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장사도 못하고 있고 언제 뜰지 모르는 모집 공고를 집에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나날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엄마도 출근을 하고 동생도 출근을 하고 여자 친구도 출근을 하는 데 나만 집에 혼자 머무르는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겨울에 고생했고 지금은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날이 풀릴 때까지는 마음 편히 쉬며 충전의 시간을 가지라는 가족과 여자 친구의 격려 섞인 말은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케이터링도 지난 한 건이 전부였고... 빨리 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하루는 부천시장에게 푸드트럭 활성화를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경기도 정책사업으로 청년 푸드트럭 창업이 각 시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부천에서도 운영 계획이 있다면 조속히 진행해달라는 요지의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나는 준비가 다 되어있으니 다른 경기 지역에 뒤처지지 말고 어서 나를 부천시 1호 청년 푸드트럭으로 삼아서 시 홍보도 하시라며 어필을 했다.
손톱을 물어뜯어가며 조급한 마음과 절절한 심정으로 보낸 편지가 잘 전달이 됐는지 며칠 후 시청 담당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담당 직원은 올해 두 군데서 푸드트럭 존을 유치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중 한 곳인 소사동의 국민체육센터에서는 곧 모집을 시작할 거고, 또 한 곳은 정확한 시기와 장소는 아직 미정이지만 상반기 중에 부천 내 공원들 중 한 곳을 선정해서 모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두 곳 중 공원이 조금 더 솔깃했지만 체육센터도 느낌만으로는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어떤 곳인지 모르니 직접 눈으로 보면 마음을 정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 곧바로 현장 답사를 나가 보기로 했다. 창밖엔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남는 게 시간인 데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비니를 눌러쓰고 두툼한 점퍼로 무장을 하고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소사 국민체육센터까지 가는 71번 버스에 올랐다. 가는 동안 창가 뒤쪽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핸드폰으로 체육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체육센터에선 수영장과 헬스장을 메인으로 운영하고 있고, 어린이 발레, 댄스 스포츠, 에어로빅 등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개가 실려 있었다. 이용 인원만 많다면 장사하기엔 괜찮은 곳 같아 보였다.
30분이 조금 넘게 걸려 체육센터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체육센터는 작지는 않지만 또 크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규모였다. 주차장도 그리 넓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또 이용하는지 썩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세한 건 안으로 들어가 직접 두 눈으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센터에 들어가기 전 우선 주변 답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체육센터 맞은편에는 산책이 주목적으로 보이는 작은 공원이 있었고, 뒤로는 아파트와 주택 단지가 있었다. 대로변을 따라서는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등하교 시간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분식, 저녁에는 주민들을 위한 야식과 간식, 그리고 체육센터 이용자들을 위한 간식, 건강식, 건강음료를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 보지는 않았지만 분식집이나 카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장사를 시작한다면 주변에 이렇다 할 경쟁업체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될 것 같았다.
만족스러운 주변 조사를 끝내고 센터 안으로 들어가 시설을 둘러봤다. 수영장은 홈페이지의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실제로 보니 동네 수영장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큰 규모였다. 수영장이 가득 찬다면 매출을 올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파악할 수 없었다.
수영장을 다 둘러보고는 헬스장을 찾았다. 헬스장은 수영장에 비해 매우 초라한 수준이었고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할머니 할아버지 네 다섯 분 정도가 운동 기구를 사용 중이셨는데 저녁이 된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과연 이곳에서 운동을 할지는 의문이었다. 헬스장을 나와 다른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공간들을 살펴봤지만 이곳들 역시 공간도 협소하고 소규모로 운영되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이 체육센터는 수영장 외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체육센터의 시설들을 다 둘러본 후 안내데스크를 찾아가 평균적인 방문 인원 수와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인원은 프로그램과 요일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지만 대체로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고, 초등학생과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 주 이용객이라고 했다. 정확한 수치를 알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센터 관리자를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관리자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푸드트럭 영업 준비를 하고 있으며 모집 공고에 지원하기 전 현장 답사 차원으로 센터를 방문하게 됐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작년 말에도 모집 공고를 냈었는데 1차 순위 모집 대상인 청년과 취약계층 지원자가 없어서 이번에 재공고를 내게 됐다며 나의 방문을 반가워하셨다. 그리고 지난번 모집 공고 서류를 가져와 보여 주시며 계약을 하게 되면 3년 동안 영업권이 보장되고, 연간 장소 사용료는 백만 원가량으로 전기지원까지 가능하니 좋은 조건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게다가 센터 앞은 학생들의 등굣길이어서 장사도 괜찮게 될 거라며 꼭 지원해서 다시 보자고 말씀하셨다.
