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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Oct 07. 2019

EP 7. 어쩔 수 없는 일들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어느덧 2월이 되었고 예술의 전당 아이스링크에서의 영업이 끝났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잘 버텼다. 첫 장사였지만 제법 잘 꾸려왔다.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용케 잘 헤쳐 나갔다. 그런 나를 위로라도 해주듯 매출 장부엔 만 2개월 동안 천삼백만 원이 조금 못 미치는 매출 기록이 나를 토닥여줬다. 역시 장사를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장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슨 수로 2개월 만에 이런 큰돈을 벌어 볼 수 있었을까. 뿌듯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뛰었다.


총매출을 확인하고 나서 이번엔 지출 내역들을 확인했다. 얼마만큼의 순수익을 올렸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수수료, 재료비, 장비 구매비용, 아르바이트 비용 등의 지출 내역을 총매출에서 하나 둘 빼 나갔다. 뿌듯함으로 뛰었던 가슴이 빠른 속도로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착잡한 마음으로 변해 버렸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순수익은 아니었지만 매출에 비해서 한 없이 초라한 성적표였다. 매출이 아무리 잘 나와도 순수익이 적으면 장사를 잘했다고 할 수 없다는 걸 몸소 배운 순간이었다.


쯧! 절로 혀를 차게 만드는 결과였지만 어쩔 수 없지. 장사를 시작하며 배운 수업료였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으로 장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했으니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높은 수수료가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그 점도 고려해서 순수익을 계산하지 못한 건, 내 불찰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예술의 전당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몹시도 춥고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던 겨울 장사를 함께 한 사장님들과 헤어지는 날이 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얼굴을 보며 서로의 매출을 걱정해주다 보니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같이 재미있게 장사하자고, 대박 나시길 바란다며 이별의 아쉬움과 응원의 말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짐 정리가 끝난 사장님들이 하나 둘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뒤뚱 거리며 가는 트럭의 뒷모습이 집시 마차를 떠 올리게 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두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정리가 오래 걸리는 바람에 제일 마지막으로 떠나게 됐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예술의 전당과 마쿠니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하고 서둘러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아뿔싸! 배터리가 방전됐다. 틈틈이 시동을 걸었었는데. 다른 사장님들은 잘만 출발했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쳇.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러서 배터리를 충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방전이 너무 오래돼 있어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쯧! 어쩔 수 없지 뭐. 또 수업료를 내는 수밖에.



앞으로의 장사가
수업료만큼의
값어치를 하길 바라면서.
출처 https://m.blog.naver.com/ooriri4/220616322806







봄을 기다리며 강제 휴식을 했다.

마음 같아선 쉬지 않고 바로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마땅치 않았다. 노점 영업을 하려 해도 가스 설비가 안 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300만 원이 넘는 발전기를 사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그리고 여전히 장사하기 어려운 추운 겨울이었다. 일단은 벌어둔 게 있으니 날이 풀릴 때까지는 앞으로의 장사를 위한 준비와 (강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쉬는 동안 푸드트럭 모집 공고를 확인했다. 몇 군데 모집이 진행 중인 곳이 있었지만 집에서 한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매일 출퇴근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조급한 마음에 지원했다가 덜컥 당첨이라도 되면 다른 곳에 지원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쉽사리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부천도 올해 두 곳에서 푸드트럭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던지라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모집 공고를 기다리며 쉬는 동안 앞으로의 영업에 대한 구상을 했다. 대다수의 푸드트럭은 합법적인 고정 영업장소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영업 허가가 나는 장소가 워낙 적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지역 상권과의 마찰을 고려한다는 취지에서 인적이 드문 외진 곳으로 영업 허가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보통은 노점 영업이나 축제와 케이터링 영업을 통해 수입을 내는 게 일반이었다.


