에 상장시켰다.


어쩌면 제주에서 석 달 동안 쉰 것도 그다음 몰입을 하기 위한 비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비우면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그래, 쉴 만큼 쉬었다. 이젠 새로운 것을 빨아들이고 채울 시간이다. 그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


2) 조직관리 경험 


LINE에서 블록체인 컨설팅 조직 언블락, 암호화폐 발행/개발/사업을 담당하는 LINE Tech Plus에서 총괄 경험, 블록체인 투자법인인 Unblock Ventures에서 10여 개 국내외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회수해본 경험 등 다양한 사업 및 조직관리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일본의 조직원들과 함께 글로벌 사업을 처음부터 성장까지 이끌어본 경험이 있다. 또한, 보이스웨어에서 코스닥 상장기업 CFO로 4년간 재직하며 재무/회계 총괄 및 공시업무까지 수행해본 경험이 있다.


3) 유능한 인재 영입 경험 


LINE에서 새로운 조직 맡으며 처음부터 직원들을 채용하며 조직과 사업을 일구었다. 지금은 후임 대표가 된 김우석 대표를 대학교 4학년 때 발굴하여 성장을 지원하였고, 방역주 또한 라인에서 투자경험을 쌓고 스프링캠프에서 투자팀장으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20년에 걸친 VC 경험과 네트워크, 8년에 걸친 스타트업 방송 '쫄투: 쫄지말고 투자하라'에서 만난 많은 창업자들, 창업스쿨을 통해 교육한 수많은 예비창업자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만난 많은 개발자들 모두 나의 자산이다. 짧은 스타트업 '먼데이펍'을 통해서 앱도 개발해서 출시해본 경험도 있다. 그때도 개발자들을 내가 다 섭외해서 함께 작업했다.


피렌체 공화정 몸담고 있다 실각한 고위 외교관 출신 마키아벨리가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썼다는 '군주론'도 메디치 가문에 바쳐졌다. 마키아벨리와 나를 견줄 순 없지만 그런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단순하게 이력서 올리는 것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부담 없이 모든 연락수단을 통해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P.S.

이 글 덕분에 여러 곳에서 영입 제안이 왔고 난 2021.08.02일부터 OGQ라는 스타트업에서 공동대표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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