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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Nov 17. 2019

EP 21. 영업종료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2017년 11월을 끝으로 비수기인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영업을 종료했다.

겨울엔 버틴다고 해서 장사가 잘 풀리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기에 이번엔 아예 일찌감치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봄이 올 때까지 하루라도 빨리 알바 자리를 구해서 겨울을 보내려고 했다. 월세, 공과금, 대출금 등의 고정지출을 감당하려면 200만 원 이상의 급여가 보장되는 일을 해야 했다. 급여를 조건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니 월 200만 원 이상의 급여가 보장되는 일은 꾸준히 출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이나 야간근무를 할 수 있는 공장에서나 가능했다. 그것 말고는 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집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건설현장 위주로 지원을 하고 동네의 인력사무소에 인적사항을 등록해서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도 했다.


건설현장 일자리는 자리가 없어서 전부 탈락했다. 방학을 맞이하며 대학생들도 대거 겨울철 아르바이트에 몰린 탓인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인력사무소에서 야간 근무가 가능한 공장 일로 연락이 왔다. 밤샘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인부들을 픽업한다고 약속한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20분이 지나도 픽업 차량이 오지 않았다. 내가 장소를 착각했는지 픽업 차량이 늦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일이 취소가 됐다며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도 세 번을 그렇게 허탕을 쳤다. 망할 놈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서 급여 조건을 낮춰서 일자리를 찾았다. 주 5일 출퇴근에 월 150만 원 급여가 보장되는 카드 회사 콜센터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 시절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로 가전제품 콜센터 상담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근무환경도 업무 강도도 괜찮았던 기억이 났다. 카드회사 업무라고 해도 매뉴얼만 다르지 시스템은 비슷하겠다 싶어 바로 콜센터 상담사 일에 지원을 했다. 계획보다는 급여가 낮은 일이었지만 주 5일 근무라 주말에는 모처럼 아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상대로 콜센터 업무는 크게 어려움 없이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헤드셋을 끼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쉼 없이 밀려 들어오는(상담 하나가 끝나면 통화음이 한 번 울리고는 자동으로 다음 통화가 연결된다) 통화로 퇴근 시간 즈음엔 진이 다 빠졌지만 일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게다가 한 겨울에 따듯한 실내에서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상담업무가 적성에도 맞는지 다른 신입 상담사들이 소화하는 상담량의 1.5배에서 2배까지 업무를 처리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소속된 파트 관리자도 상담사가 체질인 것 같다며 몇 개월 후엔 인센티브도 많이 가져가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은 신입 상담사여서 상담을 많이 해도 평가만 받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없지만, 전문 상담사가 되어 기준치 이상의 상담을 처리하거나 상품을 판매하면 인센티브로 5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상담사 일을 정말로 계속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봄이 다가올수록 어서 공원에 나가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렇게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던 중 군 시절 함께 하셨던 군종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목사님께서 예전에 같이 있던 병사 중에 서울에서 유명한 떡집을 운영하는 형제가 있는데 이번에 백화점 매장을 오픈하게 됐다며 매장을 맡아줄 사람으로 나를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다. 목사님과 군생활 중에 몇 번 얼굴을 뵌 적이 있던 분이었다. 인생극장, 서민 갑부 등의 TV 프로그램들에도 꾸준히 소개되는 유명한 곳이었다.


콜센터 상담사로 일을 추천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급여도 높았고 근무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다시  봄 장사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작년을 생각하면 여름 물 놀이터가 시작할 때까진 매출이 변변치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8월이 되면 공원에서의 영업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다시 축제와 행사장을 전전해야 했다. 하루살이 장사에 지치기도 했다. 아내의 의견을 묻자 장사는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지금은 무사히 잘 지내고 있으니 이제는 안정적인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푸드트럭으로 한 번쯤은 성공적인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미련이 남았지만 나도 이제는 물러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사님이 추천해 주신 일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영업은 종료됐다.






3월부터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떡집의 점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점장 일인데도 2년 차 대리인 아내 월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높은 급여를 받았다. 백화점에선 추위나 더위 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었고 오늘은 사람이 올까 걱정할 일도 없었다. 백화점은 매일 사람이 넘쳐났고 나는 매일 입고된 상품들을 열심히 판매하기만 하면 됐다. 유명한 떡집이라 손님들이 여기가 그 떡집이 맞냐며, TV에서 봤다고, 너무 맛있다고 할 때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괜스레 뿌듯했다.


푸드트럭은 폐업신고를 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달 후엔 트럭을 팔았다. 푸드트럭 매물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빨리 팔기 위해선 헐 값에 넘겨야 했지만 더 갖고 있는다고 해도 제 값을 받기는 힘들 것 같았다. 양도를 하면서 차 키를 넘겨주었을 땐 눈물이 핑 돌았다. 만 2년 동안 내 생계를 지켜주었고, 트럭 구석구석에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던, 내 분신과도 같은 트럭이었다. 그런 녀석을 떠나보내려니 여자 친구와 헤어지던 순간처럼 마음이 이상해졌다. 돌아서는 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 돌아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녀석을 보내야 했다.


처음 푸드트럭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당연히 대박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성공적인 장사를 해서 학자금도 갚고, 우리 집도 사고, 동생 차도 사주고, 엄마 집도 사드리고, 아내에겐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장사란 게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대박은 고사하고 손해나 안 보면 다행인 날이 많았다.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을 2년 동안 하게 되었다.


너무 춥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미세먼지, 황사가 심한 날도 영업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장사할 자리가 없어서 영업을 하지 못할 때가 가장 스트레스였다. 내일은 장사를 해야 하는데, 내일은 장사가 잘 되어야 하는데, 이번 달엔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대박을 기대하던 마음은 그저 날씨만이라도 좋길 바라게 되고, 하루 이틀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게 되길 손꼽아 기다리게 되고, 이번 달에는 생활비만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로 바뀌었다.


그런 소박한 기대와 치열한 일상 속에서 얻은 건 돈이 아니라 강해진 멘탈과 생활력이었다. 잠깐의 여유 후엔 늘 긴 최악의 상황들이 오는 바람에 어느샌가 최악의 상황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를 악 물고 존버 하면 버틸만했으니깐.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고, 성공적인 장사를 못했을 뿐이지 푸드트럭을 하며 보낸 2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으로 남았다. 푸드트럭 덕분에 무사히 결혼도 치르고, 아내와의 일상도 무사히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잡지, 신문, TV에도 출연하며 인생의 한 순간의 발자취를 공공연히 남기기도 해 봤다. 같이 일했던 알바 친구들, 수많은 손님들과의 만남, 푸드트럭으로 비슷한 꿈을 꾸며 전우애를 다지던 사장님들, 이리저리 차를 끌고 방문했던 여러 축제들, 장사하는 곳에 찾아와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고마운 이들이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트럭을 처분하고 나니 시원 섭섭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여유만 되면 계속 가지고 있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잊지 않을거야. 정말 고마웠어!



안녕,
마쿤키친카페!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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