나도 영업장소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케이터링 영업을 시작 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푸드트럭 모집 공고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일단은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마군 카페를 하며 커피와 음료를 팔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러니 추가로 쿠키, 샌드위치, 과일 도시락 등의 사이드 메뉴만 기획하면 됐기에 상품 구성과 가격 책정을 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품 구성은 모든 카페 메뉴를 이용할 수 있는 ‘마쿤 베이직’, 간식 등의 사이드 메뉴만 이용할 수 있는 ‘마쿤 프레젠트’, 카페 메뉴와 사이드 메뉴를 함께 이용하는 ‘마쿤 스페셜’로 정했다. 그리고 케이터링 최소 보증 인원은 100인으로 잡았다. 그래야 베이직 메뉴를 정해도 하루 수입을 보장받고 영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 운영시간은 5시간, 오버타임 1시간당 3만 원의 추가 요금을 정할 필요도 있었다. 출장비는 내가 사는 부천은 무료, 서울 1만 원, 경기 3만 원의 요금도 받기로 했다.


케이터링 운영안을 기획하면서 오버타임 요금이나 출장비용은 의뢰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양보하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중에 케이터링 한 건을 잡아 보겠다고 욕심을 낸 나머지 500 명 이상이 이용할 거라는 의뢰인의 말만 믿고 보증 인원에 대한 계약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오버타임 추가 요금, 출장비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케이터링을 나갔다가 쫄딱 말아먹은 후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재료비, 기름값, 인건비 빼면
많이 남지도 않습니다.

- 전직 푸드트럭 종사자 마쿤이 -



케이터링 준비가 끝나고 얼마 안 돼서 첫 의뢰가 들어왔다. 2월 28일 ~ 3월 1일, 2박 3일간 횡성의 한 콘도에서 세미나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이틀간 쉬는 시간과 아침저녁으로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원두와 생수는 의뢰한 곳에서 제공하고 묵을 수 있는 숙소까지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요금은 70만 원. 다과비와 기름 값을 빼더라도 인건비가 후하게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의뢰를 수락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세미나 중간에 쉬는 시간에 사람이 몰릴 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술의 전당에서 일을 도와준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친구도 시간이 되어 함께 하기로 했다.


케이터링을 위해 친구와 함께 휘몰아치는 눈발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횡성으로 향했다. 초보 운전에, 눈길에, 서리가 낀 앞유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라 사고가 날 뻔도 했지만 다행히 살아서(진짜 죽을 뻔했다) 콘도에 도착했다. 의뢰인은 눈도 오고 날도 추우니 가능하면 실내 강당 앞에서 케이터링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장비를 모두 빼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기지만 추위에 덜덜 떨며 커피를 내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겠다 하고 세미나가 열리는 강당 앞에 장비들을 세팅했다. 전문 업체에서 하는 케이터링 사진을 봤을 때는 꽤나 근사해서 흉내를 내봤는데 내가 펼쳐 놓은 모습은 초라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처음이니까. 그래도 케이터링 서비스는 큰 어려움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의뢰인은 만족하셨는지 다음 행사가 있을 때 또 이용하겠다고 말해 주셨다.


첫 케이터링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처음 치고는 무사히 잘 해낸 것 같아서 뿌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무모하게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이 불쑥 찾아왔다. 푸드트럭도 케이터링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을 받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을 오랜 준비 없이 저지르고만 있는 건 아닐까, 큰 사고 없이 해내고는 있지만 앞으로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찾아온 것이다.


잘 마무리된 것에 대한 만족과 안도는 있었지만 선배나 동료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혼자서 해결하고 준비해 나가니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지, 잘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푸드트럭이나 케이터링 관련 업계에서 몇 달만 일했어도 이렇게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늘 일을 다 벌린 후에 찾아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이미 저질러진 일인걸. 불안하지만 잘해나가는 수밖에.



늘 걱정을 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어느새 또 일을 저지르고 있는
내가 있다.

그리고 늘 걱정하고 불안해 하지만
생각보다 잘 헤쳐 나단다.

어쩌면 걱정과 불안은
일을 저지르지만
‘폭주하지는 말라’고
스스로에게 거는
안전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란 말로
쉽게 풀리는.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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