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이십 대 초반에 운전면허를 따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차를 몰아본 적이 없는 장롱면허 10년 차였기 때문에 오토스틱은 필수 조건이었다. 그리고 푸드트럭 영업을 위한 조리와 수납공간이 충분히 필요했기 때문에 트럭 뒷부분의 적재함은 최대한 넓어야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기본 검색 조건으로 설정하고 인터넷에서 중고 트럭을 물색했다. 사이트도 워낙 많았고 중고 매물도 많아서 이틀이나 걸려서야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을 수 있었다. 2011년식 포터 2 초장축, 14만 킬로, 890만 원. 나중에 고향 친구들에게 차량의 스펙과 가격을 알려주었을 때 비웃음을 당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마음을 정하고 딜러에게 연락을 해서 매물을 보러 갈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날이 되어 여자 친구와 함께 동인천역을 찾았다. 생에 첫 차 구매이기도 하고 사기를 조심하라는 주의도 들었던 터라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는데도 잔뜩 긴장을 한 채 딜러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되어 중고차 딜러가 허름한 하얀색 모닝을 타고 역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차에서 내린 딜러는 아담하고 풍채가 있는 푸근한 인상을 한 40대 초반의 아저씨였다. 인상은 좋아 보이셨지만 타고 온 차가 워낙 허름해서 믿고 따라가도 되는지 순간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따라 가보자 생각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를 함께 움직여 차량이 빼곡한 중고차 시장에 도착했다. 트럭은 인터넷에서 본 그대로였다. 눈으로 확인한 시트와 대시보드는 조금 더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했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다. 시운전을 했을 때도 시원하게 잘 움직였고 차를 더 보러 다녀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아서 여자 친구와 상의 후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개조비용과 사업 초기 자금을 확보해둘 계획이었기 때문에 800만 원은 36개월 할부로 결제하고, 나머지 잔금과 보험 등의 기타 비용만 현금으로 지불했다. 큰돈을 결제하고 나니 얼떨떨했지만 이제야 출발선에서 걸음을 떼는 느낌이 들어 내심 설레기도 했다.
서둘러 창업 아카데미에서 만났던 푸드트럭 제작 업체에 연락을 하고 트럭 개조를 의뢰하기 위한 미팅 약속을 잡았다. 며칠이 지난 늦은 오후, 안산에 있는 업체 사무실로 차를 몰고 찾아갔다. 이미 한 차례 상담을 했었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계약 내용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어서 견적 리스트가 불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 뒤편에 주방이 될 외형인 탑을 올리고, 조리시설과 수납공간 설치(기본 사양), 전기 작업, 실내 도색과 마감처리, 푸드트럭 구변 비용만 해도 천만 원이 필요했다. 가스 설비, 보조배터리, 인버터, 외부 도색, 고급형 주방 등 원하는 옵션을 추가하게 되면 비용은 한 없이 늘어난다. 푸드트럭이 충분히 활성화된 요즘에는 개조 비용도 많이 저렴해졌고 무엇보다 잘 만들어진 중고 푸드트럭을 구매하면 초기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겠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업체 대표님께 자금 사정을 말하고 개조는 최저 비용으로 진행해달라고 했다. 장사를 하다가 여유 자금이 확보되면 추후에 외부 도색과 가스 설비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ㄱ’ 형태의 조리대와 수납공간, 매트 블랙의 내부 도색만 의뢰했다.
일단, 트럭만 있으면
집에 있는 버너와 조리 도구로
시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업이 모두 끝났다는 연락일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입점 제안이었다. 12월부터 2월까지 예술의 전당 광장에 설치되는 아이스링크에서 커피를 팔아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입점을 한다면 개조가 끝나는 대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외부 도색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다. 커피 장사에 대한 준비는 안 했을 테니 커피 머신이나 보온 통 등 필요한 장비도 빌려주겠다고 했다. 대신 업체의 로고를 부착하고 장사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수수료는 예술의 전당과 업체로 이중 부과되는 형태로 높은 편이었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색 비용도 아낄 수 있고 장사 경험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고 여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경험도 있었다. 필요하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지자체에서 푸드트럭 모집 공고가 나올 때까지는 집 근처나 거리에서 노점을 할 계획이었는데...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 같았다.
