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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십이page Mar 24. 2023

정영인

우리 아빠도 마음공부를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첫째 아이 학부모 가족들과 경주로 여행 가기로 한 날 엄마한테서 전화 왔다.

"느그 아빠 희귀병이란다. 폐가 굳어가는..근데 약만 먹으면 폐 굳는 거 늦출 수 있단다.."

"...엄마..지금 바로 부산으로 갈게요.."

전화 끊자마자 신랑한테 이 사실을 얘기하고 같이 여행 가기로 한 학부모께 사정을 얘기한 후 부산 친정집으로 바로 출발했다. 아빠랑 평소 친하지 않았는데(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님..사실 좋아하지 않았음..) 이상하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희귀병..폐가  굳어가는..어떡하지..우리 아빠..'

초동안 멘붕이 와서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이 반짝이면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가..

어렸을 적부터 비염 때문에 냄새를 잘 못 맡았는데 성인이 된 후 비타민C를 알면서 냄새라는 걸 맡길 시작 했고, 비타민C 전도사가 될 정도로 찬양한 나다. 나도 매일 비타민C를 먹고 있으니 아빠도 폐가 굳는 걸 늦춰주는 약을 비타민C 같은 영양제라 생각하고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친정 집에 문 열고 들어가니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에 풀이 죽어 있는 아빠 모습을 봤다.

"아빠, 나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평생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나는 매일 비타민C 영양제를 하루도 안 빼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요. 아빠 건강을 위해 영양제 하나 더 늘어났다 생각하면 돼요."

"맞네.  말이 맞네. 어. 어. 비타민C라 생각하고 잘 챙겨 먹으면 되네"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초긍정적인 마인드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2년이 흘러 이번엔 아빠의 심장이 말썽을 부렸다.

"심장 수술을 당장 하지 않으면 갑자기 죽을 수 있댄다."

아빠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곤 내심 수술을 당장 하길 원하셨다.

우리 4남매는 당장 수술하는 걸 반대했으나 아빠가 너무 원하셔서 결국 심장 수술을 하게 되었다.

2020년11월 심장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큰 수술인데도 불구하고 수술 다음날부터 의사가 조금씩 걸으라고 해서 걷기도 했다.

평생 책임감이나 성실함을 본 적 없던 아빠인데 아빠의 병원생활은 모범적이었다. 그렇게 퇴원을 하시고 2021년 1월 22일 아빠 생신을 맞아 언니가 있는 대구에서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아빠, 엄마는 부산에서 살고 계셔서 아빠가 운전해서 오기로 했는데 저녁이 되어도 오질 않으셔서 엄마께 전화를 드리니 아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못 오시겠다고 하셨다. 아침에 내려오라고 하셔서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마자 부산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순간에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침대 끝에 걸터앉은 아빠께 달려가 어디가 안 좋냐고 물으니

"이제 안 되겠다..."

힘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다음 날 바로  수술이 들어갔고  첫 심장 수술 후 2번이나 재수술을 했다. 여동생은 경기도에 살고, 언니는 대구에 살며 직장 다니고 있어 울산에 살고 전업주부인 내가 아빠의 간병을 도울 수 있었다.

폐기능을 너무 상실해 앞으로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넋 놓고만 있을 수 없어 그날부터 "아빠 살리기" 나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둘째 아이를 등원차량에 태우자마자 차로 1시간을 달려 아빠가 계시는 병원으로 가서 긍정적인 말로 동기부여를 시켜드렸다.

아빠 병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달력 뒤에  큰 글씨로 세 문장을  써놓고 아빠께 매일 큰소리로 말해라고 했다.

나는 폐가 완전히 건강해졌다.
나는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감사합니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병실에 오실 때마다 달력을 보시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며 돌아가시곤 했다.

어느 날 오빠가 아빠를 간병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가족들 덕분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셨다고 했다.

너무 누워있으면 안 좋으니 걸어보시라고 했고 심지어 몇 걸음 걷기도 하셨다.

'진짜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인정해 주면 정말 안 되는 게 없구나. 마음공부가 다 구나. 죽음조차도 이겨낼 수가 있구나!'

진짜 너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루를 못 넘기실 것 같다고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밤새도록 아빠 곁에서 아빠 다리를 주무리고 늘 깨끗하셨던 분이라 허옇게 쌓여있는 발각질도 깨끗하게 없앴다.

그날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죽음도 극복할 수 있구나 잠시나마 자만했다.


그렇게 3일이 흘러 금요일 저녁, 여느 때와 같이 아빠를 간호하고 있는데 누워만 계시던 아빠가 갑자기 벌떡 앉으시더니 커다랗게 눈을 뜨시곤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폐가 완전히 건강해졌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다.
감사합니다!

"이봐라, 숨도 이렇게 잘 쉬어진다. 이제는 완전히 다 나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한 순간에 아빠의 건강하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꿈만 같았다. 40분을 쉴 새 없이 말씀을 하셨고,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 이제는 좀 쉬시라고 하고 나도 간호하는 몇 달 동안 처음으로 눈을 붙였다. 날이 밝아 오빠와 교대하고 울산으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고 그 느낌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21년 3월 15일 AM 1:1 아빠는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예전에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까? 눈물은 나올까?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한 번씩  병원에서  호출하면 급하게 달려가곤 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우리 4남매는 어린아이마냥 펑펑 울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죽음이 끝이 아닌 걸 알지만 우리 아빠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4남매는 아빠 영정 앞에 앉아 울기만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다 지쳐 앉아있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 화면이 켜져서 열어보니 운세어플에서의 알림이었다.


가끔씩 보던 운세 어플에 아빠가 수술한 이후부터 아빠 사주를 넣어 매일 확인하곤 했었는데  돌아가신 다음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운세 100점이 나왔다...,......

아빠는 행복하다고..괜찮다고...아빠의 메시지가 아닐까...

"아빠! 이제는 아프지 말고 거기서 아빠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한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서 더 행복하게 사세요.

아빠!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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