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년시절 07화

어려서 느끼지 못했던 맛에 관하여

엄마와 찐빵

by 기억수집가

#전기 오븐

그 무렵 전기 오븐이라는 게 처음 나왔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그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아마도 월부로) 한 대 들여놓고 그걸로 닭고기 구이, 생선찜, 카스텔라와 식빵 등을 만들었다. 그게 가격은 비싸더라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일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로선 당연 욕심나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또 그때는 출시 기념으로 홍보를 위해 방문 판매원이 음식도 직접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성공적인 맛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카스텔라는 부드럽지도 않고 단면을 잘라 보면 기포가 많았고, 식빵은 윗부분이 딱딱하면서도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먹긴 했지만 별로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맛 말고 정말 전문가적인 부드럽고 촉촉한 카스텔라는 언제 먹어보나 가게만 가면 간단한 일을 맛없다는 말도 못 하고 꾸역꾸역 먹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배가 고팠는지. 정말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정말 배 채우느라고 먹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말썽꾸러기 오빠가 자꾸 그 전기 오븐 위에 앉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자 같은 거 보면 거기에 앉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오빠도 그런 마음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자 상판이 금방 찌그러졌다. 어딘가 위에 올려놔야 하는데 그러기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바닥에 두고 사용했더니 그런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나는 오빠가 엄마한테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로 혼을 내지도 않았다. 상판이 찌그러진 핑계 때문인지 엄마도 나중엔 흐지부지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


#찐빵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엄마의 음식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음식을 만드는 것 하나만큼은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우린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딱히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당신이 손수 만든 음식을 우리에게 먹일 요량에선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무조건 불량식품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남의 음식과 비교해서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더 맛있는지 맛있으면 어떻게 맛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식욕은 늘 왕성했다는 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그 시절 엄마가 주로 만들어 준 간식은 막걸리를 넣은 찐빵이었는데 가성비 좋은 간식거리는 아니었나 싶다. 그땐 아직 이스트란 발효종이 나오기 전이었다. 팥소를 넣고 나름 정성껏 만들긴 했는데 식감이 부드럽지가 않고 질겼다(아마도 반죽에 우유나 달걀을 넣지 않은 이유도 있었으리라). 게다가 그 무렵 뜨거워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는 호빵이 나왔는데 빵이 부드럽고 팥소도 달콤해 먹고 싶었지만 엄마는 방부제와 가격이 비싸다고 못 먹게 했다. 그 시절 찐빵 하나가 5원이었단다. 하지만 호빵은 20원이었으니 알뜰한 엄마가 그것을 못 먹게 했던 것도 당연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막내 이모가 놀러 왔다가 먹다 남은 굳은 엄마의 찐빵을 맛있다고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이모가 그렇게 먹고 있으니 왠지 나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엄마가 이모에게 이렇게 맛있는 걸 얘들은 왜 안 먹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했다. 그러니 그나마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우린 그전에 왜 맛이 없는지 충분히 말했던 것 같은데 이모에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다니 엄마는 도무지 우리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건 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엄마의 찐빵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서 꽤 먹을 만해졌다. 그리고 후에 우연히 다시 호빵을 먹었는데 호빵은 여전히 부드럽고 달콤했지만 뭐 때문인지 깊은 맛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엄마의 찐빵은 다소 거칠긴 해도 뭔가 모를 구수한 맛이 있었다. 바로 이 차이를 그 어린 시절엔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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