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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Sep 30. 2019

EP 5. 마쿤 카페 영업 개시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허둥지둥. 허겁지겁.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영업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커피와 음료를 만드는데 필요한 장비와 재료를 구매하고. 원두, 우유, 과일청, 시럽과 파우더, 일회용품 등 자주 이용하는 것들은 주거래처를 두어 거래를 시작했다. 여자 친구, 여동생과 함께 카페 느낌이 나도록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색색의 분필로 적는 (귀찮은) 메뉴판도 만들었다. 지금은 금고처럼 쓰고 있는 새파랗고 귀여운 캐시 박스도 장만했다. 고집했던 커피 맛은 훌륭했고 전자동 커피머신은 기대 이상이었다. 위생교육, 사업자 등록, 영업신고도 모두 마쳤다.


드디어 ‘마쿤 카페’가 시작된 것이다.
마쿤카페 메뉴판을 적어주는 전 여친, 현 아내 :)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던 첫 손님을 받았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을 맞이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돌았다. 내가 사장이 되어 맞게 되는 첫 손님이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껏 잡아당긴 입꼬리와 상냥한 말투가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손님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몸을 돌려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 투샷 추출 버튼을 눌렀다. 90도로 설정해둔 보온 통에서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따르고 컵홀더를 미리 끼웠다. 손님과 대화라도 한 마디 섞으면 좋았겠지만 아직은 입이 풀리지 않아 샷이 모두 나올 때까지 커피 머신을  노려보며 숨 죽이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추출이 끝난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종이컵에 그대로 옮겨 부은 후 뚜껑을 닫아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는 인사와 함께 완성된 커피를 손님에게 건넸다. 나 스스로 어색해한 것 말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좋은 출발이었다.


그런데, 출발만 좋았다. 커피 머신 두 대가 과연 필요했던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다음 손님이 오기까지의 텀이 너무 길었다. 기분 탓이 아니라 몇 시간이나 훌쩍 지난 후에 또 한 손님을 받았으니 정말 손님이 없었던 거다. 예술의 전당에서의 공연은 주로 늦은 오후와 저녁 시간, 주말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평일의 낮은 무척이나 한가로웠다. 아이스링크도 아직은 학생들이 방학하기 전이어서 그런지 커다란 반사판처럼 12월의 햇빛을 머금은 채로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예술의 전당 시계탑 광장에는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푸드트럭들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없어서 크게 의기소침해지거나 낙담하지는 않았다. 장사를 시작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는 해도 이제 막 출범한 카페 트럭을 앞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꾸려 나갈지 생각하다 보니 아직은 설레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렘 가득했던 첫날은 5만 원이 조금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문을 닫았다.


손님도 없구 춥기도 해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곰히 내밀고 바람을 피하며.


이튿 날이 되었다. 오늘은 손님이 많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한가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위치만 잡았어도 공연 일정 탓이나 아이스링크에 사람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않았을 텐데 하는 불평과 조바심, 이렇게 망해가는 건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기다려 보는 수밖에. 드문 드문 오는 반가운 손님들을 받고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찌뿌둥해지면 트럭에서 어슬렁 기어 나와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서성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사장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손님이 너무 없어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고 있거나 트럭에서 나와 주위를 어슬렁댔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씁쓸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말엔 공연 보러 오는 사람도 많아질 거고 곧 학생들이 방학을 하면 바빠질 테니 지금은 여유를 즐기자는 말로 애써 초조한 마음을 감추었다.








푸드트럭 영업시간은 오전 10:00부터 저녁 10:30까지이고 쉬는 날은 없었다. 부천의 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는 90분 가까이 걸렸는데 혼자서 이 스케줄을 일주일 내내 세 달이나 돌리려니 몸에 무리가 오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루 종일 추위와 싸우며 하는 장사는 체력 소모가 여간 심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장시간의 출퇴근으로 피로가 누적이 되니. 어우, 계속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 같았다.


그래서 평일 매출이 10만 원을 넘은 후에는 내 건강과 워라벨은 내가 챙기자며 가장 한가한 월화 이틀 동안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일을 도와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매출에 비해서는 과분한 결정이었지만 덕분에 크게 아픈 일 없이 무사히 세 달 간의 영업을 해낼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도움준 이들 : 알바몬 윤서씨, 동생 효진이, 친구 진호





매출 부진에 시름하던 푸드트럭 사장님들의 초조하고도 간절했던 바람은 다행히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마쿤 카페는 어느 순간엔가 매출 2위의  푸드트럭이 되어 있었다. 주말이 되자 이른 오후부터 시작되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공연 시작 전과 쉬어가는 인터벌 시간에 커피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며 갑자기 손님 부자가 된 것이다. 와,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렇게 줄을 서 주시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공연장 안에도 카페가 하나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사람이 워낙 몰리는 상황이고 카페 트럭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밖으로 나와서 커피를 찾은 거였지만. 히힛.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말고도 주말이 되어 아이스링크를 찾은 가족 손님들 역시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커피와 음료를 찾았다. 덕분에 주말 매출은 평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한 후로는 평일 낮 시간에도 제법 매출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엔 점차 여유가 생기고 장사에 자신감이 붙어 갔다. 장사하는 맛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계속 이렇게만 풀린다면 2년 정도면 여자 친구에게 빌린 돈도 갚고 학자금도 갚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럽고 치사한 청년 창업 지원자금 같은 건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다른 푸드트럭들도 애타게 기다리던 손님을 맞이하고 매출 부진에서 벗어나게 되자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푸드트럭 중에서도 어묵 트럭 사장님은 다섯 대의 트럭 중 최고 매출을 찍으며 알바생까지 고용해야 할 정도로 바빠져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이색적이고 솔깃한 메뉴들이 많아도 시즌별로 환영받는 메뉴는 정해져 있나 보다. 커피가 잘 팔린다고 해도 어묵 매출과의 차이는  항상 1.5 ~ 2배 이상 났으니 말이다. 그 조그만 0.5톤 라보 트럭으로 하루 100만 원 이상의 매출이라니. 나도 내년엔 커피와 어묵을 같이 팔아야지 하는 수줍은 다짐을 했다.