감사하다 말하고
입점 제안을 수락했다.
개조를 의뢰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어서 드디어 푸드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 외관은 귀여운 민트색으로 칠해졌고 매트 블랙의 실내는 생각보다 모던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투자를 많이 못해서 초라해 보일 줄 알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개조가 완료된 트럭을 전달받고 영업 준비를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이동했다. 어묵, 와플, 스웨덴 핫도그 & 또띠아, 지로스 & 필리스테이크 버거, 커피, 이렇게 다섯 대의 트럭이 광장 시계탑 아래의 아이스링크 옆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각자 푸드트럭에서 사용할 전선작업을 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업체에서 빌려준 1구 에스프레소 머신 2개, 미니 그라인더, 보온 통, 대형마트에서 사 온 대용량 원두, 시럽과 파우더를 조리대에 정리했다. 이어서 동선을 짜고 업무 효율을 확인해 보기 위해 커피를 만들었다. 정량의 원두를 미니 그라인더로 분쇄하고, 분쇄한 원두로 샷을 내리고, 보온 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완성했다.
그럴싸한 커피 한 잔이 나오긴 했지만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주어진 도구로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하다간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고 가정했을 때 속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유 자금이 있긴 했지만 고가의 영업용 그라인더와 커피 머신을 마련하기엔 무리였다. 커피를 전문으로 장사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용 투자를 섣불리 결정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초조해하며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가 차선책으로 전자동 커피머신을 구매하기로 했다. 혼자서 운영하기에도 간편하고 업무 효율성과 신속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자동 커피머신은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추출기가 일체형이어서 협소한 트럭에도 제격이었다. 그렇게 장점을 살펴보니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내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뿌듯했다. 매 순간이 위기이고 불안이지만 돌파구는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전자동 커피머신은 50만 원 ~ 500만 원까지 선택의 폭이 넓었다.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추출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커피를 연속으로 뽑아도 안정적으로 작동이 되는 머신이 필요했다. 그러자 100만 원 ~ 300만 원 사이의 제품군이 눈에 들어왔고, 예산을 고려해 150만 원 대의 밀리타 전자동 커피머신으로 결정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기엔 시간이 촉박해서 곧바로 업체에 연락을 하고 제품을 픽업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초동의 업체 사무실을 방문했다. 담당자께서 커피머신의 작동법과 관리법을 설명해 주셨다. 케이터링 행사에서 300잔을 연속으로 추출해도 거뜬했다며 푸드트럭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할 거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리고 한 대로 운영하기엔 속도가 안 날 수 있으니 서브용으로 이전 모델을 중고로 구매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을 했다. 중고 커피머신은 30만 원으로 가격도 저렴했고 두 대로 운영하면 훨씬 안정적이겠다고 판단되어 200만 원의 예산으로 커피 머신 두 대를 구매했다.
트럭에 커피 머신 두 대를 설치하니 이제야 제법 커피 트럭다워졌다. 작업이 간편해 혼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면서도 버튼을 눌러 곧바로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큰 문제를 해결해 한시름 놓긴 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사 온 원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평균치의 맛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일산에서 바리스타를 하는 지인에게 저렴하고 맛있는 원두를 공급받을 수 있는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소개받은 업체에는 블루 마운틴을 사용한 원두를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100% 블루마운틴은 워낙 고가여서 몇 가지 원두를 블렌딩 한 제품으로 납품받기로 했다. 사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대에서도 원하는 커피 맛을 내는 원두를 구할 수 있었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를 손님들에게 팔고 싶었다.
기대치가 낮은 거리의 커피 트럭에서
예상치 못한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게 곧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사의 철학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