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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Sep 23. 2019

EP 3. 사라지는 희망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11월. 푸드트럭 창업 아카데미가 시작되는 날이다.

두 달 간의 막노동 알바를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아 타이밍 좋게 경기도 중소기업청에서 개설한 푸드트럭 창업 아카데미 2기 멤버로 참여하는 기회가 생겼다. 드디어 푸드트럭 창업을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는 것 같아서 한껏 들뜨기도 하고 비장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창업자금을 지원받아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게 되겠다는 생각에 부푼 기대감으로 강의실을 찾았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이삼십 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사오십 대 이상의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자리인 줄 알았던 거라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는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로 창업 아카데미를 찾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법 노점상을 하다가 푸드트럭으로 업종 전환을 위해, 사회복지 차원으로 밥차 운영과 일자리 제공 사업을 위해, 사업 확장을 위해, 장사를 시작해보고 싶어서 배우러 왔다는 분들 등이었다.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어른들의 목적이 대체로 구체적이었다면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청년들은 좋게 말하면 꿈과 열정과 낭만이 가득했고, 안 좋게 말하면 그게 전부였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푸드트럭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 푸드트럭으로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 취업 준비에 질려 자기만의 일을 해보고자 하는 등의 이유로 창업 아카데미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청년의 때에는 아무래도 꿈과 열정과 낭만으로 똘똘 뭉친 도전 정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과 추진력이 될 수 있기에 창업 아카데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강의는 성공적인 창업 전략, 마케팅, 서비스, 상권 입지 분석 등의 다양하고 실용적인 정보에 대한 내용으로 제법 풍성했다. 경기도 청년창업 1호 푸드트럭 사장님이 오셔서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는데 남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며 창업을 했다고 해서 더 귀가 기울어졌다. 결혼 준비를 위해 창업을 결심한 내 처지와 비슷하기도 하고 나도 저분처럼 출발을 할 수 있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그 밖에도 푸드트럭 제작 업체 대표님의 비용과 절차 안내, 직접 가져온 푸드트럭에서 조리를 체험하는 시간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창업자금 지원 안내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지난 몇 달 동안 부풀어진 희망이 펑하고 터지고 말았다.

창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푸드트럭(규제에 맞게 개조된 0.5t 또는 1t 트럭)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푸드트럭 영업을 허용하는 지자체 또는 공공시설과 계약을 체결한 뒤 사업자 등록까지 마쳐야 한다고 했다.


‘어? 이런 얘긴 없었잖아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사나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알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처음 듣는 얘기에 얼이 빠져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고 창업자금 지원 안내를 담당하던 분에게 볼멘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담당자도 참가자들의 항의에 당황했는지 땀을 흘려가며 입장을 설명했지만 더 화만 돋우는 꼴이었다. 한동안 이어진 항의에 담당자는 결국 정책상의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보완해 가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두 달간 막노동하며 번 돈이 내 전 재산이었는데 차량 구입비용과 개조비용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차량 구매에 대략 천만 원, 개조 비용에 대략 천만 원, 조리도구 및 설비를 갖추는데 300 ~ 500만 원이 들어가야 한다. 최소 최저 옵션으로 푸드트럭을 구하려 해도 천만 원 이상은 필요했다.


게다가 어렵사리 푸드트럭을 마련한다고 해도 모집 공고 예정일도, 모집하게 될 수요도 알 수 없었다. 담당 공무원은 ‘향후’, ‘점차적으로’ 공고를 늘려 갈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게다가 공고가 난다 하더라도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바람만 잔뜩 집어넣고 보여주기 식 정책으로 희롱당하고 기만당했다는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꿈이 짓밟힌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기운 같은 건 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뱉으며,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고 낙담하던 중에 천사가 나타났다.

창업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을 여자 친구에게 전하고 다른 일을 빨리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창업에 필요한 금액을 묻고는 모아둔 돈이 있으니 그걸로 시작해 보라고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선뜻 2천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큰돈이기도 했고 결혼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었다. 결혼식을 확정하고 결혼 준비를 하던 상황도 아니었다. 혹시라도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때는 더 큰 문제이지 않나.


망할 거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내가 창업자금을 대출받아서 사업을 벌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여자 친구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하면 여자 친구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쉽사리 돈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맙지만 너무 큰돈이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여자 친구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나를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꿈을 품고 있으니 꿈을 이루어 보라고. 푸드트럭도 우리 결혼을 위해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잘 풀리지 않더라도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말해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푸드트럭을 할 수 있다, 돈이 해결됐다는 안도와 기쁨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나라는 사람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눈 앞에 있다는 게 고마웠다. 지난 몇 년 동안 회사에서 고생하며 저축해 둔 돈일 텐데 아까워하지 않고 내밀어 준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할 사람이 내 눈 앞에서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정말 기뻤다.


아내는 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말을 내게 해준다.


“당신을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요.

꿈을 품고 있으니
꿈을 이루어요.”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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