넘사벽의 어묵 매출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마쿤 카페도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장사도 몸에 익고, 매출도 잘 나와주는 만족스러운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여유 따위 부릴 형편이 아닐 텐데’,라고 비아냥대듯이 큰 문제가 불쑥 찾아왔다. 바로 겨울이었다. 심지어 점점 더 추워지고 있는 매서운 겨울이 불청객으로 찾아온 거다. 엄밀히 말하면 겨울은 예정된 손님이었기에 내가 맞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지금까지는 장사를 하는 것만 생각을 했지, ‘겨울철 장사’를 준비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따듯하게 입고 난로 하나 놓으면 겨울을 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하로 떨어진 추위에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양손은 점퍼에 찔러 넣은 채 출근한 쌀쌀한 아침, 장사 준비를 위해 트럭에 올라갔는데 한기가 느껴졌다. 기분으로 느낀 한기가 아닌 온몸으로 느낀 진짜 한기였다. 트럭 실내는 영하의 바깥 온도와 다를 바 없었고 체감상으로는 바깥보다 더 춥다고 느껴졌다. 전날 영업을 마치고 트럭에 넣어둔 생수와 우유, 심지어 과일청까지 얼어 버렸으니 트럭은 냉동 창고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커피 머신까지도 얼어버렸는지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커피 머신이 이대로 사망한 거면 정말 큰 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잠시 헤매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커피 머신을 녹이면 해결이 될까 하고 보온 통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보온 통 안에 들어있던 물은 열기가 사라지긴 했지만 얼지는 않은 상태였다. 서둘러 보온 통의 전원을 올리고 최고 온도로 다이얼을 설정했다. 잠시 후 물이 끓고 보온 통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구름처럼 트럭 천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곧바로 수건을 뜨거운 물에 적셔 커피 머신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온찜질해주듯 감싸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고 얼어붙어 있던 커피 머신의 한기가 어느 정도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다시 커피 전원을 켰다. ‘촤르르—’ 원두를 갈며 예쁜 소리만 내던 커피머신은 각혈을 하듯이 ‘끼기긱- 기기-기긱- 철컥 처얼커억- 우우웅’하는 처음 듣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잃었던 정신을 차렸다. 천만다행이었다.


커피 머신아
살아줘서 고마워
내가 앞으로 잘할게
ㅠㅅㅠ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런 추위가 내일도 모레도 반복되면 커피 머신이 완전히 망가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손발도 동상으로부터 무사하지 못하겠다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긴급히 두꺼운 방풍비닐을 사 왔다. 날이 풀리면 다시 떼었다가 붙일 수 있게끔 끝 부분이 벨크로, 일명 찍찍이로 마감 처리된 방풍비닐로 오픈 키친이 되는 부분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그리고 손님과 소통할 수 있는 토끼굴 같은 작은 창문만 칼로 도려내어 만들었다.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다음 대비책으로는 전기장판과 안 쓰는 두꺼운 이불을 깔아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동식 라디에이터를 구해 커피 머신이 얼지 않도록 밤새 켜 두었다. 허겁지겁 마련한 긴급 조치로 간신히 커피 머신이 다시 어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고 매서운 바람도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추위를 극복하기란 어려웠다. 겨울이니깐. 나머지는 참고 견디는 수밖에. 그저 커피 머신이 얼지 않고 내 손발도 얼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겨울 장사를 극복해 나가야만 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차디찬 겨울 공기는 뜨거운 커피의 온기도 금세 앗아간다.

장사가 잘 되는 날엔 그럭저럭 추위도 이겨가며 버틸만했지만 손님이 없어 장사가 안 되는 날엔 마음의 온기까지 빼앗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추위에 고생하며 오만 원도 채 못 벌고 있는 스스로에 초라함을 느끼며 더욱 움츠러들었다. 또 그래서 우울해졌다. 그냥 문을 닫고 집에 돌아가서 쉬는 편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때도 많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있다 보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지 않을까, 왔다가 문을 닫힌 모습에 실망하겠지, 라는 걱정과 기대로 결국 마감 시간까지 덜덜 떨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겨울이, 어디 항상 춥기만 했던가. 모든 걸 꽁꽁 얼리고 움츠리게 만드는 추운 겨울이 있는가 하면 햇살 따스한 푸근한 겨울도 있기 마련이었다. 매출이 안 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 푸드트럭을 한다는 소식에 멀리서 걸음 해주고 응원해준 이들,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동생도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을 녹여 주었다.


커피가 정말 맛있다며 맛있는 커피는 더 비싸게 받아도 된다고 격려해준 손님의 말 한마디도 따듯했다. 어쩌다 보니 정말 맛없게 나온 카페라테를 받은 손님이 몇 분 후에 조심히 다가와 속삭이며, “라테에 샷이 조금 부족한 거 같아요. 저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얘기하다가 사장님이 속상할까 봐 제가 말씀드려주고 가려고요. 잘 마실게요, 수고하세요”라고 말해주신 손님의 따듯한 마음도 그랬다.



그 따듯한 마음들로 겨울을 이겨내고,

사람을, 장사를,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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