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음식은 다 맛있어
#셋방 아줌마
세든 아줌마는 음식을 곧 잘했다. 아니 아주 잘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소심한 내가 원래 남의 음식을 밝히고 그러지 않는데, 언제부턴가 셋방 아줌마가 밥상을 차려 방으로 들어가면 무엇엔가 홀린 듯 나도 따라 들어가 아줌마의 밥상 앞에 가 앉아 있는 것이다. 아마 언젠가 아줌마가 음식을 만들 때 내가 그 앞을 서성거렸었나 보다. 그러면 맛이나 보라고 몇 번 입에 넣어준 것이 이내 그런 대범함까지 이르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앞에서 군침을 삼키며 턱을 쳐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줌마는 고추장과 나물을 잔뜩 넣어 비빈 밥을 먹던 숟가락으로 내 조그만 입에도 넣어주곤 했다.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사람들은 엄마가 음식을 잘한다고 하지만 난 도무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잘하긴 뭘 잘하는가? 그저 굶지 않기 위해 먹고, 엄마가 먹으라니까 먹는 것뿐 특별히 맛있다는 건 못 느꼈다. 그러니까 난 태어나면서 미맹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오직 엄마가 해 주는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남의 음식과 비교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그 세든 아줌마가 음식을 못 했다면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나의 이런 철없는 행동을 호되게 나무랐다. 집 밥 놔두고 남의 집에 가 거지 같이 턱 쳐들고 얻어먹는다고. 네가 거지냐고. 난 그때 그게 아줌마한테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그건 나의 미맹을 깰 수 있는 좋은 계기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깰 수 있었다.
#아궁이
그때는 보일러가 상용화되기 전이라 일일이 연탄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으면 안 됐다. 안방을 데우는 아궁이는 부엌에 있었고, 아랫방은 옆에 딸린 조그만 부엌에 있다. 가장 불편한 건 건넌방의 아궁이였다. 그건 마룻바닥 밑에 있었다. 그래서 마룻바닥 한쪽을 뚜껑처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반공호를 연상케도 했다. 또 그런 목적이 아주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3.8선이 그어진지 20년 정도밖에 더 되었는가.
그 방의 연탄을 갈려면 그것을 담을 양재기가 필요하고 사람이 그 안을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한다. 아니면 잔뜩 수그려 팔을 뻗든가. 그러니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겠는가.
엄마는 당시 일명 식모라고 하는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었는데 그럴 땐 그 방을 썼지만 두지 않고부터는 한 겨울엔 쓰지 못하게 했다. 아랫방도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건넌방의 그런 불편함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우리 넷은 그 방을 썼다. 그렇다고 건넌방을 아예 안 쓴 것도 아니다. 몇 번은 잤다. 따뜻하기는 아랫방 보다 그 방이 더 따뜻했으니까. 그 시절 대부분의 집들은 아랫목만 따뜻했지 윗목은 냉골이었다. 그런데 건넌방은 골고루 따뜻했다. 엄마는 우리가 감기 걸릴까 우려되거나 친척이 와서 잘 경우 드물게는 그 방을 썼던 것이다.