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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Oct 03. 2019

EP 6. 겨울을 지나며 쓰는 일기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2015년 12월 31일 - 2016년 1월 1일.


2015년 12월 3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여는 제야음악회와 신년맞이 불꽃놀이 행사가 있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에 넉넉하게 재료 준비도 하고 동생에게 도움도 요청했다. 낮에는 손님들 보다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광장이 북적였고, 저녁이 되면서부터야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들며 손님으로 이어졌다.


밀려드는 주문을 받고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다 보니 어느샌가 셀 수 없는 인파가 푸드트럭 주위를 가득 둘러싸고 빼곡하게 광장을 채웠다. 대박이었다. 계속해서 쉴 새 없이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최단 시간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뿌듯했다.


한참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이 가까워오자 밀려들던 주문이 뜸해졌다. 그리고 2016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설렘이 가득한 광장의 사람들은 힘찬 목소리로 새로운 해를 환영하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5,4,3,2,1.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함성과 함께 새해 소망을 담은 풍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동시에 오페라 하우스 위로는 색색의 조명과 화려한 불꽃들이 웅장한 클래식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커피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밤하늘에 펼쳐지는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근사한 2016년의 시작이다.



2016년 1월 1일

집에 오니 새벽 3시가 넘었고 동생은 출근을 위해 바로 잠들었다. 어제의 매출을 정산하다가 피곤에 지쳐 잠든 동생의 얼굴을 바라봤다. 동생은 어제도 카페에서 오픈 근무를 하고는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서 밤새 푸드트럭 일을 도와줬다.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 불평도 군말도 없이 함께 해줬다. 장사를 시작한 후로 동생은 거의 항상,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푸드트럭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나를 트럭 바닥에 깔아 둔 전기장판에 잠깐 누워 몸을 녹이게 하고는 가게를 봐줬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번갈아 들며 마음이 이상해졌다.


가족의 경제적 책임을 다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동생에게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보며 높은 매출을 올려서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 화려한 불꽃은 결국 뿌연 연기와 함께 모두 사라지지 않았나. 하아, 내가 하는 일도 그렇게 되진 않을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피곤한 동생 대신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2016년 1월의 초입, 마쿠니와의 만남.

푸드트럭 뒤편으로 길냥이가 나타났다.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온 건지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일광욕을 하러 온 건지는 모르겠다. 얼룩 한 회갈색과 흰 털이 조화를 이룬 새침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손을 내밀어 야옹하며 녀석을 불렀다. 녀석은 멀찌감치 가만히 서서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넌 뭐냐 하고 묻는 듯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우유를 적당히 미지근하게 데워 녀석이 먹기 좋은 곳에 두고 자리를 비켜줬다. 그러자 녀석은 조심히 걸음을 떼고 다가와 할짝거리며 우유를 마셨다.


집중해서 우유를 마시고 있는 녀석을 보니 밥은 먹고 나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마침 손님도 없던 터라 가게 문을 잠시 닫고 편의점에 달려가 통조림을 사 왔다. 이번엔 물과 함께 통조림을 준비해 주었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코를 박고는 허겁지겁 통조림을 먹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 날부로 나를 집사로 임명해준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는 매일 찾아와 통조림과 우유를 먹고 갔으니 말이다. 집사로 임명 된 기념으로 나도 녀석에게 내 별명인 ‘마쿤’을 따서 ‘마쿠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기온도 심하게 떨어지는 날이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커피 머신이 얼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커피 머신보다 마쿠니가 더 걱정이 됐다. 그래서 녹색 플라스틱 우유 박스에 빨간 담요를 두르고 사료까지 넣어서 마쿠니가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 따듯하진 않더라도 찬 바람은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쉼터는 마쿠니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내가 트럭에 머물 때나 머물지 않을 때에도 마쿠니는 허름한 쉼터로 놀러 와 쉬며 나와의 경계를 더 좁혀 주었다.


주위 사장님들이 ‘사장님네 고양이 왔어요’하고 말할 정도로 마쿠니와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녀석은 쓰다듬는 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은 폴짝 뛰어올라 트럭 안을 빙 돌며 살피고 가기도 하고, 녀석이 온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는 트럭 옆의 쪽문을 긁으며 ‘내가 왔으니 어서 밥을 내 와라 닝겐’하고 날 불러 내기도 했으면서 말이다. 자기가 원할 때는 와서 몸을 부비고 가기도 하면서 정작 내가 만지려고 하면 몸을 내뺐다. 정말 밀당의 고수가 아닐 수 없다. 칫!


매력덩어리 마쿠니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한결같은 새침한 눈빛으로 인사해주는 마쿠니가 참 좋았다. 마쿠니를 데려가서 키울 수는 없더라도 푸드트럭의 마스코트로 삼아서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쿠니의 얼굴을 노트에 스케치했다. 커피 장사를 해보니 커피 메뉴는 계속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군대에서 처음 생각했던 ‘마군 식당’과 ‘마쿤 카페’를 합친 ‘마쿤 키친 카페’라고 이름을 지은 뒤 거기에 맞게 마쿠니 로고를 만들기로 했다.


마쿠니의 얼굴을 커피 잔으로 표현하고 머리에선 열이 올라오는 모양을 형상화했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모를 수 있을 사람들을 위해 꼬리로 원두를 감싸 쥐고 있는 모양으로 다시 한번 커피 잔임을 강조했다. 마쿠니 주위로는 포크, 스푼, 나이프 이미지를 추가해서 요리도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스케치를 거치니 제법 괜찮은 느낌의 로고가 만들어졌다. 스케치가 끝난 그림은 일러스트 작업을 위해 지인 디자이너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로고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로고는 당장에라도 출력해서 차에 붙이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에서의 영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푸드트럭 제작 업체의 로고를 붙이고 장사해야 한다. 마쿠니야 조금만 기다려. 항상 잊지 않고 같이 다닐게!







푸드트럭을 제작해준 업체 대표님의 소개로  여성동아 2016년 1월호에 내 이야기가 실리게 됐다.

<2016은 ‘시작’입니다>라는 제목의 새로운 인생 항해를 떠나는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였다.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의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의 청년들이 소개되었고 잡지에는 내가 제일 먼저 나왔다. 누군가 SNS나 블로그에 해쉬태그를 달아서 푸드트럭을 소개해 주기만 해도 신나고 신기했는데 유명한 잡지에 내 얼굴과 이야기가 실린다고 하니 부끄러우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매출도 잘 나오고 잡지에도 소개되다니. 앞으로의 장사는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어려움과 우여곡절 끝에 장사를 시작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기대 이상의 괜찮은 출발이었다. 이 기세면 봄에는 추가 개조도 마무리하고 제대로 모습을 갖춰서 내가 하고 싶은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연말에는 학자금 대출도 다 갚고 부채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도 걱정 없이 치르고 괜찮은 전셋집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품었다.


기사의 제목처럼 이제 진짜 시작이다.



새로운 인생 항해가
지금처럼 순항했으면 좋겠다.

제발.



http://woman.donga.com/3/all/12/357155/1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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