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니 마쿤 Sep 19. 2019

EP 2. 고생길의 서막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2015년 8월 17일.

고대하던 전역을 했다.

전역을 앞두고 분대원들과 함께 냉동파티


이제 푸드트럭 창업이라는 앞으로의 일들을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 알바를 하며 당장의 생활비를 버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2주 정도는 전역의 기쁨을 맘껏 누리게 해 줘도 좋지 않겠느냐고 자문자답해버렸다.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군대의 정해진 일과시간을 따라 움직이던 신체 리듬을 깨트려 군인 흔적을 지우고 싶었고 민간인으로서의 자유로운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누워서 빈둥거렸다. 기약 없이 빈둥거릴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었다. 여자 친구가 퇴근하면 짧은 데이트를 하기도, 혼자서 윈도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사업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푸드트럭 탐방과 팟타이 맛집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처지에 비해 과분한 한량 놀음이었지만 잘 쉬고 행복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민간인으로 컴백한 기쁨과 여유를 충분히 즐긴 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은 인천의 한 상가 건물의 리모델링 일을 하게 됐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르신께서 현장 소장이셨는데 막노동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내 소식을 들으시고 불러주신 자리였다.


그곳에서의 내 업무는 아저씨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보조하거나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잡부 역할이었다. 잡부는 보통 8 ~ 10만 원 선에서 일당을 받게 되는데 내 경우엔 지인 찬스로 종종 야간 잔업도 하며 일당 12만 원을 받고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니 30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월 300만 원 이라니. 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이 돈이면 당장의 생활비와 장사를 위한 메뉴 실습비를 충당하기에 충분했다. 막노동이 몸이 고되긴 해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생각보다 할만하기도 했고, 아저씨들과 어울리는 일과도 꽤나 즐거워 적성에 맞는 듯했다.


용접 기술이나 목공, 타일 시공 등의 기술이 있으면 일당이 20 ~ 40만 원 가까이도 된다는데. 아저씨들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이쪽 일을 하는 게 생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 열심히 일한 척!

진지하게 든 생각은 아니었지만 슬며시 엄마에게 기술이나 배워볼까 하고 말했다. 딱히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속상해하시며 대학원까지 간 녀석이 자꾸 겉돈다며 막노동도 그만두고 푸드트럭도 생각하지 말라는 사자후를 내뱉으셨다. 남은 학비와 생활비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공부를 마치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 세 식구의 생계와 내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한 엄마와 동생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순 없었다. 많이 늦긴 했지만 내 앞가림은 내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과 엄마와 동생에게 이제는 보답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으로서 아내 될 사람에게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과 더불어
푸드트럭이 이 모든 근심을
떨쳐 버려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 줄 거라는
믿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두 달 간의 알바를 마치고 팟타이 실습에 돌입했다.

실습에 들어가기 전, 이태원에서 맛있게 먹었던 팟타이 맛을 떠올렸다. 레시피는 당시 백종원 씨가 ‘마리텔’에서 소개한 것으로 정했다. 백주부가 워낙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조리법이 간편해서 푸드트럭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미리 주문하고 마트에서 사 온 재료와 조리도구를 좁은 부엌에 늘어놓았다. 실습을 시작하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내가 팟타이 요리사! 파라 파팟 파 앗 ~ 타이!’ 주문을 외우고 메모해둔 레시피를 따라서 실습을 시작했다.

<백주부 팟타이 레시피>
재료
다진 돼지고기(종이컵 1컵), 다진 파(소주컵 1컵), 식용유(소주컵 1컵), 편 마늘, 칵테일 새우(소주컵 1컵), 건새우, 청양고추+홍고추(어슷썰기, 소주컵 1컵), 달걀 2, 숙주나물(한 사발), 굵은 쌀국수(한 사발), 땅콩, 시판 팟타이 소스
조리순서
1. 쌀국수 면을 찬물에 불린다.
2.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기름에 향이 베도록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볶는다.
3. 돼지고기를 넣고 뭉치지 않게 풀어주며 볶는다.
4. 어느 정도 고기가 익으면 칵테일 새우와 건새우를 넣어 함께 볶는다.
5. 볶던 재료를 한쪽으로 밀어 두고 반대편에 달걀 2개를 넣어 스크램블을 만든다.
6. 스크램블을 밀어두었던 재료와 함께 볶는다.
7. 청양고추, 홍고추, 불린 쌀국수, 팟타이 소스를 넣어 함께 볶는다.
8. 숙주를 넣고 취향에 따라 푹 또는 적당히 익도록 볶는다.
9. 플레이트에 옮겨 땅콩가루로 토핑을 한다.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

과정은 순조로웠다. 적어둔 메모와 TV에 나오는 백종원 씨의 순서를 따라 참 쉽네유 하며 어려움 없이 팟타이를 만들었다. 냄새도 좋았고 플레이팅 한 비주얼도 나쁘지 않았다. 첫 도전치고는 훌륭하다고 자평하며 스스로의 요리 센스에 감탄했다. 이제 거리의 셰프가 되는 날이 멀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졌을까 기대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시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맙소사.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음식이 탄생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맛이었다. 처음이라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위안하며 레시피를 꼼꼼히 살피고 다시 요리를 했다. 그리고도 몇 번을 더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고 이런 식이라면 돈 받고 음식을 판다는 건 범죄행위였다. 레시피에 특별한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맛없게 요리한 내가 문제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만들어 놓은 맛없는 팟타이를 전부 먹어 치워야 한다는 현실도 당혹스러웠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맛없는 팟타이를 먹어 치우며 생각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이제 겨우 첫걸음이니 계속 연습해보자고. 그래도 안 되면 그 후에 메뉴를 바꾸면 되니 너무 기죽지 말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팟타이를 없애 버렸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이전 01화 EP 1. 전역하고 뭐해 먹고 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