관리자 아저씨와 얘기를 마치고 센터를 나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전반적인 조건과 주변 환경은 좋아 보였다. 그런데 마음에 확 와 닿는 무언가가 없었다. 타겟층이 10대 초반과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으로 나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수영장 외에는 이용객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염려가 선뜻 지원을 결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까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몇 분만 조용히 운동을 하고 계셨는데... 주 이용객이 노년층이면 장사가 과연 될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센터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고민을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한 정황으로 메뉴와 가격을 구성한다면 2천 원 미만의 상품을 박리다매해야 손님을 끌어오고 매출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하지 않는 이상 저가 상품으로 박리다매하는 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예술의 전당에서와 같은 매출을 기대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정류장에 도착해서 센터 주변을 둘러봤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거리가 무척이나 한산하고 휑한 게 또 마음에 걸렸다. 구매력이 있는 유동인구가 있고 장사하기 괜찮은 곳이라면 거리에 붕어빵이나 어묵을 파는 노점상 하나 정도는 있을 법한데 아무것도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장점이 많은 곳이지만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러 상황을 저울질해가며 고심을 했다.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번 기회를 포기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모양새였다. 공원 장소가 예정이 되어 있다고 했지만 시기와 장소가 미정이었고, 계획이 변경되거나 취소된다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8월에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그전에 계약을 체결해야 창업 자금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결혼식과 신혼여행, 그리고 신혼 준비를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체육센터 모집 공고에 지원해서 계약을 하고, 창업 자금 대출을 받고, 결혼 준비를 하더라도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고민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며칠을 더 고민을 고민한 끝에 체육센터에는 지원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힘든 결정이었다. 다음 기회 때까지 또 다시 초조함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겠지만, 나중에 나오게 될 공원 자리에 지원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천 내 공원들이라면 그 어디라도 작은 규모는 아니었고, 공원이라는 특성상 전연령층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니 체육센터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뭐, 정답이 없으니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일단 지금은 마음이 끌리지 않으니
더 나은 가능성에 배팅을 하는 수밖에...
체육센터 답사 이후에도 한 동안을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푸드트럭 제작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업체 대표님이 이제는 사단법인 푸드트럭 협회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세워서 푸드트럭 행사 섭외 등의 일을 하고 있는데, 4월 초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벚꽃축제에 참가할 푸드트럭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라며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오신 거다. 고민할 게 뭐가 있겠나. 빛의 속도로 참가하겠다고 대답하고 축제에 어울리는 메뉴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 다음 일정이 결정되자 멈춰 있던 엔진이 다시 가동된 듯한 느낌이었다. 통화 말미에 겨울 동안 매출이 크지 않아 힘들었을 텐데 이제부터 푸드트럭의 계절이니 연말까지 축제와 행사로 달릴 일만 남았다는 대표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공원 계약을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닥치는 대로 행사와 축제에 참여해서 돈을 벌어두면 결혼 준비까지는 얼추 해결되겠다는 희망이 다시 샘솟았다.
우울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니 다시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축제를 마쿤 키친카페의 본격적인 출발지점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축제에 참여하기 전에 푸드트럭을 새롭게 도색을 하고 겨울에 만들었던 마쿤키친카페 로고를 붙이고 장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트럭은 이미 귀여운 민트색이기 때문에 도색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기존에 업체에서 붙였던 로고를 떼고 내가 만든 로고만 붙여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부터 생활관 침상에 누워서 그려왔던 푸드트럭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완성 짓고 싶었다. 벚꽃 축제를 마쿤 키친카페의 본격적인 출발지점으로 삼았으니 꼭 새단장을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곧바로 트럭 도색을 위해 최대한 저렴하고 실력 있는 도색 전문 카센터를 찾았다. 도색 비용이 저렴하다고는 해도 1톤 트럭의 전체를 도색하는 거였기 때문에 상당한 금전적 출혈은 각오했어야 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구체적인 비용에 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카센터 한 켠의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벽 중앙에 모교 이름이 적힌 달력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흔한 교회 달력도 아니고 신학대학교인 모교 달력이 카센터에 걸려 있는 게 조금 신기했다. 잠시 후 사장님이 들어오셔서 인사를 나누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교와 관계가 있는 분이신지를 물었다. 사장님은 모교 졸업생이시라며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아직 목회는 하지 않고 있고, 아버지 몸이 편찮으셔서 지금은 잠시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선후배의 만남에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고 사장님, 아니 선배님은 내가 푸드트럭을 하게 된 사정을 들으시더니 도색 비용을 할인해 주셨다. 할인을 받기 위해 학연을 얘기한 건 아닌데... 어쨌든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었다.
도색을 맡기고 일주일이 지났다. 푸드트럭은 부탁했던 대로 펄이 들어가 전체가 번쩍이는 고급스러운 버건디 색상으로 옷을 갈아 입어 새 차인 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레퍼런스 한 외제차의 색을 그대로 따 온 듯 흠잡을 데 없이 예쁜 모습에 마음이 설렜다. 선배님께 도색이 정말 잘 된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겨울에 사서 다 쓰지 못한 원두를 선물로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무리 변신을 하기로 했다.
집에 오자마자 며칠 전 집 앞 인쇄소에서 미리 출력해 둔 마쿠니 로고와 배너 스티커를 동생과 함께 트럭 옆면과 뒷면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스티커 사이즈가 생각보다 작아서 당황하기도 하고, 스티커 안으로 살짝 기포가 들어간 게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새롭게 단장을 마친 트럭을 보니 이제 정말 내 푸드트럭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많이 기다리고 있었어.
나의 마쿤 키친카페야.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